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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마리아 바티로모 CNBC 앵커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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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남자들로 가득 찬 뉴욕증권거래소에 주식 시황을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닌 객장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여기자가 등장했다.
  • 보수적인 월가는 이 젊은 여성을 무시하고 배척하려 들었다.
  •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보폭을 넓혀갔고 10여 년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전문 방송 앵커로 거듭났다. 각국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 유명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앞다퉈 그에게 인터뷰를 자청한다.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8월 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영화 ‘잡스’ 시사회에 참석한 바티로모.

“나를 인터뷰해주기를 바라는 언론인은 마리아 바티로모뿐이다.” - 비크람 팬디트 전 씨티그룹 CEO

“바티로모 앵커가 방송에서 언급한 기업의 63%는 방송 후 1분 안에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다.” - 제프리 부스 카네기멜론대 교수

“바티로모의 성공 비결은 끊임없이 취재원을 확보하는 데 있다.” - 마크 호프먼 CNBC CEO

새로운 여성 방송인에게 쏟아진 세계 거물들의 찬사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런 극찬을 한 걸까. 경제·금융 분야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화예술계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리아 바티로모(46)는 월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제전문 케이블방송 CNBC(Consumer News and Business Channel)의 간판 앵커다. 똑 소리나는 깔끔한 진행 실력에 글래머 배우 소피아 로렌을 연상케 하는 외모, 베스트 드레서로 꼽힐 정도의 패션 센스까지 갖춰 시청자들과 월가 금융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자신의 유명세를 한껏 활용해 저명한 최고경영자(CEO)나 지도자들과의 굵직굵직한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재능이 돋보인다.



1991년 설립된 CNBC는 전 세계에 걸쳐 4억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8월 말 현재 미국 9624만 가구의 84.3%인 8113만 가구가 CNBC를 시청한다. 케이블 방송임에도 CNBC의 영향력은 ABC, NBC, CBS 3대 공중파 회사와 맞먹는다. 3대 공중파 회사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일반 뉴스에서와 달리 CNBC가 독보적 위치를 지닌 경제전문 뉴스 부문에서는 CNBC에 대항할 만한 경쟁자가 없다. 바티로모는 CNBC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매일 2시간에 걸쳐 뉴욕 주식시장 마감 시황을 전달하는 ‘클로징벨(Closing Bell)’을 2002년부터 단독 진행하고 있다.

1993년 CNBC에 입사한 후 20년 동안 한 회사에서 방송 외길을 걸어온 바티로모는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자신만만하다. 화려하고 섹시한 외모 뒤에 가려진 승부근성과 열정으로 경제계의 유명인사가 된 그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자.

월가의 ‘머니 허니’

바티로모는 1967년 뉴욕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밀집 동네 다이커 하이츠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토박이 뉴요커답게 맨해튼의 뉴욕대에 진학했다. 뉴욕대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을 부전공한 그는 1988년 CNN 비즈니스 뉴스에 입사해 처음에는 방송 진행이 아닌 제작과 편집을 했다.

1993년, 출범 2년의 신생회사 CNBC로 옮긴 바티로모는 ‘마켓워치(Market Watch)’ ‘스콱박스(Squawk Box)’와 같은 아침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분위기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바티로모가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닌, 붐비고 시끄러운 NYSE 객장에서 처음 보도할 때만 해도 월가의 많은 이가 여성 방송인을 불편해했다. 바티로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여성의 NYSE 진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거나 기자 생활을 접을 수도 있었지만 내 직업을 사랑했기에 방송 일을 계속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얼마 안 가 시청자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제 뉴스를 실시간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바티로모에게 매료됐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그는 시청자와 월가로부터 ‘머니 허니(Money Honey)’ ‘이코노 베이브(Econo Babe)’라는 애칭을 얻었고 곧 CNBC의 간판 진행자로 부상했다. 방송인 바티로모의 상품성을 알아본 CNBC는 2002년 입사 10년이 채 못된 그에게 간판 프로그램 ‘클로징벨’의 진행을 맡겼다.

바티로모는 회사의 기대에 부응했다. 2002년 CNN은 바티로모가 방송 중 우호적으로 언급한 기업의 80% 이상이 당일 주가가 올랐다며 바티로모 효과가 상당하다고 보도했다. 제프리 부스 카네기멜론대 교수도 논문에서 “바티로모가 언급한 기업의 63%가 방송 1분 안에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월가에서는 그의 영향력을 빗댄 ‘마리아 효과(Maria Effec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분석이 전문인 월가 애널리스트들조차 그의 방송 원고를 사전 입수하기 위해 막후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티로모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과시한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7월 씨티그룹 샌포드 웨일 CEO 겸 회장의 사퇴 소식을 단독 보도한 일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 위상이 많이 바랬지만 당시 씨티그룹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대의 금융회사였다. 트래블러스와의 합병을 주도하며 씨티그룹을 세계 1위 금융회사로 만든 웨일 회장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월가 황제로 군림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인물이다.

정기적으로 주요 CEO들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며 탄탄한 인맥을 쌓아가던 바티로모는 웨일 회장의 사퇴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월가가 술렁였고 씨티그룹은 펄쩍 뛰며 부인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특히 웨일 회장이 사모펀드 기업을 차리기 위해 물러난다는 씨티 측 해명과 달리 그가 회사 내 권력다툼에서 밀려 자신이 만든 회사로부터 내쫓겼다는 사실은 월가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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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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