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휴가는 끝났고 가을 단풍은 아직 멀었다. 한껏 높아진 하늘 아래 해바라기는 큰키를 자랑하고 옥수숫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사람 구경밖에는 한 것이 없는 여름 휴가의 짜증은 그래서 사람들을 다시 한번 가을의 무대로 불러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아무리 머리를 맞대봐도 마땅히 떠날 곳이 없다. 선뜻 차에 시동을 걸지 못하는 것도 가을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기가 여름이나 겨울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을 강원도 평창이나 영월쯤으로 행선지를 정해보자. 이 무렵 평창에는 메밀꽃이 절정인데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효석문화제’의 막이 오른다. 평창과 남쪽으로 맞붙어 있는 영월. 영월은 역사의 고장이요, 단종(端宗)의 고장이다.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에게 그 자리를 찬탈당하고 유배지에서 한(恨)을 곱씹던 끝에 결국 사약을 받은 어린 단종의 넋을 찾아 떠나기에도 초가을처럼 좋은 계절은 없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로 빠져나간 뒤 봉평읍내를 찾아들어갔다. 평창농협에서 메밀꽃을 둘러보기 가장 좋은 곳을 물으니 봉평면 무이1리를 추천해 준다. 다른 곳보다 메밀꽃이 조금 일찍 핀다는 곳이다. 무이1리에 들르면 메밀꽃 구경은 조금 미루더라도 평창무이예술관을 찾아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1999년 폐교된 무이초등학교를 개조해 조각 도예 회화를 망라한 종합미술전시관으로 꾸몄다. 가을이면 백화점 문화센터 표지를 단 관광버스가 줄을 이을 정도로 주부들에게 인기를 끄는 장소. 하루쯤 휴가를 내 아내의 손을 잡고 단둘이 이곳을 찾는다면 추석 보너스를 봉투째 내놓는 것보다 훨씬 큰 감동을 선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