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주회사제 전환을 추진해온 LG의 기업지배구조는 여느 재벌의 그것과 다르다. 오너가 A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고, A계열사는 B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며, B계열사는 C계열사에 출자해 대주주가 되는 식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해 오너가 사실상 전 계열사를 장악하는 것이 한국 재벌의 전형적 지배구조였다.
이에 비해 LG의 지주회사제는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출자는 지주회사가, 사업은 자회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자회사들로 하여금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고유 사업에만 전념케 하기 위함이다. 오너는 지주회사의 지분만 보유하고, 자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책임지는 소유·경영체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LG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전한 형태의 지주회사제로 보기 어렵지만, 이런 체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만도 상당한 정도의 투명성이 확보되므로 자회사들에게 대선자금을 할당하는 식의 구태를 재연하기는 쉽지 않다.
‘오너 不死 ’
더욱이 LG그룹 오너 대주주의 두 축인 구(具)씨와 허(許)씨 일가는 주머니 사정이 좋다. 시장논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탁월한 주식거래 수완 덕분이다. 미리 각본을 짜놓기라도 한듯 ‘발목’에서 매수하고 ‘이마’에서 매도하니 주식거래에서 도무지 손실을 입는 법이 없다. 이들은 특히 수년간에 걸쳐 기업의 상장(上場) 및 인수·합병과 같은 주가 상승 모멘텀을 적극 활용하는 거래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른바 ‘대주주 갹출금’의 재원(財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주식거래는 결과적으로 기업과 소액주주들의 희생을 초래했고, 이 때문에 불공정 내부자 거래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 왔다. LG 오너 대주주들은 ‘카드 대란’을 촉발한 최근의 LG카드 사태 와중에도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발을 뺀 것으로 드러나 모럴 해저드 논란을 낳았다.
구·허씨 대주주들이 LG카드 주식을 취득한 가격은 1주당 평균 5000∼1만원. LG카드는 2002년 4월22일 코스닥에 등록됐는데, 공모가는 1주당 5만8000원이었다. 이에 따라 오너 대주주들의 평가차익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LG카드 주가는 상장되자마자 10만7000원으로 치솟았다.
LG카드 대주주들은 상장 후 6개월이 지나 보호예수기간이 종료된 2002년 11월부터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팔기 시작했다. 이때는 허씨 일가 대주주들이 매도를 주도했는데, 당시 LG카드 주가는 3만∼4만원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일부 증권사가 LG카드의 적정주가를 8만원대까지로 잡고 있던 시점이라 굳이 그처럼 저가에 주식을 팔아치우는 까닭을 종잡기 어려웠다. 다만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LG의 전자·화학·통신·금융부문 계열사는 구씨 일가로, 건설·유통·에너지부문 계열사는 허씨 일가로 분리되고 있었기에 허씨 대주주들이 금융부문에서 손을 떼는 수순쯤으로 해석됐을 따름이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로 빠져들어 주가가 6000∼7000원대로 폭락한 지금에야 대주주들의 ‘혜안’이 드러났다.
2003년 들어서는 구씨 대주주들도 매도 대열에 합류했다. LG카드가 대주주 및 외국인 주주들과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협의중이던 4월 중순, 구태회·구평회 창업고문 일가인 구자홍 당시 LG전자 회장, 구자열 LG전선 사장 등이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 특히 이 무렵엔 정부의 카드사 종합대책 발표에 힘입어 카드사들의 주가가 반등하고 있었는데, LG카드 주가는 대주주들의 지분 처분 탓에 오히려 하락했다. LG측은 “창업고문 집안의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정리”라고 해명했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고 자신들만 잇속을 차렸다는 점에서 시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