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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샐러리맨들의 엑소더스

대기업 샐러리맨들의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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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멀쩡한’ 직장을 뛰쳐나와 벤처기업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을 끌어낸 것은 ‘억!억!’ 하는 스톡옵션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이 진정 목말라했던 건 ‘꿈’이었다. 》
750 대 1. 지난해 인터넷 포털서비스 업체 네띠앙(ht tp://www.netian.com)의 사원 모집 경쟁률이다. 6명을 뽑는 데 무려 4500여명이 이력서를 내밀었다. 올해 한통하이텔 사원모집 경쟁률이 667 대 1인 것과 비교해봐도 요즘 젊은층 사이에 후끈 달아오른 인터넷·정보통신 분야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와 이직을 희망하는 대기업 엘리트 샐러리맨들의 화려한 이력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대기업 샐러리맨들의 벤처기업행은 가히 ‘엑소더스’라 칭할 만하다. ‘꿈’과 ‘돈’,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인터넷과 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으로 대기업 엘리트들이 대거 흘러들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직업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1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유와 도전(http://www.freechel.com) 사무실. 신정인 전날 ‘프리첼 커뮤티니 서비스’를 인터넷에 정식 오픈하고 자정에 돼지머리로 고사를 지내고 나서 막걸리 파티를 연 전제완(36) 사장과 직원들이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노트북 컴퓨터의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회의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대형 슬라이드 화면에는 프리첼 홈 페이지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옷을 바꿔 입었다.

연말연시를 죄다 회사에 반납하고 인터넷 서비스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는 직원들의 얼굴은 다들 부스스했지만, 눈빛만은 생기와 자부심으로 초롱초롱했다.



인터넷 특공대 모여!

“사장님. 불만 있는데요. 사장님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규동이 형만 편애하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야. 신체 결함이 있는 사람끼리 서로 아껴줘야 되는 것 아니겠어?”

탈모증으로 골머리를 앓는 전제완 사장을 대놓고 놀려대는 직원들. 눈도 깜짝하지 않고 능청을 떠는 사장. 자유와 도전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상사와 하급자가 함께 일하는 직장이라기보다 허물없는 선후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대학교 동아리 방 같은 분위기다.

전사장이 회사를 차리고 명함에 ‘대표이사’ 넉 자를 새겨넣은 것은 지난해 4월. 그 전까지 전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에서 근무했다. 89년 삼성물산 인사팀에 입사, 91년부터 삼성그룹 인사정보시스템(PDSS) 개발을 주관했다. 그는 PDSS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그룹의 조직 관리를 과학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95년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유와 도전은 설립 당시 아이디어 하나로 국회의원 기업인 교수 등 20여명의 엔젤 투자자로부터 32억의 자본금을 유치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8개월이 서비스 개발에 주력한 기간이었다면 오는 3월부터는 외자 유치에 주력하는 한편,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글로벌 커뮤니티’를 목표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칠 예정이다. 올해 매출액 목표는 100억원. 전사장은 “그간의 성과는 전적으로 ‘인터넷 특공대’라 불리는 탄탄한 맨파워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자유와 도전의 임직원은 55명. 이 가운데 15명이 전사장처럼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전자 등을 거친 ‘삼성맨’ 출신이다. 서울대 출신 직원이 절반에 가까운 25명이나 되는 것도 이채롭다.

전사장과 서울대 경영학과 동문인 김용진(37) 부사장도 몇 달 전까지 삼성물산 정보전략기획팀에 몸담고 있었다. 김부사장은 삼성물산에 있을 때 전사장과 함께 컴퓨터 입문서 ‘PC는 내친구’를 펴내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해외 네트워크 구축 및 인터넷 상거래 프로젝트가 그의 작품이다.

홍보팀 이정아(28) 과장은 ‘선배 따라 강남 온’ 케이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이태신 전략기획팀장을 만나 꾐에 넘어갔다. 이과장과 이팀장 역시 삼성물산 출신으로 평소 사내 동아리 ‘미래영상연구회’에서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사이다.

이 밖에 자유와 도전 직원 중에는 포항제철, P·G 등의 ‘잘 나가는’ 기업에서 근무했던 이도 있고 공인회계사도 있다.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의 ‘디지털밸리’에는 200개에 가까운 인터넷·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들이 흩어져 있다. 야후 코리아, 라이코스, 다음커뮤니케이션 등과 함께 ‘오프라인(Off-Line)’에서는 벤처기업이지만 ‘온라인(On-Line)’에서는 대기업 못지않은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는 네띠앙도 이곳의 대화벤처플라자 8층에 사무실을 냈다. 네띠앙의 네티즌 회원수는 175만명을 돌파했고, 지난해 9월부터는 텔레비전 광고도 내보낸다.

네띠앙 사무실의 로비와 엘리베이터, 건물 복도를 분주히 오가는 얼굴들은 대부분 20∼30대의 홍안(紅顔). 사무실로 들어서니 출입구부터 외부인들로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사각형 칸막이가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 찬 사무실에선 직원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쁜 손놀림으로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46명의 인터넷 전사들이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리 없는 사이버 전쟁을 치르는 순간이다.

‘벤처사관학교’ 삼성SDS

네띠앙도 삼성맨들이 조직의 골간을 이룬다. 홍윤선(38) 사장은 삼성SDS 유니텔사업부 출신. 인하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동서증권 전산실 기획담당과 테크니컬 애널리스트를 거쳐 95년 삼성SDS로 옮겼다. 유니텔의 사업기획과 정책수립,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다 지난해 6월 네띠앙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됐다.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성진일(32) 실장은 홍사장의 삼성SDS 직속 후배로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온 경우. 성실장은 이미 98년부터 인터넷 사업이 ‘뜬다’는 느낌이 확실했지만, 대기업 명함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망설임 끝에 가족들에게 네띠앙으로 옮긴다고 통보하자 부친은 삼 형제 중 장남인 그에게 “너, 미쳤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송세호 디자인실장, 이윤석 기술실장, 이종혁 홍보팀장도 삼성SDS에 사표를 던지기까지 성실장과 마찬가지로 가족들로부터 ‘실성한 놈’ ‘분유 값도 못 벌어 올 놈’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네띠앙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역시 난 놈’으로 복귀했다.

유수의 외국계 기업에서 벤처 승부사로 말을 갈아탄 경우도 있다. 정보보안 전문 솔루션업체 코코넛(http://www.coco nut.co.kr)이 그 예.

코코넛은 ‘인터넷 업체의 정보 보디가드’를 표방하며 기술 자본 아이디어를 가진 고급 두뇌들이 전략적으로 제휴한 벤처기업. 데이콤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펜타시큐리티 등 3개사가 참여한 합자회사다.

아직 인력 구성이 채 끝나지 않아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기술력만큼은 어느 벤처기업 못지않게 탄탄하다. 데이콤은 자본을 조달하고 네트워크를 제공하며,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는 기존 앤티바이러스 솔루션과 PC 보안 솔루션을, 펜타시큐리티는 네트워크 보안과 서버 보안을 맡고 있다. 각사의 기술력과 경영노하우, 사업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향후 정부기관, 금융기관, 각종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를 주요고객으로 안정적인 정보 보안 서비스를 펼 계획이다.

코코넛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조석일(43) 사장은 지난해 12월까지 한국오라클 영업이사로 일했다. 그 전에는 외환은행과 한국IBM에서 요직을 거쳤다. 영업과 마케팅을 맡고 있는 조원영(36) 이사는 최근 한국선마이크로시스템에서 코코넛으로 옮겨 왔다.

코코넛이 입주한 한국인터넷데이타센터에서 코코넛 직원들은 같은 건물에 세 든 다른 벤처기업 직원들로부터 깍듯이 최고참 대우를 받는다. 여느 벤처기업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20대 중후반인 데 비해 코코넛은 30대 중반이 주력군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

코코넛은 이글팀과 타이거팀으로 나뉘어 2월1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안 기술은 보안회사의 적인 해커들에 의해 발전하기 마련. 따라서 코코넛은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해커들과 본의 아니게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밖에 삼성물산에서 인터넷 사업을 총괄해온 이금용 이사는 인터넷 경매회사 옥션으로 자리을 옮겼고, 한국오라클 이영수 과장은 ‘유니온 헬스’를 창업했다. ‘서치캐스트’를 창업한 전원하 사장도 대우정보시스템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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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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