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밤하늘의 모험가들 페르세우스자리&페가수스자리

  • 이태형 | 우주천문기획 대표 byeldul@nate.com

    입력2013-09-23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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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안드로메다 은하.

    우리나라에서 하늘이 가장 청명한 계절이 가을이다. 그만큼 가을에는 별이 잘 보이고 별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이 주어진다. 맑게 갠 시골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으며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을 헤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우주탐험가가 된다.

    하지만 가을철 밤하늘은 그렇게 멋지거나 화려하진 않다. 저녁 하늘에 보이는 여름 별자리가 서쪽 하늘로 넘어갈 무렵 하늘 높은 곳에 자리하는 가을 별자리들은 마치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처럼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

    가을의 별이 많지 않은 것은 이 계절에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우리 은하의 남쪽이기 때문이다. 은하수와 수직한 방향이라 별이 많지 않다. 대신 우리 은하를 벗어나서 외부 은하를 관찰하기에 좋다. 영화나 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보이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은하철도 999’와 같은 우주열차를 타고 외계로 여행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가을의 낭만일 것이다.

    별과 친하면 용감해진다

    사람 따라 별은 다 다르지.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은 안내인이지. 어떤 사람에겐 별이 조그만 빛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고, 학자들에게 별은 문젯거리지. 하지만 별들은 말이 없어. 아저씬 별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게 될 거야….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사막 한복판에서 별을 보며 어린 왕자 줄거리를 떠올렸다. 사막에 불시착한 그에게 별은 가장 중요한 길잡이이자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친구였다. 그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느낀 것은 불안감이 아닌, 일종의 희망과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철새가 별을 길잡이 삼아 먼 여행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마찬가지로 나침반이 없던 고대부터 사람들은 별을 여행의 길잡이로 삼았다. 인류 최초로 별자리를 만든 게 아라비아 반도의 목동들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별은 뱃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길잡이가 됐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별 말고는 전무했다. 항해자들은 별의 고도와 방향을 측정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갔다. 특히 중세 이후 남반구로의 항해가 빈번해지면서 항해자들은 새로운 별들을 보게 됐다. 이들은 남반구 밤하늘에서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고 이를 길잡이 삼아 항해를 계속했다.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 여행을 한 마젤란은 커다란 두 개의 별무리를 발견해 대마젤란 성운과 소마젤란 성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과 별자리에 익숙해지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밤만큼은 익숙한 분위기에 있게 된다. 땅과 달리 하늘은 어디에서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과 친한 사람은 밤이 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별자리를 익혀두기 바란다. 꼭 길을 헤매게 될 때만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天高馬肥의 밤하늘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본래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란 뜻인데, 별 좋아하는 이들에겐 ‘하늘 높은 곳에 살찐 말의 별자리가 있는 계절’로 통한다. 가을 밤하늘 중앙에서 늠름하게 자리를 차지한 천마(天馬) 페가수스가 그 주인공이다.

    가을 저녁,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여름 별자리에 속하는 직녀다. 직녀의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밝게 빛나는 별은 견우다. 직녀와 견우의 동쪽에 또 다른 밝은 별이 있는데, 백조자리의 으뜸별 데네브(꼬리라는 뜻)다.

    밤이 깊어가면서 이 여름 별자리들이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머리 위에 4개의 밝은 별이 커다란 사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별들이 페가수스자리의 몸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페가수스 사각형’이라고 불린다. 이 사각형은 가을 하늘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별자리들을 찾는 중요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페가수스 옆에는 어떤 별자리가 있을까. 백마 탄 왕자와 공주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왕자와 공주는? 바로 페르세우스 왕자와 안드로메다 공주다. 이 두 사람의 별자리가 페가수스자리 바로 옆에 있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누가 앞일까. ‘레이디 퍼스트’에 따라 숙녀가 앞에 있다. 안드로메다자리는 페가수스자리에 붙어서 바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 뒤로 백마 탄 멋진 왕자 페르세우스가 등장한다. 절망의 순간, 어디선가 번개처럼 나타나 공주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왕자! 신화 속에서 그보다 더 멋지고 극적으로 등장하는 기사도 없을 것이다.

    가을밤 북쪽 하늘에선 알파벳 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자리가 가장 눈에 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 별자리는 에티오피아 왕비였던 카시오페이아의 별자리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 주인공 중 카시오페이아만큼 다복한 여인은 없다. 그의 남편 케페우스 왕이 바로 옆에 있고, 딸 안드로메다와 사위 페르세우스 역시 근처에서 별자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철 별자리를 찾을 때는 머리 위에 보이는 페가수스자리를 연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커다란 페가수스 사각형이 방패연처럼 하늘 높이 떠오르면 그 뒤로 긴 연줄처럼 매달린 안드로메다자리가 나타난다. 예부터 부부는 바늘과 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가을 하늘에서 부부는 연줄과 얼레다. 연줄의 끝에서 실을 조절하는 얼레가 바로 안드로메다 공주의 남편인 페르세우스 왕자의 별자리다.

    페가수스 사각형의 제일 북동쪽(왼쪽 위)에 해당하는 안드로메다자리의 알파(α)별 알페라츠(Alpheratz)에서 베타(β)별 미라크(Mirach)를 지나 감마(γ)별 알마크(Almach)에 이르는 2등성의 열을 계속 연장하면 자연히 페르세우스자리의 α별인 2등성 알게니브(Algenib)에 닿는다. 페르세우스자리를 장모 뒤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왕자로 기억하면 그 위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페르세우스자리의 북쪽 부분은 α별을 중심으로 북극성을 향해 길게 호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페르세우스의 호(Segment of Perseus)’라고 한다. 이 호를 따라가면 페르세우스자리의 나머지 별들을 찾을 수 있다. α별 우측에 있는 β별 알골(Algol)은 악마의 별로 알려졌는데, 이 별이 신화 속 메두사의 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별은 그 밝기가 약 사흘을 주기로 2등급에서 3등급까지 변한다.

    그리스 신화의 초기 부분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은 마녀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다. 훗날 등장한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가장 화려한 장을 장식한 그는 지금도 하늘에서 온 가족을 거느리고 뭇별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페르세우스와 그 가족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이렇다.

    옛날 그리스 남부 아르고스 왕국에 아크리시우스(Acrisius)라는 왕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다나에(Danae)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접근했고, 그 결과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페르세우스의 모험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페가수스자리.

    아크리시우스는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의 계시 때문에 딸과 손자를 모두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이 상자는 바다 건너 세리푸스 섬에 무사히 닿았고,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는 딕티스(Dictys)라는 어부에게 발견돼 그곳에서 살게 됐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러 페르세우스가 늠름한 청년으로 장성한 어느 날이었다. 세리푸스 섬을 다스리는 폴리덱테스(Polydectes) 왕이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다나에에게 반해 그녀를 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 때문에 실패했고, 왕은 페르세우스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 왕은 섬의 모든 청년에게 선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가난한 페르세우스만이 아무것도 바치지 못했다. 왕은 그 벌로 페르세우스에게 당대의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게 했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 여신 아테네의 미움을 사서 머리카락이 모두 뱀으로 변한 괴물이었다. 또한 메두사는 그녀의 눈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서운 마력을 갖고 있었다. 왕은 페르세우스가 미션에 실패하고 메두사에 의해 돌로 변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평소 페르세우스를 아끼던 여신 아테네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그에게 거울처럼 빛나는 방패와 하늘을 나는 신발을 선물했다. 페르세우스는 하늘을 날아가 메두사와 싸움을 벌였는데, 거울 방패로 그녀의 눈길을 피하고 목을 자르는 데 성공했다.

    메두사의 머리를 얻은 페르세우스는 길을 바꾸어 동쪽의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에 도착하는데, 그곳의 왕인 아틀라스(Atlas)는 그가 제우스의 아들이란 이유로 추방령을 내린다. 아틀라스가 이렇게 한 것은 제우스의 아들이 헤스페리데스의 가장 귀중한 보물을 가져가리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안드로메다 백호.

    그러나 이런 계시를 모르는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의 무례함에 화가 나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그를 돌로 만들어버렸다.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아틀라스 산이 바로 돌로 변한 아틀라스라고 전해진다. 한편 제우스의 아들이 헤스페리데스의 보물을 가져간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헤라클레스에 의해서였다.

    헤스페리데스를 떠난 페르세우스는 그 후 케페우스(Cepheus) 왕이 다스리는 에티오피아로 갔다. 에티오피아에는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라는 왕비가 있었는데, 그녀는 아름답기는 했으나 허영심이 많아 늘 바다의 요정들보다 자신이 더 아름답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자 바다 요정들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카시오페이아를 혼내줄 것을 요청했다. 포세이돈은 괴물 고래(Cetus)를 만들어 에티오피아로 보냈다. 괴물 고래의 습격을 받은 에티오피아는 날로 황폐해졌고, 케페우스 왕은 이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름다운 딸 안드로메다(Andromeda)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때마침 에티오피아의 하늘을 날아가던 페르세우스는 바위에 묶여 괴물 고래에게 희생되려는 안드로메다를 보았고, 곧장 땅으로 내려와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괴물 고래를 돌로 만들어버렸다. 안드로메다를 구한 페르세우스는 그녀와 결혼하고 1년간 에티오피아에서 살았다. 후에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가 죽게 됐을 때 포세이돈은 이들을 괴물 고래와 함께 하늘에 올려놓았는데, 카시오페이아는 그녀의 허영심에 대한 벌로 하루의 반을 의자에 앉은 채 거꾸로 돌게 했다.

    운명의 원반 던지기

    그 후 에티오피아를 떠난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와 함께 어머니가 있는 세리푸스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어머니를 공개적으로 괴롭히며 결혼을 강요하던 폴리덱테스 왕과 정면으로 맞서 그도 돌로 만들어버렸다.

    모든 원한을 정리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네 여신에게 바쳤고, 여신은 이것을 방패 한가운데에 붙였다. 세리푸스에서 할 일을 마친 페르세우스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할아버지의 땅 아르고스로 갔다. 할아버지 아크리시우스 왕에게 전혀 원한을 갖지 않았던 페르세우스였지만, 어느 날 우연히 참가한 원반 던지기 대회에서 그가 던진 원반이 잘못 튀어 한 노인을 죽이게 됐는데, 그 노인이 바로 아크리시우스였다. 아크리시우스는 결국 신의 계시대로 손자의 손에 죽고 만 것이다.

    훗날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가 죽게 되었을 때, 아테네 여신은 이들을 케페우스, 카시오페이아, 고래가 있는 곳에 두 개의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페가수스는 영웅 페르세우스의 모험 속에서 창조된 동물이다.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서 괴물 고래와 싸울 때, 마침 그가 들고 있던 메두사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 바다에 떨어졌다. 메두사가 괴물로 변하기 전 그녀를 매우 좋아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이 피를 안타깝게 여겨 그 피와 바다의 물거품으로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를 만들었다.

    페가수스와 벨레로폰의 오만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페가수스는 특히 뮤즈(Muse·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예술의 신으로 모두 9명)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페가수스가 뮤즈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들에게 아크로코린투스(Acrocorinthus)에 있는 히포크레네(Hippocrene) 샘을 파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페가수스는 올림푸스 산에서 살면서 신들에게 사랑받으며 메두사와는 달리 기쁨에 가득 찬 생활을 했다. 그 즐거움과 밝음은 훗날 많은 시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된다.

    이 무렵 지상에서는 벨레로폰(Bellerophon)이라는 청년이 상반신은 사자와 산양의 혼합이고 하반신은 산양의 형태를 한, 불을 뿜는 괴물 키메라(Chimaera)를 무찌르기 위해 지혜의 여신 아테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아테네는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어느 날 밤 그의 꿈에 나타나 황금고삐를 주고 페가수스를 찾아가게 했다. 황금고삐를 받은 벨레로폰은 아테네의 계시대로 페가수스를 찾아내 자신의 말로 삼았다.

    아내와 함께 별자리 오른 불세출의 영웅
    이태형

    1964년 강원 춘천 출생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 박사과정 수료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 (주)천문우주기획 대표

    저서 : ‘재미있는 별자리여행’ ‘쉽게 찾는 우리 별자리’ ‘별난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주견문록’ ‘이태형의 별자리여행’ 등


    벨레로폰은 페가수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키메라를 처치했고, 그 후에도 여러 모험에 성공해 마침내 공주와 결혼하게 됐다. 왕의 후계자가 된 벨레로폰은 연이은 승리로 자만심에 빠져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오만에 빠진 그는 신들이 사는 세계로 가기 위해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불쾌한 마음에 말파리를 보내 페가수스를 쏘게 했다. 놀란 페가수스는 주인을 버리고 하늘로 올랐고, 벨레로폰은 땅으로 떨어져 장님에 절름발이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별자리 그림은 바로 페가수스가 말파리에 쏘여 물(은하수)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라고 한다. 작은 성공에도 오만해지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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