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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극복 못한 식민철학의 굴레

아직도 극복 못한 식민철학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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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가 사단 칠정을 기준으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나누고, 그들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파악하려고 시도한 것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율곡학파는 주기론으로 볼 수 없다. 율곡학파는 비록 기에 대한 관심이 퇴계학파보다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기에 대한 리의 우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율곡학파를 이이의 사단 칠정론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율곡학파의 ‘최소 공배수’는 ‘사단 칠정’이 아니라, ‘기발’만을 인정하고 ‘리발’을 인정하지 않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다카하시는 사단 칠정을 내용적으로 분류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 그는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황의 호발설이나 이이의 혼륜설을 모두 부정한다. 이황의 경우 칠정에도 절도에 맞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기발에만 한정시키는 잘못이 있고, 이이의 경우는 사단을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이라고 인정하는데, 이는 사단에도 선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단을 세우면 칠정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칠정을 세우면 사단에서 모순을 낳아 결국 논리상 난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런 식으로 조선 유학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점을 가지고 소모적인 당쟁을 벌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사단이나 칠정 모두 리발 기발을 적용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공평한 감정은 리발, 즉 이성이고, 개인적인 감정은 기발, 즉 감정이라고 한다.

또 이런 사고를 한 사상가로 정약용을 추천한다. 정약용의 사단 칠정에 관한 주장이 조선 유학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리론은 이성에 초점을 두고 주기론은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욕망과 결부되지 않는 감정 논의를 주기론으로 보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카하시의 주리주기식 구분은 일본과 한국 학자들에게 계승됐다. 일본에서는 아베 요시오가 선구다.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아베 요시오는 ‘일선명(日鮮明)에서 주자학, 그 두 계통과 주자학의 제 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주리·주기를 조선 유학뿐만 아니라, 일본 유학과 중국 유학을 분석하는 틀로 확대시킨다. 아베는 주희 철학을 ‘주리적 리기 철학’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주지 박학파­주기파­자연주의파와 체인 자득파­주리파­정신주의파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주기파는 기를 주로 하기 때문에 수양법에서 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이와 같은 수양법은 일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기를 리의 운동법칙으로 파악하여, 사물의 법칙성을 탐구하고 외적 경험을 쌓으며 박학을 강조하는 주지주의 견해를 주기파라고 한다.

반면 주리파는 기를 움직이는 근원이 리라고 주장하며, 이 리를 체인하는 내적 경험을 통한 도덕 실천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분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주기파든 주리파든 기본적으로 도덕 실천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 실천의 강조를 단지 주리파의 고유한 특성이라 생각한 것은 잘못이다.

반면 요근래 학자 미우라 구니오(三鋪國雄)는 “주리주기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은 이황이지만, 소위 주기파가 처음부터 학파를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고(율곡철학은 리기이원론이다), 주기파란 주리파가 자기 반대파에 대해 폄칭한 것이다”(‘주자’ 중앙공론사)라고 하여, 다카하시의 도식론이 조선 주자학을 설명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현상윤이 이미 ‘조선유학사’에서 주장했던 것이다.

미우라 구니오는 주리주기의 도식을 조선 주자학이 아니라, 중국의 역학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상수역과 의리역의 대립을 조선 주자학의 용어를 차용하여 주기파와 주리파의 대립으로 막연히 생각했지만 아직 체계를 이루지는 않았다.” (‘주자와 기와 신체’ 평범사, 1997, 150쪽)

어쨌든 일본학자들은 주리주기론을 가지고 조선 주자학을 설명하기보다는 일본유학이나 역학을 설명하는 데 쓰고 있다.

다카하시를 답습한 한국 철학자들

반면에 한국의 학자들은 다카하시의 주리주기론을 답습하여, 한국철학사를 쓰면서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국 유학에 대한 새로운 도식을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다카하시의 도식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다카하시의 주리주기에 대해 제일 먼저 반응한 이는 박종홍이다. 박종홍은 이황의 리의 자기 촉발이 가능함을 설명하는 예로 다카하시를 들고 있고(‘박종홍전집’ 권1, 434쪽), 이황과 기대승, 이이, 기정진의 학설이 “주리와 주기의 입장 차이에서 생긴 논쟁이다”라고 하여 주리주기 도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황의 주리론이 “주기론자처럼 리기를 대상적인 자연계에서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관계로 먼저 보았다”(‘박종홍전집’ 권4, 225쪽)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주리주기를 이성과 감정으로 보는 다카하시와 정신과 자연으로 보는 아베를 절충한 것이다.

어쨌든 박종홍은 “기왕에 일제시대에 일인 다카하시 도오루 박사가 이에 착안하여 어느 정도 연구 정리한 업적도 남겼거니와, 우리로서 좀더 철저하게 이퇴계 기고봉 시대에서 훨씬 이전으로 소급하여 조선왕조 초기 혹은 그 이전에는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가를 면밀하게 알아보아 그 계통이 밝혀졌으면 좋을 줄 안다”(‘박종홍전집’ 권4, 259쪽)라고 하여, 다카하시의 주리주기론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종홍이 적극적으로 주리주기 도식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론에는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병도는 다카하시의 주리주기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이를 이황과 이이에 적용하지 않고, 이황과 서경덕에 적용한다. 주기라는 개념은 서경덕에서부터 사용해야 한다(‘徐花潭及李蓮坊에 대한 小考’, 112쪽)는 것이다. 이는 이황과 이이의 대립이 아니라 이황과 서경덕의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카하시의 관점을 확대 설명한 것이다.

배종호는 ‘한국유학사’ ‘한국유학 자료집성’에서 주리주기 도식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 주리파, 주기파, 절충파로 나눈 것은 다카하시 도식을 그대로 쓴 것이다. 그는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주리주기로 나누는 방식에 회의를 품으면서도, “관용적으로 주리주기를 사용했을 뿐이다”라고 함으로써, 조선 철학사 분류방식에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윤사순은 처음으로 다카하시의 식민사관을 비판했지만, 주리주기 도식은 그대로 사용한다. 그는 성리학과 실학을 주리와 주기로 구분한다. 리는 추상적·관념적인 데 반해 기는 구체적·경험적이다. 그리하여 주리를 강조하는 쪽은 조선 말에 국권수호적 보수가 되고, 주기를 강조하는 쪽은 개방적 진보 개혁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리학 안에 주기론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성리학적 주기론이라고 부르고, 실학적 주기론과 구분했다.

“성리학적 주기설은 예나 도덕의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나 그 사고 방식 등에 있어서 주리설과 같으며, 다른 것은 다만 리의 사고 내용을 기로 바꾸어 이해하는 것뿐”(‘한국유학사상사론’, 361쪽)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학 안에서도 주리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이익과 안정복 정도에만 나타나며 ‘(온건한) 주리’ 혹은 ‘실제성 일상적 중시의 태도가 좀더 강조된 정도의 주리’에 지나지 않는다”(같은 책, 356쪽)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성리학적 주기론은 주리론인가 아니면 주기론인가? 그리고 실학적 주리론은 주리론인가 아니면 주기론인가? 이러한 문제를 그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기를 단순히 경험적으로 분류하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다. 전통시대에 기는 자연, 심리, 물질(제도)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조선 철학의 과제

기는 경험적인 성격도 있지만, 경험으로 파악되지 않는 점도 있다. 실학의 주기론이 모두 경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학이 주기론이라고 한다면, 물질 혹은 제도 개혁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학자 중에도 주리파가 있는데, 이익과 안정복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너무나 이익과 그 학파를 무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호학파는 조선의 근간이 되는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반성한 사람들이다. 토지제도에 대한 반성은 곧 리의 책임성과 연결된다. 현실이 잘못되면 곧 리의 책임이다. 이러한 사고는 이이적인 사고라기보다는 이황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한국의 학자들은 다카하시의 주리주기 도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리주기론은 조선 철학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주리주기를 존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폐기할 것인가, 존속시킨다면 어떠한 기준에 따르는가에 따라 철학사는 다르게 씌어질 수 있다.

기존 학계는 주리주기론을 가져다 쓰기 전에 이것이 다카하시 도오루에게서 나왔고, 그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를 고찰했어야만 했다. 그 일을 선행하지 않고, 전제로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철학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주리주기론에 대한 문제제기야말로 계속되는 철학의 과제다. 철학적 진리는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단 칠정으로 주리주기론을 세워서 모든 조선 유학을 설명하려는 방식은 상당한 문제점을 가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선 유학을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존재론적인 사고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사단 칠정을 리기로 환원하는 것은 리기의 존재론적인 특징만 강조하는 것이다. 리기론이 송대 철학에서 존재론적인 위상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리기론과 사단 칠정론은 인간과 우주를 좀더 실제적으로 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인간에 관심을 두지 않고, 리기론과 사단 칠정론만으로 조선 유학을 설명한다면, 단순한 관념 계산에 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 칠정이 리기로 환원하는 것은 리와 기의 성분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계산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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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서울대 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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