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출판계에 또 ‘하루키 열풍’이 불고 있다.
‘1Q84’로 선(先)인세 기록을 갈아치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색채가…’는 한국출판인회의가 8월 2~8일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예스24 인터파크도서 알라딘 등 8곳의 서적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판매량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학은 습작기”
사실 하루키 열풍은 ‘한국 출판계 내 일류(日流)’의 한 단면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요시모토 바나나,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다카노 가즈아키, 요코야마 히데오 등 일본 작가들은 한국 작가 못지않은 독자적 팬을 거느리고 있다. 일부 대형 서점들은 일본소설 매대를 따로 설치하고 있을 정도다. 반대로 한국문학이 일본 독자에게 어필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분야와 비교해볼 때 이례적이다. 한국의 TV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는 일본에서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득세하진 않는다. 축구, 야구 등 스포츠 분야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밀리지 않는다. 올림픽을 보면, 대다수 스포츠 종목에서 한국은 일본을 추월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경제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한일 간 격차는 크지 않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일본 전자업체들을 앞질렀다.
왜 문학시장에서만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고 있을까. ‘품질 면에서 일본문학이 한국문학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나올 수 있다. 작가 황석영은 한국문학이 세계적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오에 겐자부로(‘만엔원년의 풋볼’)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하는 동안 한국은 한 명도 내지 못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중국 작가 모옌도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우리가 매우 이해하기 힘든 일은, 한국소설 중엔 문학성을 떠나 팔리는 작품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조정래의 ‘정글만리’와 정유정의 ‘28’이 그나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한국문학은 문학성과 대중성에서 모두 신통치 않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문단에선 한국문학이 국내외에서 저평가되는 이유로 번역 문제를 꼽는다. 번역비용 등 정부 지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설가 박민규는 2007년 ‘문학동네’ 여름호에서 “일본소설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일본문학이 그만큼 앞섰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한국문학에 대해선 “단 한 번도 번성한 적이 없고 이제 겨우 습작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작가정신’의 결핍
한국의 주된 특성은 ‘출발은 늦지만 빨리 따라잡는다’는 점이다. 일본보다 근대화가 100년 늦었지만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선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이러한 ‘패스트 팔로어’의 모습이 문학 분야에선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번역과 같은 창작 외적 요소는 핑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는 한국 작가들의 ‘작가정신’ 자체에 문제를 제기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문학에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문인(文人)에게 과잉 보상을 안겨주는 편이다. 생존 작가의 기념관을 짓는 희한한 일이 그 단면이다. 조정래의 기념관만 두 개가 있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은 문학관, 자택, 집필실, 강연장을 포함한 호화시설을 갖췄다. 여기에다 한 기업의 후원으로 이외수문학상까지 제정됐다.
해외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우리 사회가 ‘박정희기념관’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왜 작가 기념관의 당위성에 대해선 침묵하는지 모르겠다. 특정 작가의 기념관이 과연 문학적인 업적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일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념적 목적, 상업적 의도가 작동한 결과’라고 의심한다.
우리 사회에선 ‘특정 정파를 편드는 것’과 같은 작가의 문학 외적 행위가 작가에 대한 평가에 반영된다. 그것이 현실적 보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그릇된 전통이 창작열 자체를 왜곡시킨다. 작가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격을 높이는 데 혼신을 힘을 쏟기보다는 작품 외적인 데에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는 것이다.
일본문학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책값이 아깝지 않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장인정신 덕분이다. 이들은 마치 분업을 하듯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으로 나뉘어 각 분야에서 깊이 있게 파고든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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