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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자살 금지법 시대

중편소설 자살금지법 (하)

제2부 자살 금지법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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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 ―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No sabemos lo que nos pasa, yeso es lo que passa.
아내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죽은 아내의 시신을 평소에 잠든 모습 그대로 침대에 고이 뉘어 놓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틀을 보냈다. 사무실에는 아내가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며칠 쉬겠다고 통보했다. 아내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나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아름다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아내의 모습.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아내를 부둥켜안고 잠 들곤 했다. 내 살갗 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기운은 마치 아내의 숨결인 양 느껴졌다. 사랑을 나눌 때처럼 아내의 몸에 입을 맞추고, 아기가 엄마의 품속에 파고들듯 아내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영혼이 빠져나가 이제는 썩어서 흙이 될 살 껍질에 불과하지만, 아내의 영혼이 거주하던 그 육체, 나와 숱한 밤을 함께 보냈고, 나에게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던 그 육체는 내게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례용품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어, 차례를 기다리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절망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 끝에 열 배 가까운 웃돈을 얹어주고 장의사에게 목관을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아내가 즐겨 입던 드레스를 입혀 밤을 틈타 아내의 시신을 차에 싣고 동네 뒤편 자그마한 동산으로 올라갔다. 햇볕이 잘 들 만한 양지 바른 곳을 골라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아내의 시신을 담은 관을 내렸다. 나는 흙을 덮기 전에 아내의 얼굴에 천천히, 나의 온 애정을 담아 입맞추고 나서 흙을 단단히 덮어 나지막한 봉분을 만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동이 터올 때까지 아내의 무덤을 지켰고, 슬픔으로 빚은 눈물을 한 잔의 술 대신 그녀의 무덤에 떨궜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아내가 죽자, 나는 세상사에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 세계 전부가 무너져내린 듯한 절망과 슬픔, 적막과 고독이, 밤이 되면 어둠이 대지에 찾아들듯 죽음의 유혹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최 목사의 말을 떠올렸다. 그 순간, 그의 말이 진실이길 갈망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승에서라도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죽음의 다리를 훌쩍 건너기만 하면 될 것이니.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죽음의 유혹에 나는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내 속의 무언가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미련조차 없는데. 내 삶의 버팀목이던 아내마저 죽고 없는데. 죽으면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이 두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죽음 뒤의 황홀한 세계를 맞는 기쁨의 강도를 더 높이기 위해 생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감내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 세계의 파국을 지켜보는 증인이라도 되고 싶은 것인가? 많은 젊은이들처럼, 짧은 순간이나마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율스런 삶의 폭발을 경험하고 싶은 것인가? 이 세계의 멸망을 냉소적으로 즐기려는 것인가? 나는 그 모든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내가 없는 불 꺼진 방에서 병든 짐승처럼 침대에 쓰러져 누운 채 며칠을 보냈다. 죽음의 유혹과 그것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어떤 존재 사이에서 나는 처참하게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끝없는 혼돈과 분열의 심연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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