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가 하루 쉬려고 휴가원을 냈다. 사장이 김대리를 불렀다.사장: “김대리! 1년은 365일이지? 하루는 24시간이고, 그중 자네 근무 시간은 8시간이지? 하루 3분의 1을 근무하니, 이 말은 1년에 일하는 날이 122일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라구. 게다가 52일의 일요일과 반만 일하는 52일의 토요일을 26일로 치면 44일이 남아. 그걸 자네가 다 일하나? 밥 먹는 시간에 화장실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하루에 3시간은 넘어. 그것 빼면 자네가 일하는 시간은 27일이라는 소리지. 게다가 자네 여름휴가는 10일이지? 그럼 17일이 남는군. 신정, 구정, 식목일,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추석, 크리스마스 그리고 회사 창립기념일까지 노는 날이 16일이라구! 그럼 일하는 날은 딱 하루가 남아. 그런데 휴가를 내겠다구? 자네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보게….”
김대리: “사장님, 전 너무 피곤해요. 이유를 말씀 드리죠. 우리나라 4500만 인구 중 2500만은 퇴직했거나 노인들이죠. 2000만이 일하고 있는 겁니다. 그중에서 1600만은 학생이거나 어린이죠. 400만이 일하고 있는 거죠. 100만명이 국방을 위해 군에 가있거나 지역을 지키고, 또다른 100만명은 국가 공무원입니다. 그럼 200만이 남는 거죠. 180만명이 정치를 하거나 지자체 공무원이구요. 20만명이 일을 한다는 말이죠. 18만8000명이 병원에 누워있으니 1만2000명이 남습니다. 그리고 1만1998명이 감옥에 가있으니까 결국 2명이 일을 하는 셈인데, 바로 사장님과 저. 게다가 사장님은 제가 한 일에 결재만 하시고요. 더 말 할 필요도 없이 제가 얼마나 피로한지 아시겠죠? 모든 일을 죄다 저 혼자 하고 있답니다.”
사장: ???
‘망할 놈의 주식 회사(http://galaxy. channeli.net/quad)’라는 웹사이트에서 퍼온 ‘샐러리맨 유머’ 중 한 토막이다. 원래는 ‘부장’으로 돼 있는 것을 ‘사장’으로 바꾸어보았다. 어차피 부장도 월급 받고 일 하는 거야 대리와 마찬가지일 테니까. 한번 웃고 넘어가기에는 유머의 뒷맛이 너무 씁쓸하다. 한 회사에서 일하는 두 사람의 계산법이 어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실제로 노동에 대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생각은 유머의 세계에서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 3년째 제자리뛰기
벌써 옛날 얘기처럼 들리지만 98년 11월 온 국민이 추운 IMF겨울을 ‘악’으로 버티던 시절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자들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김소영(노사정위 책임전문위원, 이하 직함은 당시 기준임):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다. 현재 상황이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할 시점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으나, 생산성 향상을 수반한 노동시간 단축은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한다.
이정식(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 고용유지 및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임금삭감 없는 주 40시간(법정기준근로시간)으로 가야 하며 노사의 부담을 분배하기 위해 ‘노동시간단축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윤우현(민주노총 정책국장): 우리나라 노동자의 실노동시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장시간이어서 재해발생률이 높은 원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 하에서 실업대책으로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절실하다. 법정근로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하되 임금삭감은 없어야 하며, 실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본급 비중 확대, 연장근로시간 제한, 휴일·휴가 확대, 교대제 변경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
김영배(경총 상무):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의 과잉인력이 20%를 넘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노동자의 고용보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총노동시간은 휴가일수를 감안할 때 과도하지 않고, 실노동시간도 빠르게 단축되고 있어 현시점에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시기상조다. 오히려 할증임금제도 개선,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휴일·휴가제도 개선 등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이 토론의 쟁점은 크게 4가지였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하기에 적절한 시점인가 아닌가, 둘째 지금의 노동시간은 과도한가 아닌가, 셋째 노동시간 감축이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넷째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가능한가 아닌가(이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르는 생산성 향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용자측 주장을 정리하면 하필 IMF 위기 상황에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느냐는 불만이고, 노동계는 고용창출 효과까지 생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라며 팽팽히 맞섰다. 문제는 이런 식의 논의가 2000년이 된 지금까지도 제자리뛰기만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한겨레21’이 마련한 노사정 3자 토론회를 보자. 이 자리에는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 경총의 김영배 상무, 노사정위 이목희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허영구: 우리나라는 OECD 주요국가에 비해 연간 100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다. 또 실직자와 일자리를 공유하고 기존 노동자의 해고를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김영배: 사용자쪽도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충분한 휴식과 휴가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이 빨리 이뤄질 경우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겨우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상황에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야만 하는가.
이목희: 선진국 기준으로 하면 우리의 노동시간은 엄청 길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그리 길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처한 경제·사회적 조건과 노동자의 삶의 질, 미래지향적 비전 등을 놓고 볼 때 노동시간은 단축돼야 한다. 지금은 단축속도와 폭을 협의하기 시작할 시점이라고 본다.
주5일 근무는 쟁취대상이 아니다
98년은 IMF위기 상황이어서, 99년은 IMF위기를 막 빠져나오는 상황이어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하는 사용자측의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2000년에는 또 어떤 이유를 대며 시기상조라고 할지…. 한편 애초 IMF 상황에서 실업대책의 하나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해 온 노동계가,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삶의 질’ 과 기존 노동자들의 실업을 막기 위해서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 역시 사용자가 보기에는 말바꾸기 같을 것이다. 양측을 절묘하게 오가는 노사정위 역시 발전적 논의를 이끌어가기에 역부족이다.
이 논의가 3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에 대해 이화여대 법대 이철수 교수는 “노사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실태조사 없이 양쪽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인식의 차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법정근로시간은 48시간이지만, 실제로는 사업장마다 단체협상을 통해 35시간 미만으로 일한다. 그런데 사용자측은 법전을 기준으로 “독일도 48시간 아니냐”고 말하고, 노동계는 실질근로시간으로 따지자고 응수한다. 또 사용자는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노동계는 OECD 국가를 비교 대상으로 삼으니 양자간에 발전적인 대화가 될 리 없다.
이교수는 ‘휴일·휴가제도에 관한 연구’ 논문 결론 부분에서 “무엇보다 각 나라의 제도에 관한 종합적인 실태조사(grand survey)가 선행돼야 한다. 휴일·휴가제도를 법률로 보장한 나라가 대부분이지만, 영국 미국과 같이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하는 경우, 법률상으로 보장된 국가 중에서도 단체협약을 통해 휴일·휴가를 늘리는 경우가 있는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법조문만 갖고 비교하면 정확한 사실을 포착하기 힘들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제시하는 통계치가 엇갈리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국제기업전략연구소 윤은기 대표는 현재의 노사관계는 정면충돌을 앞둔 열차처럼 위태롭다고 말한다.
“양대노총이 기자회견을 하고 주5일 근무제를 쟁취하기 위해 총력투쟁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발상으로는 노사 모두 망해요. 21세기에는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주5일 근무제로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이것을 놓고 경영자들은 곤란하다,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노동자는 총력투쟁으로 쟁취하겠다고 하니 말이 안 되죠. 왜 때가 아닙니까? 노동시간을 연장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고 재해의 원인이 되며,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주5일 근무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경영자들도 하루 더 노는 게 손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주5일 근무제로 간다는 전제하에 노사가 협력해야 합니다. 노동자는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자는 거기서 얻은 이익과 잉여시간을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부터 해야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표1).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2434시간(97년 기준, 10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 노동자. 99년에는 2452시간으로 추정)에 달한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와 비교해 연간 900~1000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고, 선진국 가운데 노동시간이 긴 편인 미국 일본,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멕시코 스페인과 비교해도 400~700시간 더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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