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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홀로 지키며 나는 ‘파랑마녀’가 된다”

“산골 홀로 지키며 나는 ‘파랑마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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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홀로 지키며 나는 ‘파랑마녀’가 된다”

엄마 차정원씨가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 막내 희지는 엄마 곁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언니 오빠들과 자유롭게 어울렸다.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들도 희지를 동생처럼 예뻐했다.

그이가 남편과 함께 이야기하자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했다. 하나는 혼자 이야기를 해서 자칫 부부 사이에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인터뷰를 계기로 부부 사이에 대화를 더 깊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면 그이는 지금 남편과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집 부부와 함께하기가 쉽지 않으니 우선 한 사람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부부가 시간이 되는 만큼 함께하기로 했다. 그이는 치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제 내면은 치유할 게 참 많아요. 산골에서 친구도 없이 살자니 누가 치유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우울증으로 치료 상담을 받았는데 몇 달을 했대요. 나야 그럴 형편도 못 되고, 의사와 상담을 한다고 해서 치료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이곳 봉화로 옮기고 2005년 한 해 동안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원래 네 가정이 ‘계획 공동체’를 하려고 봉화에 땅을 사고 이사를 했는데, 우리 가족만 오고 다른 가족은 오지 않았어요. 공동체 생활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단지 상황과 조건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공동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제가 볼 때는 분명한 실패인데 말이죠.

봉화에 온 애초의 목적이 사라지자, 저는 계속 여기서 살 이유를 찾기 어려웠어요. 농사를 짓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그냥 남편이 공동체를 원하니 따라왔거든요. 더구나 당시 5학년이던 큰애가 이곳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평소 학교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남편은 아이가 학교 그만두는 걸 찬성했어요. 저는 불안해서 아이를 설득했지만 아이가 꼼짝도 안 했어요.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남편은 항상 바쁘고 아이 교육이 모두 내 몫이 되니 더 그랬지요.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냥 놔두래요. ‘생명은 저절로 자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식의 관념적인 이야기나 하고.

남편은 ‘걱정할 게 하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고 해요. 기가 막혔어요. 저 나름대로 이런저런 학습을 시도하다가, 야단을 치다가, 속상해서 울다가….

얘들 교육도 그렇지만, 농사로 먹고 사는 문제도 그렇고,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서도 부딪치고 자주 싸웠어요. 어느 날은 밭에서 일하다 말고 하루 종일 싸우기도 하고, 차 타고 가다가도 또 싸우고, 다툼은 시시때때로 터지는 거지요. 그러다가 탁!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봉화로 이사 와서도 남편은 단양에서 하던 영농조합일 때문에 1년 동안 일주일의 반은 집을 떠나 있었어요. 산속의 창고 집에서 남편 없이 아이들하고 지내야 했는데 무섭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여기를 떠나려고 했죠. 교사 경험이 있으니까 대안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 내 생각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남편은 아주 관계가 끝나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라고요. 남편은 여기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데에 아주 강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내가 여기를 나가면 자기는 사라질 거래요. 자기 혼자서는 여기서 살 이유가 없대요.

다시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 없이 7년 동안 혼자 살아온 것도 부족해서 내가 또 혼자 살려고 나가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구속, 그리고 연좌제

그이 이야기는 언뜻 남편에 대한 원망과 푸념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개인의 절망과 상처에는 그 사회와 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이가 남편 없이 혼자 살아야 했던 데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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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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