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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신화’어떻게 만들었나

시원한 맛, 싼 가격, 감동 주는 광고가 비결

‘박카스 신화’어떻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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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젊은 날의 선택’ ‘힘내세요, 꼭’….
  • 따뜻하고도 건전한 광고 카피로도 사랑받고 있는 박카스.
  • 1961년 알약 형태로 출시되어 40년 동안 135억병 넘게 팔린 박카스는 ‘국민 드링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40년 동안 드링크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노하우와 뒷이야기.
‘박카스 신화’어떻게 만들었나

40여 년간 팔린 박카스 병을 모두 이으면 지구를 41바퀴 돌고도 남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약계엔 ‘박카스 신화’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소비자 취향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탓에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상품이 허다한 요즘, 박카스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소비자들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동아제약(회장 강신호) 박카스는 1961년 처음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137억7510만9000병을 팔아 국내사상 최다판매상품에 올랐다.

2000년 한 해에만 7억병이 넘게 팔렸는데, 하루 평균 193만병이 팔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전국민이 매월 박카스 한 병 이상을 마신 셈이다. 2002년에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려 6월 한 달 동안에만 7400만병이 팔려 2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966년 연간 판매량 1000만병 돌파, 1976년 연간 판매량 1억병 돌파 등 박카스의 승승장구는 계속되어왔다.

동아제약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팔린 박카스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를 41바퀴 돌고도 조금 남는다고 한다. 박카스는 동아제약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간판제품이다.

박카스가 40년간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한 첫째 비결은 바로 맛에 있다. 뒤끝 없는 상쾌한 맛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가격. 처음 박카스가 출시됐을 때 가격은 40원이었는데,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과 같아 다소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자장면 값은 100배 뛰었지만, 박카스는 10배 정도만 뛰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40년 동안 값이 거의 오르지 않은 셈이다.



동아제약은 1932년 ‘강중희 상점’이라는 의약품 도매상으로 시작됐다. 지금은 한국일보 사옥이 들어선 서울 중학동의 10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이 그 모태. 사업 초기부터 다른 의약품 도매상들이 취급하지 않는 붕대와 탈지면 등 위생용품을 판매하면서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1942년에는 의약품 제조업 허가를 받고 감기약이나 소화제, 정장제, 피부질환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홍보광고팀의 박상훈 이사는 “동아제약이 설립된 지 70년이 됐습니다. 그중 35년 동안 제약업계 1위 자리를 지켰어요. 박카스와 같은 장수 상품 덕분이죠. 박카스말고도 소비자에게 인기를 끄는 제품이 상당수 있어요. 위염치료제인 스티렌은 발매된 지 채 1년도 안 되어서 7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고 설명한다.

박이사 말대로 동아제약 상품 중에는 의약품 품목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상당수다.

동아제약이 생산하는 의약품은 종류나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약품 종류만 해도 180여 종에 이른다. 이중 혈액순환제인 ‘서큐란’과 구강청정제 ‘가그린’, 염색약 ‘비겐크림톤’, 초기감기약 ‘판피린’ 등은 각 부문별 브랜드 파워 1위를 자랑한다. 또 병원에서 처방하는 전문 의약품으로 판매되는 제품도 연간 1600억원어치가 넘는다.

알약, 앰풀에서 드링크 제품으로

동아제약이 박카스를 개발하게 된 배경은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1956년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내건 선거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고, 여당인 자유당이 내건 구호는 “갈아봤자 별수없다”였다. 그야말로 우리 국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겨운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았는데 잔이 아니라 대접이나 사발에 술을 따라 벌컥벌컥 마시는 탓에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과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된 복합영양제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1960년대 국내의 약업 시장도 ‘비타민 전성시대’라 할 만큼 비타민제 개발이 붐을 이루었다. 6·25 전쟁으로 영양실조 상태에 있던 국민들은 미국의 구호물자 중 비타민이라면 무조건 좋아했고, 심지어는 비타민을 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강장제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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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희정 자유기고가 66ch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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