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6일 ‘위기의 전력산업, 대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전국전력노동조합이 서울 코엑스에서 공동 주최한 ‘전력산업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은 최근 국제적으로도 심화하고 있는 전력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외의 전력산업 자유화(시장화)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한국 전력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준비된 자리였다.
행사를 주최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강창일 위원장은 “한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3% 미만인 자원빈국이면서 세계 6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화석 에너지 고갈 위험, 원전 사고 위험성 등 내외부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하며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먼저 추진해 정전과 요금 상승, 수급 불안 등의 사례를 겪은 미국과 영국, 오세아니아 지역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오영식 의원은 “올여름 우리 국민은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절전을 위해 에어컨 한 번 마음 놓고 켜지 못했고, 산업계도 전력수요 관리를 위해 조업을 조정하는 등 국민의 희생을 통해 전력수급 위기를 극복했다”고 회고하며 “이처럼 전력수급 위기가 계속되는 것은 정부의 전력산업 정책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김주영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은 “최근 원자력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점 노출과 송전선로 건설에 대한 현지 주민의 격렬한 반대,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누적에 따른 부실 심화, 수요예측 기관의 자질 문제 등 여러 문제점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 기업이 발전 지배”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영국 흐렛포드셔대 휼라 다그데버런 교수는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전 총리처럼 정권 시작과 더불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민영화를 도입하는 등 정치적 변화를 시도한 시기를 예로 들면서 전력산업에서는 자유화, 민영화 모델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그데버런 교수는 “민영화와 자유화 정도를 확대하더라도 전력산업에서 경쟁의 정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력산업의 특성상 완전한 소매와 시장의 전면 개방이 일어나기 어렵고, 시장이 개방된 곳이라 할지라도 고객 전환은 검색과 전환 비용 등의 문제로 그 빈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경쟁적 운영의 잠재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이는 발전부문 역시 결국 소수의 기업이 지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산업의 시장기반 시스템은 투자 부문에서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수력발전과 같은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고비용 연료로 운영되는 소규모 발전소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며, 이러한 기술적 선택은 한계비용과 한계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효율적인 경쟁이 가능하려면 가격이 유연하게 적용되고 고객이 공급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전기회사에 불확실성과 수익의 불안전성을 안겨줘 오히려 투자를 저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
그는 “전력산업은 복지와 산업발전을 위한 기반 시설일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시장 인센티브에 근거한 시스템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결론지으면서 발제를 마무리했다.
소비자에 부담 전가
전력국(NZED)이 모든 대규모 발전과 송전 설비를 소유·운영하고 지방정부가 배전과 소매, 소규모 분산 전원을 소유·운영하는 방식의 전력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가 자유화에 나선 뉴질랜드의 경우는 어떨까. 뉴질랜드의 경제학자이자 전 빅토리아대 경제학 교수인 고프 버트람 박사는 발제를 통해 “전력국의 통합된 기획과 운영 시스템은 뉴질랜드의 환경에 맞춰 발전해온 시스템이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전력공급 정책의 구조개편을 단행하기 전까지 전력국은 투명하고 명확한 정치적 책임을 바탕으로 운영돼왔다. 이윤 추구를 배제함으로써 공급 안정뿐만 아니라 가정용 전기 소비자에게 최저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