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근 제일정형외과병원장이 고관절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 사당동에 사는 이모(74·여) 씨는 집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골절돼 가족에게 업혀 인근 의원을 찾았다. 의원에선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대형 종합병원에 문의했으나 금요일 저녁이라 수술을 할 수 없다는 답변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그러다 지인에게서 필자의 병원을 소개받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았다. 이 씨는 통증 때문에 몸에 손도 못 댈 만큼 위급해 긴급 수술을 받았다. 처음엔 숨이 넘어갈 듯하던 그는 수술 일주일 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허리 통증으로 시작
엉덩이 관절로도 불리는 고관절은 골반과 넓적다리를 잇는 구실을 한다. 야구 글러브 형태의 골반뼈 위에서 야구공 모양의 대퇴골두가 회전하는 구조로, 엉덩이 깊은 곳에 자리한다. 우리 몸에서 무릎관절 다음으로 큰 관절이며, 어깨관절 다음으로 운동 범위가 넓다. 걷고 뛰고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은 고관절 덕분이다.
여느 관절 부위와 마찬가지로 고관절에도 손상과 퇴화에 의해 관절염, 탈구 등 여러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그중 가장 흔히 발생하고 위험성이 높은 질환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과 고관절 골절이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은 골반뼈와 맞닿은 넓적다리뼈의 위쪽 끝부분인 대퇴골두로 가는 혈류가 차단돼 뼈 조직이 죽는 질환이다. 괴사한 뼈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면 괴사 부위가 골절되면서 통증이 시작되고, 이어서 괴사 부위의 피부까지 무너져 내리며 고관절 자체가 손상된다. 병명이 ‘거창’하고 유명 연예인들이 이 질환으로 고생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리다보니 마치 희귀성 난치병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고관절 질환자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이 질환은 뚜렷한 통증이 없다. 다만 허리 부위에서 통증이 발생해 서서히 골반뼈로 확장되면서 다리와 허벅지가 저려온다. 더불어 발을 내디딜 때 통증이 생기며, 양반다리를 하기도 어렵다보니 허리 디스크로 잘못 판단해 초기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잦다.
질환의 원인뿐 아니라 발생 과정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도한 음주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다보니 30~50대 남성 환자가 많다. 피부병과 관절염 치료에 널리 쓰이는 부신피질호르몬제(스테로이드)를 다량 복용한 환자에게서도 발병 률이 높다. 이밖에 대퇴경부 골절이나 고관절 탈구, 잠수병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수술
주 증상인 고관절 부위 통증은 괴사가 발생하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괴사 부위가 골절되면서 시작된다. 대퇴골두에 혈액 공급이 차단돼 괴사가 일어나도 한동안은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통증이 시작된다. 앉거나 누워 있을 땐 훨씬 편안하다. 통증과 대퇴골두의 함몰 변형으로 고관절 운동 범위가 줄어들어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기도 힘들어지는데, 대퇴골두 함몰이 심하면 다리 길이마저 짧아져 걸을 때 절뚝거리게 된다.
진단 방식도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의 초기 발견을 힘들게 한다. 엑스레이를 찍더라도 뼈의 변화가 50% 이상 진행돼야 확진할 수 있어 증상에 대한 환자의 설명만 듣고 판단하다보면 자칫 다른 질환으로 오인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특별한 허리 질환이 없는데도 허리와 엉덩이의 통증이 심하고 이로 인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