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멀리서도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 같기도 하고 LPG가스 냄새 같기도 했다. 근처에서 밭일을 하는 나이 든 아저씨한테 공장과 공해에 대해 물었다.
“옛날 같진 않지만 그냥저냥 살지유 뭐. 정부서 허가 내준 공장인디 설마 사람이 피해보는 일이 생길라구유.”
아무리 나이 들었다고 해도 그런 공장 근처에 살면서 공해에 대해 그토록 무신경하다니. U냉열 견학도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의 방문 목적을 들은 수위가 한마디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날 저녁, 주민들과 함께 인천에서 찍어온 비디오를 보며 우리가 보고 들은 얘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주민들은 이 자료만으로는 공장측에 대처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니 자료를 더 수집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헤어졌다.
1991년 4월10일
대책위원회가 힘을 못 쓰니 공장 이전을 찬성하는 측이 득세했다. 이젠 마을 주민들도 찬성측과 반대측이 완전히 갈렸다. 소문을 들으니 찬성측 주민들은 공장이 설립될 경우 충분한 반대급부를 보장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주민들에 대한 공장측의 회유는 은근하고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논 매는 사람들, 밭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회유하더니 이젠 밤에 몰래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반대측 주민들은 공장 일에 소극적인 데 비해 찬성측 주민들의 활동은 점점 활발해진다.
이러다가 덜컥 공장이 들어서버릴까 봐 조바심이 난다. 오래 망설인 끝에 올 농사를 망치는 한이 있어도 공장설립을 반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공장이 못 들어서게 막느라고 농사일을 못 하면 1년 손해지만 농사일을 하느라고 공장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평생 손해다.
대책회의를 연 끝에 K군청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C가스라는 회사가 우리 마을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만 알았지 설립 허가가 났는지 공장 규모는 얼마만한지 어떤 가스를 취급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대책위 임원과 주민들 몇이 모여 K군청 지역경제과를 방문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대대로 살아온 농민이고 또 농지 안에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최소한 군청측에서 중립은 지켜줄 줄 알았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었다. 지역경제과장 한민석씨와 안치현 계장은 공무원인지 공장 직원인지 모를 태도를 취했다. 더욱이 우리가 공장 설립신고서를 보자고 하니까 그건 공무에 관계되는 사항이므로 일반인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안계장:환경처에서도 검토를 다 했기 때문에 공장이 들어오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 앞으로 농사 안 짓고도 살 수 있으니 지역발전을 위해서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왜 반대하나?
나:그럼 벌써 다 허가가 났단 말인가?
안계장:그렇다. 공해를 전혀 일으키지 않는 공장이다.
나:공해 없는 공장인지 어떻게 아는가? 나중에 책임질 수 있는가?
안계장:그렇게 사람을 못 믿나? 설치신고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자 봐라(우리가 못 믿어하자 안계장은 그제서야 공장설치신고서를 보여주었다. 공무 사항이므로 보여줄 수 없다던 아까의 태도는 그럼 뭐란 말인가? 그런데 사업계획서를 보니 공장 진입로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나:어떻게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농지에 공장 허가가 날 수 있는가? 또 진입로도 없이 공장이 들어설 수 있는가?
안계장:진입로는 공장측에서 만들면 될 거 아닌가?
나:누구 땅인데 맘대로 진입로를 만드는가?
안계장:땅은 사면 될 거 아닌가? 당신들이 그런다고 C가스가 공장을 안 지을 줄 아는가? 진입로가 없으면 농로로 다니면 된다.
나:농로는 우리 주민들이 자기 땅을 내놓아 일일이 품들여 만든 길이다. 농 사 짓기 편하려고 경운기 다니라고 만든 길이지 가스공장 들어오기 편하라고 만든 길이 아니다. 공장이 들어오면 우린 길을 끊어버리겠다.
안계장:그럼 마음대로 해라.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군청 방문이 전혀 소득이 없었던건 아니다. 안계장과 한동안 실랑이 끝에 공장설치신고서와 사업계획서를 복사해올 수 있었다.
공장소재지는 B면 H리 산 59-1번지의 임야 2만5200 ㎡로 공장 대지면적은 11만4305㎡였다. 공장 대지는 도시계획법에 의해 도시계획외지역으로, 국토이용계획법에 의해 경지지역 임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제품생산계획은 액체산소, 액체 질소, 액체 아르곤으로 되어 있었고 직원은 총 31명 고용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또한 올 3월에 착공해서 내년 12월31일 준공예정이라고 되어 있있다. 또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C가스가 공장을 짓기로 한 땅은 C가스가 사들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땅은 L씨의 종중 소유로서 종중대표로부터 임대받은 것이었다.
1991년 4월14일
H리 1구 1·2반 주민 120명의 서명 날인을 받아 K군 군수, 충남도지사, 국회의원에게 1차 진정서를 냈다. 10일 저녁 대책회의에서 각계에 진정서를 내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그 동안 막연하게 주민들이 반대하면 공장이 못 들어오려니 생각하고 있다가 군청에서 일과 공장설립신고서와 사업계획서 사본을 본 주민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3월16일 척사대회 때 받아놓은 진정서를 보내려 했으나 보관하고 있던 윤수호씨가 분실하는 바람에 다시 받으러 다녔다.
진정서를 받으러 다니느라 고생깨나 했다. 직위는 대책위 총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일을 내가 맡아보았기 때문에 나는 농사일에 쫓기면서도 대책위 일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낮에는 논으로 밭으로 쫓아다녔고 밤에는 열두 시가 넘을 때까지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렸다. 저녁에는 대책위원장과 뜻을 같이하는 주민들이 함께 다녀주어 그나마 수월했다.
흔쾌히 도장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이미 허가가 난 상태고 공장측의 로비도 갈수록 심해지니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긴 공장설립을 찬성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는 찬성하지 않는데 왜 찬성편이라고 몰아붙이느냐. 반대측에서 나를 그렇게 욕하니 반대측 주민들이 다 와서 사과하기 전에는 도장 찍어줄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동네에서 오순도순 살던 이웃이 이렇게 등을 돌려대니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설상가상으로 K군청측에서도 공장설립 반대를 중지할 것을 은근히 종용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모내기만 끝나면 적극적으로 해보자’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1991년 4월24일
K군 군수에게서 14일에 발송한 1차 진정서에 대한 회신이 왔다. 한 페이지로 된 회신 내용은 간단했다.
현재 인천에서 운영하는 C가스 공장은 암모니아수와 동가스 생산을 자진 중지했고, 우리 동네에 들어서게 될 공장의 가스는 인체에 무해한 무색·무취·무독의 산소, 질소, 아르곤으로 공해 및 가스 폭발 등의 위험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도지사와 국회의원에게서는 아무 회신도 오지 않았다. 다른 데는 몰라도 국회의원의 회신은 목마르게 기다렸는데 실망이 컸다. 군청과 도청에는 우편으로 보냈으나,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진정서는 특별히 대책위원장 박상규씨, 부위원장 우형근씨, 나, 조우현씨, 조우식씨가 국회의원 지구당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전달했던 것이다. 당시 비서는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했고 ‘의원님에게 반드시 전달하겠으며 회신이 오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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