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차이나 본사 전경.
현지화는 제품의 디자인에서도 두드러진다. 원래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무척 좋아한다. 삼성전자는 이 뻔한 사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제품에 적용했다. 모니터 뒷면을 붉은색으로 디자인한 훙윈(紅音勻) LED모니터가 대표적이다. 이 모니터는 색깔 하나로 2012년 100만 대 판매 돌파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붉은색 TV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푸(福)자를 디자인에 활용한 전략도 적중했다. 삼성전자의 현지화는 중국 기업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고 정곡을 찌른다는 평을 받는다.
이외에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 전문 매장, 애프터서비스, 짝퉁 추방 노력도 삼성전자의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2013년 삼성전자는 중국 내 외국 기업 중 사회공헌활동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위상이 크게 오른 것은 물론이다.
미래 전망도 상당히 밝다. 매년 매출액 신장률이 평균 15% 전후에 달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이를 잘 대변한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는 자신감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삼성전자가 2020년을 전후해 중국 내 매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 놀라운 수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일본 도요타와 대등한 이미지
현대자동차 역시 삼성전자가 크게 부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이 회사의 중국법인인 북경현대는 누적 판매량 500만 대, 연 판매 100만 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100만 대 돌파 기록은 중국 진출 11년 만에 세운 것이다. 다른 세계적 자동차 회사의 합작 브랜드들이 평균 23년 걸린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의 성장이 얼마나 빠른지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누적 판매량 1000만 대 달성이 멀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로 잘나가는지는 베이징의 서우두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공항에 대기하는 택시, 베이징 시내를 누비는 택시 중 상당수가 현대자동차 브랜드다.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지난해 북경현대는 7% 전후에 달한다. 언뜻 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도요타, 닛산,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3사의 통합 점유율이 16% 남짓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계열사인 기아자동차의 3.7%까지 합치면 현대자동차의 선전은 대단하다고 해도 좋다.
중국 내에서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도 좋아지고 있다. 이 점 역시 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위상이 올라가는 점을 웅변한다. 과거 현대자동차는 비싸면서 품질이 좋지 않은 차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다는 이미지로 확연하게 개선됐다. 품질의 경우 벤츠까지는 몰라도 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 수준에는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예외 없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구가해온 실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에도 15% 전후의 성장이 예상된다. 최성기 북경현대 사장은 “이 상태로 성장하면 북경현대 제3 공장의 증설과 제4 공장의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들린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잘나가는 한국 대기업이 많다. CJ는 빕스· 투썸플레이스·비비고 등 외식 분야, 엔터테인먼트 분야, 홈쇼핑 분야가 중국에 진출해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 내 매출액을 따라잡을 기세마저 보인다. 오리온은 중국에서 ‘초코파이의 전설’을 계속 이어간다. ‘신라면’의 농심과 의류 브랜드인 이랜드는 소리 없는 강자로 통한다. 포스코 등도 전열을 재정비해, ‘우리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와 같은 신화를 쓰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부터 광둥성 아연도금강판 공장에서 아연강판을 생산해 도요타, 폴크스바겐 등 중국 내 글로벌 자동차 제조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에 ‘몰빵’했지만…

북경현대 제2공장 조립 라인.
이런 어두운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면은 아마도 ‘주재원 대거 감축’일 것이다. 우선 SK그룹부터 살펴보자. SK는 한때 삼성처럼 중국에 제2의 본사를 만든다는 야심찬 전략을 세웠다. 지난 수년간 ‘몰빵’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만큼 중국 시장에서 자리 잡으려고 온 힘을 쏟았다. 중국 지주사에 해당하는 SK차이나를 설립한 것도 이런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베이징 중심지인 창안제(長安街)에 SK차이나 빌딩이라는 고층빌딩을 올린 것도, 회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수시로 중국에 출장을 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동통신 분야를 비롯해 SK차이나가 추진한 사업 중 제대로 실적을 내는 사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결국 SK는 2012년 말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재원 50여 명의 80%에 해당하는 40여 명을 철수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