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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보증계약은 불법

무지, 무원칙, 무대책으로 2억달러 날렸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보증계약은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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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은 옛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위해 보증을 섰다가 캐나다 은행 CIBC에 2억2000만달러를 물어줬다. 현대중공업은 하이닉스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 그러나 현대중공업과 CIBC의 거래는 여러 모로 불법이라 CIBC에 돈이 지급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안 줘도, 혹은 덜 줘도 될 돈을 몽땅 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보증계약은 불법
지난해 1월25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이날 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외화유치 당시 지급보증을 섰다가 입은 240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하이닉스와 현대증권,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외화대납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현대중공업에 171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 과정에서 현대전자·현대증권의 이사회 결의 여부조차 문의하지 않는 등 적법성을 따지지 않은 책임도 물어 배상액을 전체 손해액의 70%로 정했다.

전말은 이렇다. 1997년 7월 현대전자는 보유하고 있던 현대투신 주식 1300만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캐나다 은행인 CIBC(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로부터 1억7500만달러를 빌렸다. 만기는 3년. 그런데 CIBC는 현대투신의 주식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3년 후 이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요구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주도로 계열사 가운데 비교적 자금사정이 좋은 현대중공업으로 하여금 미리 정한 가격에 3년 후 이 주식을 되사주도록 CIBC와 풋옵션 계약을 맺게 했다. 현대전자가 빌린 원금에 이자를 더한 금액으로 가치가 하락한 경우에 주식을 인수하기로 되었으니 사실상 현대전자를 위해 지급보증을 선 것이다. 현대전자와 현대증권 CEO들은 현대중공업측에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떠한 재정적 손실도 끼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줬다.

2000년 들어 만기가 다가오자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현대증권에 CIBC로부터 주식을 재인수해 보증을 해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두 회사가 응하지 않자 그해 7월 현대중공업은 주식 인수대금 2억2000만달러를 CIBC에 대납했다(3년 전 현대전자가 CIBC에 1주당 1만2000원에 매각한 현대투신 주식은 이 무렵 장외시장에서 2000원대에 거래됐다). CIBC의 주식 인수 요구에 불응할 경우 유동성 부족으로 계약이행 불능상태에 빠진 것으로 시장에 비쳐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회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은 법적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해 현대전자·현대증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현대중공업의 ‘7대 3 판정승’. 이 판결은 대기업 계열사간의 빚 보증 등 각종 부당 지원행위에 쐐기를 박고,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과 사외이사제 활성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안 줘도 될 돈 줬다”

이 사건에서는 ‘왕자의 난’에 이어 불거진 또 한 차례의 현대그룹 내홍(內訌)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사회의 기능과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한 기업 최고경영진의 전횡에 대해 법원이 어떤 심판을 내릴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이렇듯 시선이 ‘안’으로만 쏠린 상황에서 ‘밖’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논점이 간과됐다. 사건의 단초가 된 현대중공업과 CIBC의 거래 자체에는 과연 문제가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현대중공업이 CIBC에 돈을 지급한 것도 비정상으로 봐야 한다. 현대 계열사들의 잘잘못만 가리려 했지, CIBC의 잘못은 따져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국제금융 전문가들이 “현대중공업과 CIBC의 거래는 당시 적용된 외국환관리법 등에 위배되므로 불법 거래 당사자인 CIBC에 돈이 지급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현대중공업이 ‘안 줘도 될 돈’ 혹은 ‘덜 줘도 될돈’을 내줘 국부를 유출했다는 것.

즉 현대중공업은 CIBC와의 장외 파생금융상품 이면계약으로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고, 공시도 하지 않은 채 계열사를 위해 외화약속어음을 발행, 지급보증을 함으로써 증권거래법·공정거래법·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으며, 불법 거래에 따른 결제대금 지급행위 또한 외국환관리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경우처럼 미리 정한 시점,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는 풋옵션의 금융선물거래계약을 장외에서 하는 것은 외국환관리법 위반이라는 것. 현대중공업 민사소송 2심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재경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관련 거래를 한 사실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장외 주식선물거래인 풋옵션 거래는 허가나 신고를 요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금지사항이었다는 게 이들 전문가의 중론이다. 주식을 대상으로 하고 외국환은행을 통하지 않은 장외 금융선물거래는 아예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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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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