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시 개장일(1월4일) 1059까지 치솟았던 종합주가지수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5월29일에는 625까지 추락했다. 간간이 반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내 탄력을 잃고 주춤거렸다. 지금껏 주가지수는 700대 안팎을 오르내리는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 주가는 다시 탄력을 받고 뛰어오를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장기 조정의 터널에 들어서고 말 것인가.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재 주가 수준이 바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SK투신운용 장동헌 주식운용본부장은 “지수가 5월에 625, 7월에 680까지 떨어진 것은 당분간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할 만한 요인들이 모두 노출돼 주가에 미리 반영됐음을 뜻한다”며 “기업 실적과 금리,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하면 하반기 지수는 1000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신증권 나민호 투자정보팀장도 “지금의 증시 침체는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자금 메커니즘의 일시적 이상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수 650선이면 바닥을 확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8월중 또 한번 650 부근까지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추석을 전후해 900선을 회복하고 11∼12월경에는 1000도 바라볼 만하다는 것.
미래에셋자산운용 김영일 이사는 “정부와 기업의 구조조정 계획이 립 서비스에 그친다면 시장의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져 600선조차 위태로울 수 있지만, 이는 최악의 가정”이라며 “주가가 달리 더 떨어질 이유가 없으므로 그런 상황만 없다면 950까지는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중한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도 800∼900대까지의 상승 가능성을 낙관했으며, 다시 조정장이 온다 해도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은 아니므로 전저점인 600∼650선이 위협받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지수가 오른 후 상승세가 지속되기 보다는 100∼200포인트의 변동폭을 오가며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는 견해다. UBS워버그증권은 나름의 계산법을 적용, 하반기 지수를 ‘최저 667, 최고 899’로 정밀하게 추정했다.
환매사태 진정
지난해 말 주가지수가 98년 말에 비해 무려 83%나 상승했던 것은 주식을 사들이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투신사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45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말 잔고는 50조 원을 넘어섰다. 자산운용사의 뮤추얼 펀드에도 5조7000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고, 은행의 단위금전신탁에도 15조 원의 돈이 몰렸다.
그러나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투신사 주식형 펀드에선 12조 원이 빠져나갔다. 투신사들이 12조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고객에게 돈으로 내줬다는 얘기다. 뮤추얼 펀드와 단위금전신탁에서도 각각 1조4000억 원과 8조7000억 원이 인출됐다. 증권사, 종금사를 포함한 제2금융권에서 빠져나간 돈은 모두 86조 원에 이른다.
외국인 투자자와 함께 우리 증시를 떠받치는 기둥인 기관투자가들이 이렇듯 줄곧 ‘실탄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주식을 사들일 엄두를 못내고 틈만 나면 팔아치우는 데 급급했다. 이는 증시 침체로 직결됐고, 증시 침체는 다시 투자자금 인출사태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증권사와 투신사를 빠져나간 돈 가운데 상당액은 은행, 보험사 등 ‘안전한(것으로 알려진)’ 금융기관의 단기 상품으로 흘러들어갔다. 현재 총유동성(M3·한국은행이 방출한 돈에 1, 2금융권 예금액을 합친 것)의 절반인 330조 원이 이렇게 단기 자금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보험사는 이처럼 엄청난 자금을 확보했지만, 주가가 불안한 데다 주식 자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금융권의 2차 구조조정을 앞둔 시점에 이 돈으로 주식을 사들일 처지가 못됐다.
주식 수요가 줄었다면 공급도 줄어야 시장에 충격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상장기업들은 30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이중 현대 계열사 증자액이 13조 원)를 단행, 총 자본금 증가율이 29%(미국의 경우 0.6%)에 달했다.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대신 손쉬운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 ‘큰손’ 매수세력이 떠난 시장에 매물을 무더기로 쌓아올렸다.
주가가 바닥을 치던 97년 말∼98년 초의 시가총액은 150조 원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500조 원으로 증가했다. 국민총생산(GDP) 성장률, 금융자산 증가율, 저축 증가율 등이 모두 10%대를 유지한 상황에 주식 시가총액이 300% 이상 늘어났으니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유증이 올해 증시를 강타했다.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증시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렇게 증시를 짓눌러온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머지 않아 제 자리를 찾게 되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우선 공급측면에서는 주가 폭락으로 상장기업들의 증자가 급감했다. 상장사들이 상반기에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4조65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4%나 줄었다.
수요측면에서도 형편이 나아졌다.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 펀드로의 투자자금 유입은 지난해 7월까지 피크를 이뤘다. 때문에 1년 후인 지난 7월까지 집중적으로 만기가 도래했다.
한빛은행 조상호 투자분석부장은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 펀드의 만기 물량이 7월에는 3조4086억 원에 달했으나 8월 9203억 원, 9월 3544억 원, 10월에는 2850억 원으로 감소해 환매사태가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기관들의 주식 매도물량이 크게 줄어 수급 개선이 기대된다는 것. 지난해 9260억 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투신사들은 올해 들어 7월말까지 6732억 원어치를 팔아 이젠 주식잔고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형편이다. 또한 우리 주가가 대개 7∼8월에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9월부터 반등하는 계절리듬을 타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을 이후 장세는 낙관할 만하다는 의견이다.
“주식을 살 수밖에 없다”
조상호 부장은 “현대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는 등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모멘텀만 주어지면 최소한 100조 원의 단기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안전제일주의로 은행 등에 돈을 맡겨뒀던 투자자들도 연 7∼8% 수준의 금리를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는 것. 증시가 좀 풀리면 하루에도 최고 1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종목들이 속출할 텐데, 세금을 떼면 연 6%도 채 안 되는 이자를 보고 은행에 계속 돈을 묻어두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는 주식투자의 매력이 커진다.
금융기관들의 사정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자산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고, 이 때문에 고객예탁금을 리스크가 낮은 국·공채에 주로 투자했다. 이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주식과 채권에 56대 44의 비율로 투자하고 있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금융기관들이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의 김철상 이사는 “국·공채는 이미 값이 많이 오른데다 이율도 낮고, 채권시장은 내년 말까지 82조 원의 만기가 돌아오는 등 수급문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이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다”며 “은행문을 닫지 않고 고객들에게 이자를 내주려면 이젠 증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택보급률 향상으로 주택 수요가 준데다, 기업들이 군살을 빼기 위해 공장부지와 유휴 부동산을 대거 매물로 내놓는 바람에 공급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하반기중 금융권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금융기관들이 다시 수익률 경쟁에 나서면서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주가 등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주가는 매매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매매시장의 규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금융시장에 돈이 많이 유입돼야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철상 이사가 조만간 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수익 증가,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증가, 활발한 외자유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에 돈이 넘치고 있다. 설비투자를 끝낸 우량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체하지 못해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이 돈은 다시 금융기관으로 들어간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 증시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자본 순유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작은 계기 하나가 한 순간에 돈의 흐름을 바꾸면서 극적인 국면 전환을 이끌 수 있다.”조상호 부장은 “현대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는 등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모멘텀만 주어지면 최소한 100조 원의 단기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안전제일주의로 은행 등에 돈을 맡겨뒀던 투자자들도 연 7∼8% 수준의 금리를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는 것. 증시가 좀 풀리면 하루에도 최고 1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종목들이 속출할 텐데, 세금을 떼면 연 6%도 채 안 되는 이자를 보고 은행에 계속 돈을 묻어두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면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지 않는 주식투자의 매력이 커진다.
금융기관들의 사정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자산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고, 이 때문에 고객예탁금을 리스크가 낮은 국·공채에 주로 투자했다. 이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주식과 채권에 56대 44의 비율로 투자하고 있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금융기관들이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의 김철상 이사는 “국·공채는 이미 값이 많이 오른데다 이율도 낮고, 채권시장은 내년 말까지 82조 원의 만기가 돌아오는 등 수급문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이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다”며 “은행문을 닫지 않고 고객들에게 이자를 내주려면 이젠 증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택보급률 향상으로 주택 수요가 준데다, 기업들이 군살을 빼기 위해 공장부지와 유휴 부동산을 대거 매물로 내놓는 바람에 공급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하반기중 금융권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금융기관들이 다시 수익률 경쟁에 나서면서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주가 등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주가는 매매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매매시장의 규모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금융시장에 돈이 많이 유입돼야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철상 이사가 조만간 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수익 증가,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증가, 활발한 외자유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에 돈이 넘치고 있다. 설비투자를 끝낸 우량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체하지 못해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이 돈은 다시 금융기관으로 들어간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 증시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자본 순유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작은 계기 하나가 한 순간에 돈의 흐름을 바꾸면서 극적인 국면 전환을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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