
1996년 여름 강원도 영월의 일선 공무원이 연락해왔다. 영월에 천문대를 지어 관광자원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는 수년 전 ‘태백’에 실린 내 글을 스크랩해놓았다고 했다. 나와 그는 영월에 천문대를 짓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과학기술부에서 예산을 타냈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별 보는 행사를 수차례 열었다. 산 정상에 말뚝을 박을 수 없다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아폴로 박사’ 조경철 박사를 모시기도 했다. 조 박사가 “천문대를 세우는 것은 말뚝 박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를 영월로 모으는 것”이라고 설득해 어르신들은 마음을 바꿨다.
한국의 그리피스, 한국의 로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영월은 우리나라 최고의 별마을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 영월은 단종의 고장이자 물고기 쉬리가 서식하는 땅이었다. 이제 별은 영월의 중요 아이템 중 하나다. 맑은 물과 별이 있는 고장. 영월의 ‘별마로천문대’는 지금도 필자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품’이다.
영월천문대가 완공된 다음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군수가 바뀌었다. 새 군수는 천문대를 가장 먼저 문제 삼았다. 수십억 원을 투자했으니 최소 수억 원의 수익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나와 함께 일한 그 공무원은 한직으로 밀려났고, 천문대를 운영하던 나도 쫓겨났다. 그 군수는 재선에 성공 못하고 물러났지만, 나는 지금껏 영월천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해진 경기도 양주의 송암천문대 역시 나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2004년 어느 날, 모 유수 기업의 상무란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회장님께서 사회사업으로 천문대를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2년 동안 수십 번 현장을 방문하며 천문대 건설에 대한 자문을 했다. 회장님은 매번 천문대 건설과 운영을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양주시를 설득해 현장으로 도로를 내도록 했고, 천문대 설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회장님 자제분들 눈에는 내가 회장님을 꼬드겨 돈도 안 되는 천문대를 짓게 한 나쁜 사람으로 비친 모양이다. 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멋진 천문대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다만 이용료를 저렴하게 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던 회장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내가 미국에 갈 때마다 되도록이면 찾는 곳이 로스앤젤레스의 그리피스천문대와 그랜드캐니언 근처의 로웰천문대다. 그리피스천문대는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거액을 기부해 세운 곳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LA 최대 관광명소다. 로웰천문대는 20세기 초 화성에 대한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된 곳으로, 명왕성이 이 천문대에서 발견됐다. 역시 로웰이란 사람의 기부로 세워진 곳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서울에 시민천문대를 짓고자 한다. 공해가 없는 시골에선 맑은 날이면 언제나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천문대에 가지 않고는 별을 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천문대를 ‘별 보는 곳’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천문대는 별을 매개로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고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리피스천문대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LA의 야경을 감상하고 사랑을 약속한다. 그래서 천문대에 오는 사람들 중엔 학생보다 일반인이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피스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한다.
‘If all mankind could look through that telescope, it would change the world.’ 그리피스천문대 중앙홀에 쓰여 있는 문구다. ‘모든 사람이 이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볼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라는 의미로 그리피스가 한 말이다. 천문대는 별만 보는 곳도 아니고 돈을 버는 수단도 아니다. 우주 속에서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꿈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곳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중에 한국의 그리피스나 로웰이 되고 싶어 하는 분이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