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對北 상호주의

  • 송문홍·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입력2006-08-08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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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각에선 적극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돌려보낸 것은 잘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공식 의제로 꺼내지도 못한 정부의 태도를 비난한다. 문제는 상호주의다. 우리가 북한에 하나를 주면 북한도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는 상호주의, 우리가 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받는다는 상호주의, 과연 무엇이 진짜 상호주의인가.
    “역 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통일과 남북화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생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수해온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조차 이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큰 방향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되자 그들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가 이른바 ‘상호주의’다. 즉 북한이 바뀌지 않는데 우리만 바뀔 수 없다, 우리 사회 내부의 국가보안법이나 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는 북한 형법이나 국군 포로·납북어부 송환문제와 상호 연계시켜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중략)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논리가 상당수 우리 국민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기본적으로 통일보다는 현 체제 내에서 기득권 유지에 관심이 있는 극우세력은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상호주의’라는 망령을 극복하는 것은 현재 우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후략)”

    이 글은 ‘대자보(www.jabo.co.kr)’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상호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해온 것이다. 요즘 ‘제도권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된 신종 매체가 ‘인터넷 언론’이다. 이 글은 진보적인 색채를 띤 이 인터넷 언론의 2000년 6월21일자 39호에 올라 있다(글쓴이 이장규 nlflee@chollian.net). 6월21일이라면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시점이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에는 위의 글과는 정반대의 정서와 논리를 대변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다음은 ‘납북자 가족모임(www.comebackhome.or.kr)’ 사이트에 지난 9월2일 납북자 가족일동 명의로 올려놓은 ‘결의문’ 중 한 대목.

    “오늘 장기수들을 송환하면서 우리 가족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그들이 비록 남한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이고 빨치산이지만,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는 그 아픔을 납북자의 가족인 우리는 알고 있기에,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장기수들을 북송한다고 하여도 참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감을 축하하고 북에 있는 우리 가족에게 편지 전달과 생사확인을 부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돌아온 것은 ‘납북자는 없다’는 망언뿐이었다. 얼마나 우리 납북자 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어야만 하는가. (중략)



    정부는 말로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납북자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실정이다. 심지어 남한에 있는 납북자 가족들의 연락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놓고 무슨 협상을 하고 무엇을 북에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후략)”

    갈등의 원천, 상호주의

    ‘상호주의’를 분석하는 기사의 앞머리에 두 가지 글을 인용한 이유는 상호주의라는 주제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인식에 엄청난 스펙트럼을 안고 있고, 따라서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원천이 될 소지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맨 앞의 글을 쓴 이처럼 진보적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상호주의는 수구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논리일 뿐이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분단체제 극복과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상호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통일과정에 적용돼야 할 원칙은 ‘내가 하나 주었으니 너도 하나 내놓으라’는 상호주의가 아니라 남북이 함께 한결 인간적인 삶을 지향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장사치의 거래방식’일 뿐인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수구세력은 단순히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딴죽을 거는 수준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인 통일의 근본 의의를 훼손하는 ‘반민족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형법이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먼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고, 국군포로나 납북 어부의 송환을 요구하기 전에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못 믿을 상대’일 뿐이다. 이들이 보기에 ‘상호주의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실체를 모르는 철부지들’일 뿐이다. 이들은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방식의 통일을 이루려면 상호주의만한 원칙이 없다고 주장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하나씩 교환함으로써 북한은 자신도 모르는 새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된다는 논리다. 이들이 보기에, 얼마 전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어부 문제를 공식 의제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못한 우리 정부는 국가의 존엄성과 기본 책무를 망각한 ‘답답하고 얼빠진’ 정부다.

    요컨대 상호주의 문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인식의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직접 겪고 분단 50여 년간 남북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온 기성 ‘반공세대’의 심리 근저에는 ‘북한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우리의 적’이라는 전제가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그 전제가 틀렸다고 한다면 그들의 세계관과 정체성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반면에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나 진보성향 인사들의 심리 기저에는 (한 보수 논객의 말처럼) “민족 정통성 측면에서 북은 남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고, 이는 남북협상 과정에 북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태도로 나타날 수 있다. 바로 그런 인식의 혼란상이 현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예가 상호주의라는 것이다.

    98년 4월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러면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는 상호주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상호주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개념은 그 동안 상당한 ‘진화과정’을 거쳐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98년 4월 대북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베이징에서 열렸던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견지했던 비교적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과, 남북 정상회담 이후 상호주의를 언급하는 횟수가 드물어져버린 최근 우리 정부의 입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기능주의적 접근법’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나간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남과 북이 원칙을 놓고 싸우다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겠다는 것이고, 6월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기능주의적 접근법의 찬란한 성과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그런 기능주의적 접근방식 때문에 정부는 상호주의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런 방식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그토록 남북관계에 집착하다가 우리가 마지막까지 견지해야 할 대전제와 원칙마저 잃어버리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우려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쌀 퍼다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북한 눈치를 보느라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것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지금까지 상호주의와 관련해서 취해온 태도에는 일면 이해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다. 원천적으로 소수 정권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로서는 우리 사회에 두텁게 포진하고 있는 보수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국내 여론의 향배에 정책 기조가 영향을 받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북정책의 원칙 중 한 가지라 할 상호주의의 기본 개념과 현실 적용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은 여러 전문가들이 비판하고 있는 대목이다.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김대통령은 98년 5월 대북 교류·협력 3원칙으로서 ▲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하고 ▲ 남북경협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서 기업의 자율적인 대북 투자활동을 지원하겠지만 ▲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차원의 지원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98년 4월11∼17일에 열린 베이징 남북당국대표회담에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북 비료지원 문제에 상호주의를 적용해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북한도 우리의 이런 입장을 일정 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교류·협력 사례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주의라는 단어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금의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치는 양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상호주의는 국내적 컨센서스의 결집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제껏 정부가 상호주의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 정리 및 협상과정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식 등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호주의와 관련해서 최근 논란이 됐던 뜨거운 이슈가 앞에도 인용한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그에 따른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요구 문제다. 정부는 지난 9월3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냈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1953년 포로교환을 통해서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만큼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켜) 물밑 접촉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김대통령, 9월3일 방송의 날 회견)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많은 ‘논평’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은 귀환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거국적으로 환영하는데 우리는 문제 제기는커녕 제발로 찾아온 국군포로마저 조사하는가(공교롭게도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에 송환된 9월3일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몇 명이 국정원에서 몇 달째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발표됐다)”(한국일보 시론)라는 비판에서부터 “아무리 남북화해가 중요하다지만 나라의 근본을 깨는 방식의 ‘화해’란 있을 수 없다”(조선일보), “상호주의 원칙이 제기되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을 지닐지는 몰라도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대한매일) 등 입장을 달리 하는 온갖 말이 터져 나왔다.

    먼저, 정부의 최근 행보에 비판적인 쪽의 논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정부는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박재규 통일부장관)는 황당한 발언에서부터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위’로 다루겠다는 모호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 결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명문화하면서 정작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거론조차 못 했다.

    ▲ 이번에 북한에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63명 중 14명은 빨치산, 49명은 남파간첩 출신으로 남한체제를 전복하려고 활동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다. 반면에 국군포로는 북한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다가 잡힌 체제 수호자다. 따라서 국군포로는 냉전의 유산이 아니라 국가관과 안보관 유지에 관한 문제이며, 이 문제가 소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로 처리될 수는 없다. 납북자들 역시 북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이므로 정부는 당연히 송환 요청을 해야 했다.

    ▲ 따라서 국군포로 및 납북자는 ‘물밑접촉’이 아니라 당당하게 비전향 장기수와 맞바꾸어야 했다. 나아가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장관급회담의 주 의제가 돼야 옳다.

    다른 한편,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한 북한전문가는 정부 주장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결정하면서 상호주의 차원에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많지만, 우리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제기하면 모처럼 해빙기를 맞은 남북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태도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김대통령도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이 두 가지는 단지 시차의 문제인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지금까지 ‘국군포로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온 북한측은 오히려 반공포로 문제를 들고 나와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한 것에 대해 북한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나올 수도 있고 “그들이 주변의 강압 때문에 자의에 반해서 반공포로로 둔갑했던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 역시 만약 북측에서 ‘납남자’ 문제를 제기하면 아주 복잡해진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고 본다.”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등가성?

    한쪽에선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당분간 덮어두려는 정부의 태도를 놓고 “국가의 기본 책무를 망각했다”고 비난하고, 다른 한쪽에선 “지금 상호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한반도를 다시금 냉전지대로 되돌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논란의 핵심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서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연계해야 하는지 여부인데, 앞으로도 양측이 쉽사리 접점을 찾기는 어려우리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표면으로 드러난 것은 상호주의 논쟁이지만 그 논쟁의 뿌리는 우리의 대북인식,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닿아 있고, 이 부분에 대한 각계각층의 견해 차이는 통일이 되는 날까지 좁아지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도 이런 유의 논쟁이 사안을 달리해서 계속 등장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상호주의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해 상호주의 원칙의 핵심 중 한 가지인 ‘등가성(等價性)’의 측면에서 이 두 가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등가성으로 본다면 비전향 장기수는 남이 북에 올려보냈던 북파공작원과, 납북자는 납남자와 교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보수성향의 대북협상 전문가인 이동복 전의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비전향 장기수는 그 성격상 정규 인민군으로서 전쟁행위에 종사하다가 붙잡힌 전쟁포로가 아니다. 이들은 국내법적으로 범법자들이고, 국내법에 의거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며, 형을 살고 나온 뒤 그들이 남과 북 어디에 귀속돼야 하는가는 별개 문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들을 무조건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이들을 북송하자는 주장은 북한을 모르는 얘기다. 그들을 보낼 때에도 북한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괄적으로 보내야 한다.

    반면에 국군포로 문제는 인도주의적인 사안이 아니라 전쟁포로에 관한 국제협약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국군포로는 없다’고 주장해온 것은 명백한 국제적 범죄행위이며, 이 문제는 국제법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납북자 문제 역시 북한에서는 그들을 간첩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적십자사나 유엔 등 중립적인 제3자가 사실확인을 거쳐 처리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제각각 다른 성격의 문제들을 남북 당국이 모두 두루뭉실하게 다루고 있다.”

    이 전의원은 “상호주의란 등가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고, 단순한 주고받기와는 다르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상호주의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자신을 보수나 진보로 분류하지 말아달라는 한 북한전문가는 좀더 원론적인 차원에서 상호주의 문제를 이렇게 얘기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진보인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라는 고정관념이 그것인데, 지금의 북한은 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가 말했듯이 일종의 ‘유격대 국가’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 사회주의라는 껍질만 쓰고 있을 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습권력이 법보다 우위에 있는, 그리고 지도부의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전제 위에서 모든 사안을 바라보려고만 한다. 우리보다는 북한을 더 배려하는 심리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은 철저하게 상층부의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고, 상호주의도 그런 맥락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호주의의 뿌리

    그러면 상호주의의 연원은 어디인가. 사실상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주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비근한 예로 동서독의 경우 상호주의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상호주의적인 성격을 띤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내독(內獨)관계를 확대·발전시켜갔다. 양측은 경제협력 대 인도주의 문제, 경제지원 대 정치범 석방 등의 교차협상 방식으로 상호이익을 추구했고, 이런 경험이 축적되는 가운데 교류·협력이 활성화되었다는 것. 70년대 이래 소련을 배경으로 한 동독은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서독과의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적 이득과 국제적 인정의 획득 등 다양한 이익을 추구했다.

    남북대화 역사에서 봐도 상호주의라는 용어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80년대의 남북대화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측 발언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90년 2월22일 당시 솔로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미하원 외교청문회에서 한 발언에도 “상호주의 원칙을 전제로 북한과 접촉 확대를 희망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표현대로라면 상호주의는 남북대화뿐만 아니라 북미관계에서도 준거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호주의는 지금 우리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상호주의와는 내용 면에서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주고받기(give · take) 혹은 응보(應報) 논리(Tit-for-Tat)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냉전체제하에서 적대적 갈등관계로 일관했던 당시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작년 6월 말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를 방문했을 때 현 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해서 한 말이 이런 식의 상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 전대통령은 “포용정책은 반드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면서 “상호주의란 적이 때리면 우리도 때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에 열렸던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도 상호주의는 이런 주고받기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4개 공동위원회별로 협상을 했는데, 그중 하나인 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남북한 군시설 공개 문제를 놓고 이른바 ‘대칭적 상호주의’에 대해서 끝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남측은 당시 국제문제가 되고 있던 북한의 핵의혹 시설에 대한 공개의 대가로 남측 군시설의 개방을 제의했는데, 북측은 “사실상 핵위협은 오히려 남쪽에 있다”면서 남측이 먼저 공개하라고 해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무산됐던 것이다.

    일반 국민 사이에 상호주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구체적으로는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노인의 북송이 계기가 됐다. 이인모 노인을 조건 없이 북으로 돌려보낸 것(1993년 3월19일)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의욕적으로 펼쳐보였던 첫번째 대북 제스처였다. 당시 의욕에 넘쳤던 김영삼정부는 한 가지씩 주고받는 식의 엄격한 상호주의에서 탈피해 어느 정도 과감한 대북정책을 통해 명분축적과 함께 북한에 부담감을 지운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금세 빛을 잃어버렸다. 북한은 김영삼정부의 ‘유화정책’에 호응해오기를 번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1994년 10월 정부는 미국과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에 합의했고 11월에는 핵-경협 연계정책을 포기했지만, 북한은 그해 11월 조평통 담화를 통해 김영삼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전쟁연습을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은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1995년 6월에 있었던 15만t 대북 쌀지원도 상호주의가 파국으로 끝난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6·29 지방선거와 일본의 대북 쌀지원이 임박한 상황에 급박하게 이뤄진 김영삼 정부의 쌀 지원은 쌀수송 선박에 대한 북한의 인공기 게양 요구로인해 ‘쌀 주고 뺨 맞은’ 결과를 초래했던 것.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집권기간 내내 온탕과 냉탕, 온건책과 강경책을 오락가락했고, 일관된 전략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상호주의는 김영삼정부 시절에 비해 한결 ‘정돈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집권 초기인 1998년 5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TV대화’에서 상호주의에 대해 전범이 될 만한 발언을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무상으로 지원할 부분은 무상으로 지원하고,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민간기업 차원의 교류협력을 실현하며, 정부 대 정부 간에는 하나를 주면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는 상호주의가 돼야 한다”는 말이 그것. 김대통령은 또 그 며칠 전인 4월29일 “국민 세금을 기초로 한 예산이 필요한 남북거래에서는 상호주의를 견지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당시 베이징에서 열렸던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남측이 견지한 기본틀이 됐고, 이런 비교적 ‘엄격한 상호주의’로 인해 결국 회담은 깨졌다.

    정부의 ‘상호주의 해석’에 변화 기미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들어서부터. “남북대화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되 대북 농업지원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비동시적·비대칭적·비등가적으로 연계하는 등 탄력적으로 적용한다…”(1월7일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북지원과 관련, 상호주의 원칙을 지난해보다 융통성 있고 탄력성 있게 적용할 방침…”(1월29일 강인덕 통일부장관) 등의 발언이 신호탄이었다. 이때부터 정부 당국자가 상호주의를 거론할 때에는 대체로 ‘비동시적·비대칭적·비등가적’이라는 표현이 따라붙게 됐는데, 이는 상호주의 개념이 과거에 비해 좀 더 유연한 형태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김대중 정부는 상호주의에 대해서 그 적용에 있어서 수위 조절은 있었을지언정 나름의 논리적 일관성은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김대통령은 지난 3월16일 재향군인회 초청 다과회에서 “북한 동포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에는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겠지만,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와주고 기업을 세워주는 경제협력에서는 상호주의를 적용할 것”이라고 말해 집권 초기의 원칙을 재천명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상호주의에 대한 이런 논리적 일관성과 함께 좀더 유연해진 현실 적용이 북한을 정상회담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진짜 상호주의는 이제부터

    그러나 북한은 최소한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는 상호주의에 대해 시종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례로 1998년 5월 북한 ‘로동신문’은 “조국통일 문제를 외면하고 나라 사이에서나 적용되는 ‘상호주의’를 운운하면서 동족간에 무엇을 계산하려 드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제한적이나마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는 사실은 북한이 말로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할지언정 현실에서는 DJ식의 유연한 상호주의에 호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을 분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남북관계에서도 이제 과거의 틀에만 안주해서는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게 된 측면이 많다. 최근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란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저마다 고정관념이 돼버린 기존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면서 촉발됐던 문제였다. 북한의 협상행태를 오래 연구해온 김도태 박사(충북대 교수)의 말이다.

    “상호주의는 앞으로도 국가간 협상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을 원칙의 한 가지임에 분명하다. 교환 조건과 내용 면에서 즉시적인 대가를 기대하건 시차를 두건 등가성이 있건 없건 간에,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서 어떤 행동을 취할 국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지금까지는 냉전적 갈등구도 속에서 원래 의미의 상호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상호주의라고 해도 기껏 응보논리(Tit-for-Tat)식의 상호주의만이 강조돼왔을 뿐이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큰 틀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 상호주의에 대한 좀더 진지한 성찰이 따라야 한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진짜 상호주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상호주의를 놓고 최근 벌어진 논란은 보수와 진보의 구별을 떠나 국력낭비라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큰 틀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는 사실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질 것이고, 그런 점에서 모든 이 새롭고 넓은 시각에서 상호주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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