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하고 천박하고 끈적거리는 삼류 필름. ‘살 냄새’ 물씬한 섹스의 천국에도 걸작이 있고 거장이 있다. ‘목구멍 깊숙이’부터 ‘젖소부인’까지. 에로 사극, 핑크 무비, 하드코어 포르노의 은밀한 유혹.》
같은 이유로 에로영화는 불경스럽고, 천박하며 싸구려 장르로 대접받는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서구영화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에로영화만큼 국제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며 검열시비에 휘말린 장르는 없다. 왜일까.
에로영화는 모름지기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장르로 치부되며,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금단의 세계를 스크린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싸구려문화에서도 이따금씩 대단한 결과물이 생겨나곤 한다. 오시마 나기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같은 거장들이 비도덕적이고 음탕한 영화를 만들어 평단의 격찬을 받은 적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에로영화에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함의가 충분히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에로영화에도 ‘걸작’은 있는 법이다.
영화역사를 돌아보면 스크린에서 성적 표현이 시도된 것은 영화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1915년 미국에선 오드리 먼슨이라는 여배우가 ‘영감’이라는 영화에 전신 누드로 등장했다. 여성의 성 상품화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물론 본격적인 성인영화가 탄생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엠마누엘’과 실비아 크리스텔
미국에서 최초의 하드코어 포르노는 ‘목구멍 깊숙이’라는 영화였다. 극장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1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성인용 에로영화가 짭짤한 돈벌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회적 반감은 있었다. 당시 뉴욕의 한 극장주는 음란물을 유통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사태를 뒤집지는 못했다. 성적 환상이라는, 금기시되고 억압된 욕구는 어디론가 분출되길 원하며 이것을 권력의 힘으로 일방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서구에서 큰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에로영화는 ‘엠마누엘’ 시리즈다.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여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영화는 당시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미국 흥행작이었던 ‘엑소시스트’가 유럽권에선 ‘엠마누엘’의 인기에 눌려 맥을 못 추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엠마누엘’은 숨겨진 함의도 충분한 영화였다. 여성의 정절, 사회적인 관습과 도덕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국적 에로티시즘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들을 녹여 놓았다. 정숙한 엠마누엘은 비행기에서 낯선 사람과의 섹스를 상상하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마침내 레즈비언과 가까이 지낸다. 한 등장인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사실 ‘엠마누엘’ 시리즈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릇된 도덕적 가치와 금기와 순응을 떨쳐버리라”는 것.
‘엠마누엘’은 첫 편의 흥행 성공과 함께 시리즈물로 계속 이어졌고 에로영화 시리즈의 대명사 같은 존재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시리즈는 훌륭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 유흥을 위한 오락거리이며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는 싸구려물일 따름이다. 하지만 에로영화가 갖는 엔터테인먼트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에로영화에서 섹스는 가볍고 눈요기거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따금 엄숙하기도 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 방법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천하고 싸구려 문화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에로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을 배회하고 비디오 가게의 에로영화 코너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어찌 보면 영화거장들이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에로영화를 택한 건 당연하다. 에로영화를 통해 도덕과 관습에 저항하고, 무한한 일탈을 꿈꿀 수 있으므로. 일본영화의 거장 오시마 나기사도 같은 방법을 택한 바 있다. 흔히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전후 일본영화의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그를 기준으로 “오시마 나기사 이전의 일본영화와 이후 일본영화가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살아 있는 전설의 지위에 올라선 거장인 셈이다.
1970년대에 이 거장은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을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감각의 제국’(원제는 ‘사랑의 고리다’)이 바로 그 영화다. 1976년에 만들어진 ‘감각의 제국’은 일본영화, 나아가 세계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었다. 포르노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역작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과 세계 평단으로부터 “예술의 가치를 지닌 최초의 포르노 영화”라는 인정을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성큼 올라섰다.
거장들이 에로영화를 택한 이유
‘감각의 제국’은 성관계에 탐닉하는 남녀가 살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강박적으로 성관계에 집착하는 한 쌍의 남녀를 통해 인간의 비틀린 성충동을 그려내고 있다. 남녀 배우가 영화에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섹스를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당시 일본에서 공개된 ‘감각의 제국’은 남녀의 성기 부분을 흐리게 하는 기법으로 극장에 공개되었는데 일본 관객들은 삭제되지 않은 원판을 보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로 단체관광을 떠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감각의 제국’에서 여주인공 사다는 유부남 기츠조오와 눈이 맞는다. 그리고 둘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 사다는 남자에게 나이든 게이샤와 섹스하도록 하며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기도 한다. 둘은 때로 더한 쾌락을 얻고자 번갈아가며 서로 목을 조르고, 결국 기츠조오의 육체에 병적으로 몰입하던 사다는 관계 도중에 그를 살해한다. 이 영화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남녀의 육체적 결합을 죽음을 향한 의식으로 표현하면서 ‘성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는 천박하다고 평가되던 포르노영화에 예술적 숭고함을 가미하는 업적을 남긴 셈이다.
일본에서 ‘감각의 제국’ 이후 에로영화와 포르노는 나름의 의미망을 갖춘 대중장르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억압적인 일본 사회를 공격하면서 한편으로 영화적 ‘도덕성’을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걸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정치적인 포르노그라피로 만든 것이 ‘감각의 제국’이라면 서구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3년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 영화는 잔느라는 여성과 얼마전 아내가 갑자기 자살해 실의에 빠져 있는 폴이라는 남성이 벌이는 기이한 행각을 담는다. 잔느는 젊은 애인을 따로 두고 있지만 폴과의 관능적인 관계에 깊이 몰입한다. 둘은 격정적인 섹스를 벌이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지적 허무와 정치적인 냉소주의의 기운을 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유럽에서 학생운동이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을 당시 제작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그런 현실에 대해 반감을 품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영화는 발표 당시 언론의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찬성을 표한 일군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비길만한 명작”이라고 추켜올렸다. 이 영화에 혁명과 체제변혁이라는 꿈이 사라진 뒤 섹스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한 패배자의 쓸쓸한 독백이 배어 있었다.
본격 에로영화는 아니지만 성(性)표현의 문제로 최근 화제를 뿌린 영화가 있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샷’이다. 이 영화는 공개되기 이전부터 니콜 키드만과 톰 크루즈의 에로틱한 장면 등이 세인의 입소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선 한동안 개봉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최근에야 비로소 공개되었다. 기실 ‘아이즈 와이드 샷’엔 충격적인 장면이 있긴 하다. 집단 혼음을 비롯해 마약과 섹스, 그리고 일탈적인 행동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
뉴욕의 의사인 빌은 아내의 고백을 듣고 황망해한다. 아내 앨리스가 한 남성에게 육체적으로 강하게 끌린 적이 있으며 가정을 포기할 의사까지 있었음을 내비친 것이다. 당황한 빌은 길거리를 헤매고, 매춘부와 잠자리를 시도하기도 하며, 혼음 파티장을 방문하는 등 일탈에 대한 몽상에 몸을 적신다.
원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에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기로 이름이 높다. “사람들에게 무슨 의도인지 말해주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된다”는 철학을 지닌 인물이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연출에 있어서의 완벽주의는 큐브릭 감독 연출작 전편에 흐르는 공통점이다. 그런데 ‘아이즈 와이드 샷’은 조금 다르다. 그의 다른 여느 영화보다 직설적이며 솔직한 기운을 품고 있다.
결론에 이르러 ‘아이즈 와이드 샷’은 일반적인 에로영화와는 대척점에 선다. 부부간의 애정을 중시하고, 가정 외부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도덕적인 훈계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하지만 톰 크루즈가 연기한 빌이 사창가를 헤매고 가면을 쓴 일군의 남녀가 난교 파티를 즐기는 등 충격적인 묘사가 영화 곳곳에 박혀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아이즈 와이드 샷’에서 성적 판타지의 극단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감독 스스로 자신의 정신적 방황을 고백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아이즈 와이드 샷’은 ‘감각의 제국’이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는 또 다른 경지, 즉 인간 무의식에 잠복해 있는 성적 에너지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거장이 던지는 성에 관한, 또 다른 길고 암시적인 보고서인 셈이다.
핑크영화와 로망포르노
싸구려 에로영화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긴 할까? 물론 있다. 적절한 예를 가까운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선 한 영화제를 통해 흥미로운 영화들이 상영됐다. 일본의 ‘로망포르노’ 영화가 한자리에 모인 것.
로망포르노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반 극영화적인 장치, 다시 말해 드라마를 바탕에 깔고 있지만 남녀의 섹스장면을 포함하는 영화장르를 칭한다. 일본에서 이 장르는 1960년대 영화시장의 40%를 차지했던 적이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에로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일본에서 로망포르노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일본 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되기도 한다.
일본에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학생운동 열풍이 불었다. 전공투를 비롯해 여러 노선을 지향하는 각 단체의 시위와 데모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지나자 그런 변혁의 기운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혁명의 꿈이 사라진 것이다. 학교에서 제적당하거나 대학을 자퇴한 학생들은 자의는 아니지만 사회 체제 속으로 포섭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이런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기회를 제공한 것이 싸구려 영화판, 즉 에로영화 제작사였다.
당시 닛카츠 등의 영화사에서 로망포르노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막 도입한 무렵이었다. 에로영화 제작사들이 연출 지망생들에게 요구한 사항은 간명했다. 다른 건 상관없으니 영화에 ‘섹스’장면만 집어넣으라는 것이었다. 출세대열에서 탈락한 젊은이들이 에로영화 제작현장으로 뛰어들었고 미처 꺼내놓지 못한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정치적 메시지를 거기에 녹여 놓았다. 당시 로망포르노 영화를 만들어 유명해진 감독으로는 와카마츠 코지, 구마시로 다츠미, 다나카 노보루 등이 있다. 대학 출신은 아니지만 와카마츠 코지는 정치적 구호를 에로영화에 섞어 넣은 대표적 감독이다.
‘범해진 백의’나 ‘태아가 밀렵할 때’ 등 당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 선정적인 섹스 장면도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를 비롯한 정치적 내용이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 로망포르노, 즉 싸구려 에로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사회 억압에 저항하려는 감독의 연출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던 셈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연출자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이 로망포르노 계열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최양일, 그리고 ‘큐어’의 구로사와 기요시에 이르기까지 최근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감독들은 이 싸구려 영화판을 출발점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흔히 에로영화를 ‘B급문화’로 칭하기도 한다. 주류문화와는 구분되는 비주류문화라는 의미다. 일본의 로망포르노에서 알 수 있듯, 에로영화는 단순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장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주류문화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동시에 사회적인 함의를 충분히 지닌 장르인 것이다.
물론 모든 에로영화가 작품성을 지니고 있고,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B급문화, 즉 상대적으로 상업적인 면에서 부담이 적다는 이유 때문에 에로영화는 때로 정치적인 흐름과 나란히 움직이며 다른 장르의 영화가 시도할 수 없는 실험성과 과격함을 노출해왔다. 이것이 바로 에로영화를 싸구려이며 천박한 장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 에로영화의 현황은 어떨까. 연간 제작되는 에로영화는 대략 150여 편. 전체 비디오 시장의 10%를 상회한다. 국내에서 에로영화는 주로 극장용 장편이 아닌 비디오용으로 제작된다. 비디오 카메라로 작업하고 배우들도 아마추어 수준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떨어진다.
국내 에로영화는 ‘패러디 전략’에 의존하는 경우가 잦다. 일반 극영화가 히트할 경우 비슷한 제목을 따와서 어감이 유사한 제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접속’이라는 영화가 성공하자 ‘접촉’이라는 에로영화가 곧 등장한 것이 좋은 예다.
에로사극과 패러디 전략
에로영화는 시류를 타기도 한다. 시사적인 뉴스가 장안에 화제로 떠오르면 곧 비슷한 아이템의 에로영화가 제작되어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한다. 전화방이 물의를 일으키면 ‘전화휴게방’이라는 에로영화가 눈에 띄고 ‘빨간 마후라’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빨간 딱지’라는 에로물이 시중에 깔리곤 한다. 한때 몰래카메라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자 아예 몰래카메라 기법을 빌려온 ‘모텔 성인장에서 생긴 일’이라는 영화가 등장한 적도 있다.
앞서 말했듯, 국내 에로영화는 시장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조악한 완성도나 기존영화의 제목 및 내용을 차용하는 것으로 인해 특유의 ‘독창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혁신적인 에로영화의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성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성표현을 스크린에 조금씩 섞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호스티스 영화’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이른바 매춘여성에 대한 묘사는 이후 본격 에로영화로 넘어가면서 몇 가지 시리즈로 전승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작품이 ‘애마부인’이다. 1982년작 ‘애마부인’은 정인엽 감독 작품으로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육체적 갈망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대립을 축으로 한다. 안소영이라는 여배우를 무명에서 일약 ‘육체파’ 스타로 떠오르게 한 ‘애마부인’은 비록 내용 면에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가슴 등을 주요하게 강조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침체해 있던 한국영화계에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1996년까지 총 13편이 제작됐다.
이장호 감독도 평가할 만하다. 그는 ‘무릎과 무릎 사이’와 ‘어우동’ 등을 만들어 흥행 면에서 에로 장르를 안정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특히 1985년작 ‘어우동’은 에로 사극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어우동이라는 기생이 억압적인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몸을 무기로 뭇 남성을 희롱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는 줄거리다.
‘어우동’은 사극이라는 틀 안에서 농염한 에로티시즘을 성공적으로 표출해냈으며 방기환의 원작소설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가 발표될 당시엔 한 나라의 임금이 계곡가에서 기녀의 몸을 핥는 등의 표현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어우동’외에 ‘산딸기’와 ‘뽕’ 등의 시리즈물을 낳은 에로 사극의 전통은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에로영화는 ‘변금련’ 시리즈와 ‘성애의 여행’, 그리고 ‘젖소부인’ 시리즈 등을 낳음으로써 장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최근 들어 비디오용 에로영화는 지나친 패러디 전략에 의존함으로써 더 이상 창조적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진짜 야한 걸 보여다오
최근 한국영화 중 성에 관한 노골적 영상으로 이목을 끈 작품이 몇 편 있다. ‘노랑머리’와 ‘거짓말’ 그리고 ‘미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예상외로 성 표현 수위도 그리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에로틱함을 일종의 홍보수단으로 삼은 정도에 지나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위 영화들 중 명백하게 ‘에로영화’라 칭할 수 있는 영화가 전무함은 그러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노랑머리’와 ‘미인’의 경우엔 평범한 드라마이거나 멜로적 성격이 강한 영화임에도 간간이 에로영화식 포장을 두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거짓말’은 작가주의와 상업영화 사이의 기묘한 지점을 잡아 만든, 일종의 예술영화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주변에선, 에로틱함을 강조하는 영화들만 있을 뿐 진짜 ‘에로영화’는 찾아보기 힘든 아이러니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아직 등급외전용관이 없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성표현의 수위가 높은 영화가 제작된다 하더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마땅한 통로가 없다면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에선 한때 성인영화 전용관이 800여 개가 넘는, 에로영화의 호황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세인들의 관심도 미국 평단이 1970년대 에로영화에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내리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유는 ‘비디오’라는 매체 때문이었다.
극장용 에로영화 대신 비디오로 제작한 포르노물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싼 값에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만날 방법이 생긴 것. 기실 에로영화의 이러한 ‘애로사항’에 관한 내용들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부기 나이트’는 싸구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에 대한 영화’다. 나이트 클럽에서 포르노영화 감독 잭의 눈에 든 에디는 ‘더크 디글러’라는 예명으로 포르노 스타가 된다. 성공의 기쁨을 맛보며 출세가도를 달리던 에디는 곧 마약 중독에 빠져들고 영화판을 떠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에로영화의 마력은 남미축제인 카니발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들은 잠시의 쾌락을 위해 꼬박 1년을 준비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의 쾌락을 카니발의 화려한 행렬에 쏟아붓는다. 에로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마치 축제에 참석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육체와 육체가 뒤엉키고, 거기엔 성과 죽음, 때로는 진지한 메시지가 첨가되어 보는 이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의 주인공 에디는 싸구려 영화판을 전전하다가 마약과 섹스에 중독된다. 어느새 프로로서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자멸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에로영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포르노그라피의 역사가 요약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좀더 극심한 쾌락을 원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점차 저열하고 값싼 것들로 대체되어간다. 이 와중에 누구는 타락의 길을 걷고, 누구는 돈방석 위에 올라 앉는다.
앞으로 영화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부기 나이트’는 이러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돌아온 탕아 에디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자신의 ‘물건’을 거울 앞에 꺼내보면서 “넌 스타야”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이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부기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은 뭔가 명확한 예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눈앞에 펼쳐진 쾌락을 즐기되, 이것이 작위적인 ‘쇼’임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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