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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전략

인내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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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십중팔구 학생들은 여태껏 열을 내며 토론하다가도 갑자기 멈추고선 “제발 더 이상 우리를 ‘고문’하지 말고 ‘정답’ 좀 알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이럴 경우 ‘그까짓 것’ 하면서 ‘정답’을 떡하니 알려줘서 “역시 교수는 달라”라는 감탄을 자아내고 싶은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다시금 ‘인내’라는 주문을 맘속으로 외운다. 그리곤 가능한 한 그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대개의 경우 그렇게 된다) 안내해주는 도우미 노릇을 하고 일어선다.

이러한 ‘인내’의 결과는 한 학기가 끝난 뒤에 변해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전반부의 고통과 어려움을 훨씬 능가하는 보람으로 다가온다. 학생들은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난 그냥 그들에게 토론할 거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발표 내용에 대해 약간 덧붙이거나 정리해줄 뿐 수업의 주인공은 엄연히 그들이 되고 그들의 생각과 목소리와 경험으로 수업내용이 채워진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번 수업을 통해 뭔가를 배웠다기보다는 내 스스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을 맛본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은 그들의 열띤 토론으로 꽤나 소란스럽다. 간혹 옆방 교수님이 내 방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들여다보기도 한다. 학생들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생각을 내게,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전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게는 3년 터울의 아이 둘이 있다. 큰애는 둘째가 생기기 전 3년간만 독점적 사랑과 관심을 누렸을 뿐 그 이후는 많은 것을 동생에게 양보하거나 공유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을 힘들어하더니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큰애는 처음 1∼2년만 엄마의 도움을 받았을 뿐 그 이후의 학교생활은 ‘홀로서기’의 반복훈련이었다. 그러나 둘째의 경우는 달랐다. 내가 전공하고 가르치는 이론이 ‘스스로 학습하기’임에도 자식에게는 그런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결국 둘째아이의 숙제는 대부분 엄마의 숙제가 되고, 첫째아이의 숙제는 일하는 엄마의 한계 탓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큰애는 어떤 숙제가 주어져도 스스로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길 뿐더러 대견하게도 대부분을 거뜬하게 해낸다. 반면에 둘째는 자기 숙제로 끙끙대는 엄마 옆에서 아주 부분적인 조수 노릇을 하는 것으로 자기 몫을 다했다고 느끼곤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다행스럽게도 애들이 올해 아빠와만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남편은 “숙제는 애들 스스로 해야지 누가 도와주면 안 돼”라고 주장하면서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피력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귀찮음에서 비롯되는 방관을 위장하기 위한 전략임을 나는 빤히 알고 있다. 이런 ‘소신’ 있는 아빠와의 생활에서 첫째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적응해갔지만, 엄마의 ‘조급한 도움’에 익숙해 있던 둘째아이는 으레 아빠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기대했다가 낭패를 보고는 했다.

그 다음부터는 둘째 녀석도 숙제가 주어지면 아예 자기 혼자 하겠다고 공언하고는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고 한다. 게다가 혼자 끙끙거리며 한 숙제가 선생님으로부터 칭찬까지 듣는다니 내심 걱정하며 안달하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역시 ‘인내’가 가장 효과적인 학습전략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많은 교육이론이 강조하듯이 이런 ‘인내’는 아이들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짓장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 비록 얕은 경험이고 서툰 지식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결국에는 성숙함에 다가서리라는 믿음, 이것이 우리 부모들에게 필요하다. 아이들 옆에서 방향지기, 즉 문자 그대로 ‘도우미’ 노릇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믿음이 헛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 조급하고 불안해하는 우리 부모들이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입시 중심의 교육환경이다.



올바른 교육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낙오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남들 따라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내가 제안하는 ‘인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호사스런 이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의 크고 작은 경험들을 돌이켜볼 때 분명 ‘인내’의 전략은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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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인애 경희대 대학원 교수·교육공학(iaka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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