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간직한 소설가 김형경(金炯景·47)의 풍경화는 이렇다.
안개가 자욱한 빈 들판에 작은 집이 하나 있다. 미풍에 안개는 조용히 움직인다. 뱀처럼 안개는 그렇게 천천히 움직인다. 그 집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온다. 키가 큰 미루나무가 서 있다. 그가 안개보다 느린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안개가 뱀처럼 그의 뒤꿈치를 문다. 놀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는 뒤돌아보면서 미소 짓는다.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러자 집이 움직인다. 안개는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달도 없다. 바람이 지나간다. 마음이 움직인다….
오랜만에 만난 김형경은 신선한 바람을 몰고왔다. 산에 꽃이 피기 시작해서인지 그녀는 방금 꽃밭에서 걸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그가 가깝게 다가와 내 눈동자에게 말을 건넨다.
‘공감은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善)한 길입니다.’
그가 그림 속에서 걷던 길은 타인에게 이르는 선한 길이었다. 타인이라는 이 불안한 정체불명의 대상은 그가 가서 손을 잡는 순간 한 사람이거나 꽃이거나 나무가 된다.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
나는 미소 짓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안개를 지우면서 타인에게 이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언어로 대화하고 타인과 공감함으로써 아주 선하게 그들에게 다가간다. 내면에서 솟아올라 기어이 육체가 움직인다. 그는 춤을 춘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춤을 추면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기어이 공감하게 한다.
“어떤 선배가 흥에 겨워 춤을 추는데, 너무 잘 추는 거예요. 가식이 없이 몸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춤…. 어디서 춤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무당은 춤을 배우지 않는다고.”
아침에 마을 작은 동산에 올라간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천개의 공감’을 읽었다.
‘이 책은 서로서로 공감하는 수천개의 마음과 그 마음에 공감하는 저의 마음이 만나 술처럼 빚어진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책의 서문에서 김형경은 이 책을 ‘외도’라고 했는데,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선배, 이 책은 외도가 아닙니다’라고 메모했다. 이건 소설이에요. 좋은 소설.
책장을 넘기면서 그가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상처를 보고 그 상처를 만지면서 공감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미소 지으면서 나의 걱정을 달래주었다. 아니 힘들지 않았어요.
“박완서 선생의 글에서 읽은 건데요. 선생에게 많은 독자가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달라면서 글을 보내온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자신의 인생이 아주 특별한 소설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느끼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독자의 사연이 대동소이하대요. 칠순을 넘기신 작가가 보기에 삶은 다 거기서 거기인 거지요. 이러한 삶처럼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자신만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 같고, 자신만이 제일 불행한 것 같지만 삶의 질, 감정은 일반화될 수 있어서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