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들 50대는 약 82%의 놀라운 투표율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연령 집단은 10년 전 40대로 당시 야당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을 비교적 선호했던 집단이다. 하지만 당시 이 집단은 ‘권력세대’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386세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선 미숙함에 대한 우려와 이전 세대와의 이질감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요, 서슬 퍼런 군사정권과 민주화 열풍이라는 격랑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민주화 세대이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끌어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일원으로 끌어올린 이들 50대는 자신들을 위해‘세대의 권력화’를 기도하고 있는가. 혹자는 198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과 같은 노래로 베이비부머의 우상이기도 했던 조용필이 10년 만에‘헬로’라는 신곡을 들고 무대로 돌아온 것도, 잊혀버린 듯한 록그룹 들국화가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도 이런 ‘세대권력화’의 증거로 보고자 한다. 정말?
조용필에 기대고픈 심리
대중문화와는 그리 친할 것 같지 않은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콘서트 티켓을 동나게 한다. 길게 줄을 서서 조용필의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50대 세대의 부활, 50대 열정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50대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청소년 집단이 좌지우지하던 문화계의 판도까지 바꾸는 세력이 됐다는 게 사실일까.
50대 세대는 이제 중년의 인생에서 현실적으로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까지 책임지는 집단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년 이후 자기 삶의 또 다른 전환을 걱정해야 한다. 이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세대권력’으로 등장했다면, 그리고 이 세대가 열정을 보이고 있다면 그 열정은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 이 세대가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겪고 있을 것이다. 이 변화의 정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50대 집단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의 경로를 거치게 될 것인지를 알려준다.
50대는 민주화 세례를 받고 그 혜택을 입은 세대다. 하지만 이들이 보수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 아니다. 어쩌면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야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신,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권 정당으로 민주당을 신뢰할 수 없어서, 아니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변화를 강요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볼 것 같은 선택을 한 집단이다.
현상을 유지하기만 하면 적어도 손해를 입을 것 같지 않다는, 아니 현재 가지고 있는 ‘알량한 무엇’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심정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결과다. 물론 이들이 자신의 이런 선택에 대해, 이후에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 모두 만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는 착잡한 마음으로, 또 다른 일부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세대가 이들이다. 물론 ‘멘털 붕괴’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50대는 현재 각자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뚜렷하게 보이는 특성이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게 그것이다. 모두들 현재를 그저 묵묵히 지켜보면서 뭔가 잘되기를 기대하자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이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위로받고,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 한다.
조용필이 오랜만에 음반을 낸 것을 ‘가왕(歌王)’의 귀환으로 환영하는 이유다. 그 전까지 싸이의 음악에 관심조차 없었던 이들이 케이팝과 한류로 포장한 ‘강남 스타일’을 그냥 따라갈 때와는 다른 감성이다.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쁨이다.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은 더욱더 반가운 것이다.‘헬로’라는 음반 타이틀에‘바운스, 바운스’라는 노래 제목은 바로 이들의 마음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50대는 분명 이 사회의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 동시에, 인생 경로에서 중년이라는 무게와 함께 자신의 삶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야 할 때다. 발전과 성장이 청년의 모토라면 중년 세대는 정리와 새로운 변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과거와 다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다. 현재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50대 세대의 현재 심리를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나도 50대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성별이나 연령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라는 질문이다.
‘지구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이라는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100명이 사는 지구에서 20명은 영양실조,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이고, 15명은 비만이며, 18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조차 마실 수 없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7명,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1명뿐이며, 12명만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지구 전체의 삶으로 보면 아주 특별한 일이 된다. 축소된 세계를 통해 실제 세계를 보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런 사실을 알기 위해 교육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새삼 알게 된다. 냉장고에 음식 재료가 있고, 입을 옷이 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누워 잘 자리가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이 세계인구의 75%보다 행복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50대를 이해하려면 이와 같은 비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거쳐 가는 50대라고 한다면, 그 자체에서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0대는 이 사회의 진정한 세대권력으로 등극했는가. 그 답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이들 세대가 자신들에게 닥친 ‘중년기의 과제’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달렸다. 성장과 발전의 세대로 볼 것인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변신을 시도하는 세대로 볼 것인지의 문제다.
50대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미래에는 지금과 다르게 또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50대가 가진 선택은 이런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나은 삶을 꿈꿀 것인가, 아니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잠재된 에너지
동아마라톤 최우수선수로 뽑힌 50대 ‘러닝맘’ 정기영 씨.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경력과 경륜을 스스로 인정하고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꿈을 펼칠 기회를 중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의 경력과 경륜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 답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의 상황이 자신이 처한 것이라고 생각해보자.
“현재 일주일치밖에 식량이 없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 당신은 힘을 쓰기가 버겁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라 당신은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연명하는 수준에서 영양을 섭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연명하더라도 이제 일주일 후에는 식량이 바닥나고 맙니다. 이후에 식량이 생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현재 상태로 연명하는 것이라면 힘이 없어 특별히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일주일치 식량으로 하루 정도 배불리 먹고 기운을 차려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일주일치 식량을 더 아껴 2, 3주를 더 연명하며 누군가 식량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와서 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정말 큰일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다. 아니, 당신 삶의 가치가 무엇이며, 현재 당신이 50대라면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지를 알려준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50대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토대다.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 누군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영웅은 없다. 영웅은 갔거나, 영웅이라 믿었던 사람이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마음을 둘 곳이 마땅찮은 50대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시 추스르려 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스스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웅크렸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존재감을 발휘하고자 하는 50대의 정신이 있다. 무엇으로 이것이 드러날 것인가. 그것은 현재 이 사회에 잠재된 에너지다.
무엇을 지향하는 삶인가.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있어야 한다. 정치든 대중문화든 ‘권력을 다시 쥔 세대’의 명예를 추구하는 50대라면 바라보는 미래는 암울하다. 하지만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교적 나은 현재를 만든 50대이기에,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문화의 정체를 새롭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사회를 경험하고 또 이것을 직접 만들어낸 첫 세대이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