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남방해상로를 거쳐 전해졌다

울산 암각화에 드러난 수메르 신화

  • 조철수·서강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

    입력2006-08-11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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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암각화 발견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8월1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암각화 국제학술대회’에 고전 신화학자인 조철수교수(이스라엘 히브리대)가 ‘정보의 발생과 그림문자, 그리고 울산암각화의 상징체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조교수는 우리 선사문화의 실체를 밝혀주는 핵심 유적인 울산 암각화가 일정한 스토리를 담은 고대설화이며,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네발 달린 용 그림’ 등이 암각화에 나타나는 것은 인도 및 동남아 해상로를 경유해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한국에 전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철수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하여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한 글을 싣는다. -편집자》
    인류 문화 발달에 있어 언어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진 가장 초기 단계의 의사소통 수단은 몸짓이며, 또 다른 정보 교류 방법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석기 시대의 동굴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들소, 사슴, 큰 새 등은 단순히 대상물을 묘사한 개별적 그림으로 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제의(祭儀) 양상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석기 시대에 나타나는 상징 그림들도 대개 보편성을 지니며 여러 집합으로 분별하여 분석할 수 있는데, 특히 암각화에서 그 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살필 수 있다. 종교의례는 집단적으로 거행되는 행사이며,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는 목적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졌음을 청동기 시대 이후의 고대 근동 문헌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암각화를 이해하는 데는 그림 자료와 그림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문헌의 비교가 필요하다.

    한국의 암각화 자료는 수효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시대적으로 변천 과정을 추정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경상도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적은 수량의 암각화가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데, 암각화에 보이는 작은 단위의 여러 무늬는 구(舊)유럽(흑해 위쪽 지역)과 중앙 아시아 지역의 신석기 시대 상징 무늬와 보편적으로 비슷하다.

    특히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 있는 마름모 물결 무늬, 동심원, 연못과 사슴, 사슴 뿔 위에 있는 동심원 그림, 작은 동물들과 꽃 모양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남자, 뱀 모양과 그 옆에 마름모 모양의 연못 등 몇몇 집합 그림은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도 유사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울산 암각화에 나오는 집합 그림을 중심으로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 대조하면서, 또한 한국의 고대 설화와 비교하여 그림과 문헌의 연결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아래 부분에는 긴 발이 네 개 달린 용 그림이 있다. 네 발 달린 용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바빌론의 이쉬타르 성문에 채색된 돌로 용 모양을 새긴 그림이며, 그 외 많은 원통형 인장에서 용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이렇게 생긴 용은 ‘바다 용’을 가리키는데, 신들의 대적자로 등장한다. 신들의 용사가 바다 용을 무찌르고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이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청동기문화의 산물인 한국 고대 암각화에 메소포타미아의 네 발 달린 용 그림이 나타난 것일까. 이런 연결고리를 직접적으로 밝혀주는 문헌자료는 없다.

    해상로를 따라 건너온 수메르 신화

    다만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남단의 부족국가들과 서역(인도) 사이에 해상 왕래가 있었다는 흔적은 발견된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돌하루방과 제주도에 있는 것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도 그렇고, 한국의 대표적인 청동기 문화라고 하는 고인돌이 일본, 중국 남동부, 베트남, 태국 동북부, 인도네시아의 자바와 수마트라,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인 이란,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도 나타난다는 점도 그렇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주로 남방의 해양 루트에서 고인돌을 발견할 수 있다.

    문헌적 방증으로는 ‘삼국유사’에 전해진 가락국기의 김수로왕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후 1세기 경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동쪽에 있는 아유타라는 왕국의 공주와 혼인했다고 전한다. 아유타국 공주가 가락국까지 배를 타고 와서 그 왕과 혼인하였다는 국가적 행사는, 두 나라가 일회적이 아니라 빈번하게 교류했기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상정할 수 있다.

    중국의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에는 서기 120년경에 로마의 곡예사들이 중국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로마 왕이 중국과 사신을 교환하기 원했다고 전한다. 이 당시 로마인들이 중국에 도달하는 경로는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를 경유하는 해로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국의 남쪽 해안 지역과 우리나라 남해안 쪽에서 유사한 문화적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삼국유사에 전해진 김수로왕의 혼인 이야기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잦은 왕래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언어적으로 보아도 인도에서 널리 사용되는 드라비다어와 고대 한국어 사이에 연관된 단어가 수백 개나 되는 것은 서역 문화가 우리 고대국가 문화에 유입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강길운, 韓國語系統論, 드라비다어와 고대 한국어의 어원 연구자료로 1370여 개의 어휘를 제공하고 있음). 특히 벼 농사와 관련된 많은 어휘가 대부분 드라비다어라는 점도 중요하게 지적되는 부분이다.

    분명한 사실은 기원전 25세기에 이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과 인더스 강 유역 사이에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이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인도 쪽으로 전해진 증거들도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10∼6세기에 바빌로니아 왕들이 페르시아 만을 통해 바다 건너로 피신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동쪽으로 전해지는 경로도 볼 수 있다. 또 기원전 4세기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길에서도 서방문화의 전파를 확인할 수 있다.

    울산 암각화 뿐 아니라 한국의 고대 신화에 고대 근동의 신화소가 있는 것은 이러한 문화 전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배경을 전제로 울산 암각화의 집합 그림을 구체적으로 해석해보자.

    물을 상징하는 물결무늬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는 물결무늬와 물결무늬로 이루어진 마름모 모양이 많다. 물결무늬 자체가 물을 상징한다는 것은 문화의 보편성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명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구(舊) 유럽과 고대 근동의 신석기 시대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결무늬는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 등을 표현한 것이며, 농경사회에서 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건기와 우기가 구별되는 근동 지역의 농경문화에서는 우기에 내리는 비와 지하 암반에 고인 지하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들의 종교제의 뿐 아니라 신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하수는 건기에 생명을 유지시키는 원천이었고, 또한 사제들은 지하수로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진행했다. 고대 근동의 청동기 시대 문헌에 나오는 비를 기다리는 기도문과 마귀를 쫓는 주문(呪文)이 이를 입증한다.

    ‘지하수의 일곱 아들이 물을 거룩하게 한다. 물을 깨끗하게 한다. 물을 빛나게 한다.’

    또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제들이 지하수로 병을 치유하였다는 것은, 의사를 ‘물을 아는 자’라는 단어(수메르어로 ‘아-주’)로 불렀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 나오는 물결무늬는 물의 그림문자다. 토기 등에 단순하게 그려진 것도 있지만 점토로 만든 모신(母神)에 새긴 문양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빗금 무늬가 새겨진 메소포타미아 모신상이 알려주는 정보는, 단순한 빗물과의 관계뿐 아니라 땅의 모신과 고인 물(지하수)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지모신(地母神)은 땅 밑에서 올라오는 지하수나 연못에 고인 물의 생명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또 물결무늬를 겹쳐서 그린 마름모꼴 문양이 모신의 몸체에 그려진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마름모 무늬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수사슴이나 황소가 마름모에 교미하는 장면은 이와 같은 마름모의 상징성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한편으로 땅에 고인 물이나 지하수는 저승과 연관되며 물결무늬 같은 빗금무늬는 뱀의 표상으로도 등장한다. 빗금무늬는 나무빗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대 근동의 장례에 여자 곡(哭)꾼들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는 관습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물결무늬의 그림문자는 다른 요소와 합해지면서 여러 상징체계를 구성한다.

    천전리 암각화의 가운데 부분에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큰 뱀과 마름모 모양 연못이 나온다. 뱀은 남성과 관련이 있고 연못은 지하수 및 지모신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으로 전해진 신화에서도 지하수 신, 두 뿔 달린 뱀 모양 저승신, 저승사자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좋은 나무의 주(主)’(닌-기쉬-지-다)라는 이름을 가진 수호신은 뿔 달린 두 뱀을 상징으로 하며, 개인이나 가문의 수호신으로 저승 선신이다.

    그리고 수메르어로 뱀을 ‘무쉬’라고 발음하는데 남자 성기와 나무도 같은 발음이다. ‘남자가 여자와 성교하다’는 ‘남자 성기/나무를 박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남자의 성기/나무와 뱀의 발음이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모신의 몸에 빗금/뱀 무늬를 그려 넣어 풍요 다산을 의미한다는 것을 수메르어의 어휘 발달과정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뱀을 표상하는 남성신 닌기쉬지다는 수메르 신화 ‘거룩한 도시 딜문’에서 ‘팔을 치켜드는 새싹 여신’을 아내로 취한다.

    다른 신화 ‘인안나의 저승 여행’에 의하면 닌기쉬지다는 포도주 여신이 저승에 내려가 6개월 지내는 동안 그녀의 배우자로 선택된다. 뱀을 표상하는 닌기쉬지다는 치유의 신으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조철수, ‘수메르 신화 1’ 참조).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화인 아담과 그의 아내와 열매 이야기에 뱀이 등장하는 것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승된 이야기다. 에덴동산의 뱀은 수메르 신화의 뱀 신인 닌기쉬지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조철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참조).

    초기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타락한 천사 사마엘이 뱀을 타고 하와에게 다가와서 그녀를 임신시켜 카인을 낳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뱀 신과 여자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통용되었던 몇몇 원통형 인장에 뱀 신이 여자에게 열매를 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서로 꼬고 있는 뱀 두 마리가 치유의 신으로 고대 그리스 세계에 전해졌으며,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기원전 30년 사망)의 동전 뒷면에도 나타난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병원이나 약국의 마크로 두 마리 뱀 문양이 사용된다.

    천전리 암각화에 나오는 큰 뱀의 모양과 뱀을 뜻하는 수메르 상형문자 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뱀 대가리 위에 뿔이 두 개 달려 있다는 점이다.

    천전리 암각화의 중심부에 그려진 사람 가면과 그 옆의 큰 뱀, 그리고 뱀 옆의 여러 마름모 모양(연못)이 한 집합을 이룬다고 상정하면 뱀과 남자가 등장하는 구렁이 설화와도 연관시켜 이야기할 수 있다.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미남자가 되었다는 변신 이야기가 구렁이 설화다. 여기서 변신한 미남자는 암각화의 가면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못가에서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에 관한 이야기로 동서양에 잘 알려진 신화는 길가메시 서사시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6세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루크의 왕인데 그의 영웅담이 후대에 전해지며 긴 장편 서사시로 편집되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뱀과 연못이 나온다.

    길가메시는 자기와 쌍둥이 같은 친구 엔키두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동쪽 머나먼 곳에 생명초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여행길을 재촉한다. 뱃사공의 도움으로 침묵의 바다를 건너 죽음을 무릅쓰고 고생한 끝에 불로초를 구한다. 불로초를 손에 쥔 길가메시는 말한다.

    “이것을 연장자들에게 먹으라고 주겠고 그들은 이 풀을 서로 나눌 것이다.”

    그는 기쁨에 차 꽃을 손에 쥐고 자기 도시로 달려간다. 마침 연못을 지나가게 되었다. 얼마나 더웠던지 그만 그 꽃을 연못가에 두고 물 속에 들어간다. 그 때 연못 저편에서 뱀이 꽃향기를 맡고 다가와 먹어버린다. 뱀은 허물을 벗고 재기(再起)한다. 길가메시는 “누구를 위하여 내 심장의 피를 흘렸느냐?”고 한탄하며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길가메시라는 이름은 늙은이(길가)와 젊은이(메시)의 두 단어를 붙여 만든 고유명사다. 즉 ‘늙은이가 젊은이’라는 뜻이다. 길가메시는 죽어서 선신이 되어 저승의 감독관 노릇을 한다.

    따라서 천전리 암각화의 중앙 부분에 물결무늬로 그려진 연못 모양과 뱀 문자, 얼굴 가면 등을 길가메시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천전리 암각화에 물결무늬와 마름모 모양이 많이 나오며 동심원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못과 관련된 여행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다. 암각화 가운데에 작은 동물들과 꽃 모양이 나오며 그 앞에 남자가 서 있다.

    여기서 꽃이 꽃밭을 상징한다면, 이 집합 그림에서 한국의 원형신화인 ‘원앙부인 본풀이’의 꽃밭을 연상할 수 있다. 일명 ‘안락국전’으로 알려진 원앙부인 본풀이는 여러 판이 있으며 제주도 무속신화에 ‘이공본풀이’로 전해진다.

    원앙부인 신화의 주제는 꽃밭이다(조흥윤, 한국의 원형신화 원앙부인 본풀이). 임신중인 부인을 두고 남편이 서천 꽃밭으로 떠난다. 꽃감관(花監官)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내는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따라가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발병이 나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그 동네 부자에게 자신을 팔고, 남편은 서천 꽃밭으로 간다.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게 된다. 여러 본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공본풀이를 따라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세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다가 나무하러 가는 할락궁이를 불러서 말하기를 “오늘 흰 사슴을 보게 될 것이니 집으로 끌고가서 매두었다가 도망가거든 사슴을 찾는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집주인은 아들에게 하루 쉬라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한테 가서 아버지 간 곳을 물으니 “네 아버지는 서천 꽃감관 김생원이다”고 답했다. “징표가 무엇입니까?”하니 참실 한 꾸러미와 빗을 내어 주었다. (나무빗은 빗금무늬와 연관되며 고대 근동의 장례의례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는 관습과도 연결되는 점에서도 원앙부인 신화의 빗은 저승의 의미를 지닌다).

    아들은 봇짐을 챙겨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집주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개를 풀어 도망간 아들을 잡아오게 하지만 실패한다. 끝내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아들이 사람 살리는 꽃을 들고 와 어머니를 살리는 이야기다.

    천전리 암각화의 중앙 부근에 사슴, 작은 동물들, 꽃, 남자 등은 ‘원앙부인 본풀이’ 신화를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춘분과 추분에 행하는 의례

    천전리 암각화 오른쪽 부분을 보면 사슴의 큰 뿔 위에 동심원 무늬가 있다. 동심원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못을 상징하며 때로는 태양을 뜻한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고대인들은 춘분과 추분 때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점을 종교생활에 이용하였다.

    종교의례는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는 제의다. 고대 근동의 청동기시대 문헌에 의하면 대대적인 종교의례는 주로 춘분과 추분에 거행된 신년행사였다.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대 근동 문화에서 춘분과 추분이 한 해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의 거주지에 20여 개의 돌기둥을 둥그렇게 세워놓은 곳이 많은데, 이는 춘분과 추분을 정하는 생활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양이 하늘에 머물고 있는 길이를 그림자로 계산하여 낮과 밤의 차이를 산출하는 문화에서 태양은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신석기 시대 구 유럽과 근동 지역에서 태양의 상징 무늬는 대개 동그라미였으며 때로는 동그라미 안에 점 혹은 십자를 그렸다. 혹은 동그라미 안에 꽃무늬가 그려진 것도 있으며 바퀴 모양도 나온다.

    꽃무늬의 태양은 밤에 땅 밑으로 내려갔다가 새벽에 떠오르는 밤 태양을 가리키며, 동그라미 안에 점이 있는 태양은 낮 태양을 뜻한다. 또 십자 그림은 날아가는 새(태양신을 의미)를 상징하는데, 이것이 후대에 십자 상징그림으로 정형화된 것이다. 이처럼 동그라미와 합성된 태양무늬에도 여러 정보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다른 시각의 태양을 알려주는 그림문자다.

    신석기 말기에 자주 나오는 그림 가운데 십자 모양 혹은 동그라미 안에 꽃무늬로 표현한 태양을 사슴이 그의 등이나 두 뿔 위에 얹고 달아나며 그 뒤에서 사냥꾼이 활을 들고 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사슴이 저승에서 태양신의 딸을 취하여 저승 밖으로 도망나올 때 저승 주인이 사슴을 쫓아와 활을 날려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는 이야기다. 후대에 전해진 ‘사슴과 사냥꾼’의 신화다.

    여기에서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꽃무늬는 연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꽃은 저승/지하에서 땅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며, ‘사슴과 사냥꾼’ 신화에서는 태양신의 딸(혹은 태양신의 아내)이라는 상징으로 객관화된다.

    천전리 암각화의 오른쪽에 그려진 연못과 사슴, 사슴 위에 활과 화살이 나온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의 암각화 그림 ⑩에서 발견되는 ‘사슴과 사냥꾼’ 이야기로 추정하기에 충분하며 우리에게 전해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상상할 수도 있다.

    또한 그 옆 그림이 사슴 뿔 위에 동심원 태양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면 사슴이 그의 뿔 위에 태양신의 딸을 태우고 도망가는 광경이라고 볼 수 있으며, 활시위에 위협받는 사슴이 연못가에 서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연꽃무늬는 고대인들이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저승과 관련하여 사용한 상징그림이다. 밤이면 물에 잠겼다가 아침마다 물 위로 떠오르는 연꽃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적절한 재생의 상징이었다.

    연꽃무늬와 저승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연꽃은 혼돈의 물을 극복하고 질서가 잡힌 우주를 가져다주는 힘의 모형으로 생각되었다. 고대 이집트 그림에 연꽃 냄새를 맡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질서의 근원적인 힘과 생명력과 존재의 기쁨을 연꽃과 함께 하려는 몸짓이다.

    고대 이집트어로 연꽃 신은 네페르템, 즉 ‘(밤의 태양신) 아템은 아름답다’는 뜻이다. 네페르템은 향기로운 운향과 관련되어 ‘운향의 주(主)’라고도 불린다.

    장례의식 가운데 일차 장례를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뼈를 모아 석함(石函)에 넣는 장례 방법이 있다. 이러한 납골석함 의례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금석병용기에 일반적으로 거행하던 관습인데, 납골석함 표면에 연꽃 무늬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밤 태양을 상징하는 연꽃무늬는 자연히 저승과도 관련된다. 우리나라에서 상여 몸체를 연꽃무늬로 장식하는 것을 불교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이러한 관습에서도 발견된다.

    연꽃 무늬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생명의 나무를 가꾸는 정원(꽃밭)의 상징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신화의 에덴동산이 이와 같은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인들은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상징 그림을 사용하였다. 암각화에 그려진 신석기 시대의 상징그림은 고대 근동의 그림문자처럼 일정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또 상징그림이나 그림문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징체계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고대인의 상징그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문헌에 반영된 여러 자료를 통하여 분석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울산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를 거친 청동기 문화의 산물이다. 전체적으로 울산 암각화는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 다를 수 있지만 청동기 농경문화라는 관점과 사슴 등이 나오는 장면, 집합 그림이 크게 구분되어 나오는 점, 고대 문양에서 가장 보편적인 동심원·마름모 모양·물결무늬 등이 보이는 점은 고대 상징문자의 보편성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울산 암각화에 표현된 동물들이 움직이는 방향과 사람의 생김새 등은 전체적으로 종교제의를 거행하는 장소에 그려진 파노라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정해진 계절에 따라 종교제의를 행하는 집행자의 사설(辭說)을 들으며 동참하던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암각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는 길은 작은 단위의 집합 그림에서 상징무늬의 연결점을 구하고 우리의 고대 문헌(혹은 전승)에서 그 단서를 잡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의 사상과 전통과 관습 등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이며, 한국의 암각화를 창출해낸 우리 선사인들이 전달하려는 문화 내용(세계관)이 우리의 문화 유산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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