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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막후 실력자’ 이건수의 야망

IT업계 ‘막후 실력자’ 이건수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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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통신 마피아’의 심장부… 영향력 막강
  • ● 중국 고위층과 ‘따거(형님)’로 통해
  • ● 억대 기부금·장학금 척척…불가사의한 친화력
  • ● ROTC중앙회 명예회장…명예박사학위 2개
  • ● CDMA 상용화로 진짜 돈 번 건 동아일렉콤
7월13일 오후 11시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무역센터 콩그레스홀. 2008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제122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드디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결과 발표를 위해 단상에 섰다. 팽팽한 침묵, 그리고 일성(一聲).

“베이징, 차이나!”

순간 붉은 재킷을 맞춰 입은 중국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같은 시각 미국 뉴저지 루슨트 테크놀로지 본사. 한 한국인 신사가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슨트와 중국 현지 합작공장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방미(訪美)한 동아일렉콤(주) 이건수 회장(59)이었다. 중국의 올림픽 유치는 이회장의 삶에 또 한 번의 가슴 뛰는 도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CDMA 중국 진출의 막후



이회장은 한국 통신산업 중국 진출의 주역이다. 정보통신부 노희도 국제협력관은 “한마디로 중국이 CDMA 방식을 채택하고 국내 업체 장비를 수입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회장과 가까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이런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이회장은 재계에서 중국 공산당 및 군부 최고위층과 ‘따꺼(중국어로 형님)’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사실상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로비스트’인 셈이다.

올림픽은 막 첫발을 내디딘 중국 통신 산업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이는 중국 진출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국내 통신업체들에도 가슴 뛰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전선에서 동분서주 해본 이회장이야 더 말할 나위 없으리라.

이회장은 독특한 인물이다. 매출액 812억6000만원(2000년)의 중소기업 회장에 불과한 그의 인맥, 활동범위, 영향력은 회사 규모를 훌쩍 넘어선다. 정보통신 업계는 물론 전·현 정권 실세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관계(官界), 언론계, 군부 인사들 사이에도 적지 않은 ‘형님 아우’가 존재한다.

이회장과의 인터뷰 중 언급된 인물만도 전두환 전대통령, 남궁석 전정통부장관,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정장호 전 LG텔레콤 부회장, 허화평 민국당 최고위원, 허삼수 전의원, 최형우 전내무부장관, 엄삼탁 전병무청장,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등 열 손가락에 다 꼽지 못할 정도였다. 모두 개인적 친분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최근에는 DJ 정권 ‘실세’ 박지원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양승택 정통부 장관과의 ‘아주 오래된 인연’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회장은 또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들이 포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비상근 상무이사이기도 하다. 회장단 회의에도 빠짐없이 초대된다. 15만명의 회원을 가진 ROTC중앙회 명예회장이며 한국통신학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스스로 “4대 대통령(전두환~김대중)이 주는 훈장을 다 받았다”고 할 만큼 상복도 많다. 1999년 경희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올해 5월엔 미국 페어레이 디킨슨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

정보통신업계에서 이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전전자식교환기(TDX), CDMA 등 각종 통신장비의 중국·베트남·인도차이나 수출 막후에는 예외 없이 그가 있다. 정통부는 물론 한국통신, SK텔레콤, LG텔레콤, 삼성·LG·대우 전자 최상층부와도 빈번히 교류한다. 통신분야 연구의 심장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박한규 연세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 등 통신학계 인사들과도 두루 친하다. 속칭 ‘통신 마피아’라 불리는 거대 산업계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회장은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92년에는 흑인폭동으로 고생하는 LA교민들을 위해 1억원을 내놓았다. 1995년 1월에는 간사이 대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재일동포를 위해 또 1억원을 기탁했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는 여러 해에 걸쳐 장학금 등으로 12억원을 기부했다. 정보통신대학원에도 운영비 10억원을 기탁했으며 ETRI엔 3억원을 들여 연구원 휴게실을 지어주었다. 1998년 수해 때에는 임직원과 함께 3260만원을, 다음해에는 1억원과 생수 14만병(2000만원어치)을 내놓았다. 올 가뭄 때에도 3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이 밖에도 ROTC중앙회, 한국통신학회 등 관여하고 있는 단체에 재정 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조건 없이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의 돈을 기부하는 ‘큰 손’이다.

이런 씀씀이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각국 정부와 업계 인사들의 폭넓은 신뢰와 호의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른바 ‘KS마크’도 아니고, 대그룹 총수도 아니며, 명문가 태생도 아닌 이회장이 어떻게 지금의 지위와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었을까. 취재를 위해 접촉한 20여 명의 각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그 동인(動因)으로 ‘큰 씀씀이’ ‘불가사의한 친화력’ ‘고래 힘줄 같은 끈기’를 들었다. 한 통신업계 인사는 “누구든 한번 만나면 형님, 아우가 된다. 직위도, 위상도 문제 되지 않는다. 그렇게 빨리, 확실하게 사람 마음을 살 줄 아는 이는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비서실을 통해 몇 번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주변 취재부터 시작했다. 원고 마감일이 코앞에 닥쳐온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접촉을 시도했다. 이회장은 중국 출장중이라고 했다. 취재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자 반응이 달라졌다. 한 시간 후 이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베이징이라고 했다. 이후 몇 차례 더 통화를 한 뒤 인터뷰 시간이 정해졌다. 그 사이 이회장은 주변 여러 사람들로부터 ‘신동아가 취재를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정치권과 근거 없는 연결을 지으려는 의도라면 만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와 관련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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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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