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골목상권의 등대, 그 불빛을 다시 밝히자

[Special Report | 어쩌다…폐업 자영업자 100만 시대] 최저임금, 내수 부진, 고물가·고금리로 곳곳 ‘비명’ 차별화, 저비용, 현장 맞춤형 지원으로 재기 기회 제공해야

  •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

    입력2024-08-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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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 내수 부진, 고물가·고금리로 곳곳 ‘비명’

    • 50대 창업자 두 명 중 한 명이 자영업자

    • 배달 앱, 안 쓰면 망하고 쓰면 적자

    • 숙박·음식점업 10개 중 8개가 5년 내 폐업

    • 무너진 자영업 생태계 바로 세워야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일컬어 골목상권의 등대 구실을 한다고 한다. 골목 곳곳을 밝히고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인 지역경제의 지킴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등대의 불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24시간 골목을 환하게 비추던 등대가 사라지면서 골목 곳곳의 온기는 싸늘해지고 어두워지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들은 왜 점점 벼랑 끝으로 더 내몰리는 것일까.

    소상공인·자영업자 위기의 진짜 원인

    2018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2020년 코로나19 확산, 2023년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 2024년 소비 절벽에 따른 내수 부진, 거기에 배달 플랫폼 리스크까지….

    매번 이 위기가 지나면 ‘오늘은 어제보다 낫겠지’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버텨왔지만, 한 번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터널이 나타났다. 기나긴 역경의 시간 뒤에도 소상공인이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없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크게 늘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자영업 폐업자 수는 98만5868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도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자영업자 실업급여 수급자 수는 누적 인원만 2067명으로, 지난해 총 수급자 3248명의 63.6%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계청의 ‘2024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25만3000명으로 지난해 6월보다 13만5000명(3.1%)이나 감소했다. 2015년 10월의 14만3000명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같은 달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3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나 홀로 사장’이 직원을 둔 자영업자로 규모를 키우지 못한 채, 문을 닫고 폐업한 경우가 조사 대상 중에서만 10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수 부진, 고비용 구조 등이 고용원이 없는 영세한 1인 자영업자에게 더욱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와 줄줄이 폐업으로 내몰린 것이다.

    오늘날 소상공인의 위기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첫째, 국내에서는 임금근로자로 고용이 유지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근로자 2808만 9000명 중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658만8000명으로 23.5%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비임금근로자 비중 통계가 있는 34개 회원국 중 7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특히 미국(6.6%), 독일(8.7%), 일본(9.6%)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두세 배에 달할 정도로 많다.

    이처럼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것은 낮은 진입장벽으로 퇴직 후 생계형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보고서(‘자영업자와 소득 불평등’)에 따르면 60대 이상 자영업자 비중(2023년 기준)은 36.4%, 50대는 27.3%로 50대 이상이 63.7%이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2023 창업기업 실태조사’)에는 창업자 중 50대 이상 비중이 전체 48.9%로 절반에 육박하고, 이 중 60대 이상 창업자 비중도 전체 16.3%에 달한다.

    이는 기존 직장에서 은퇴한 후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빈번함을 의미한다. 60대 이상 은퇴한 고령자들의 경우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해선 사회안전망과 보장 체계가 받쳐줘야 하는데 고소득 전문직, 교사, 공무원 등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100세 시대에 비자발적으로 빠른 퇴직을 하게 된 후 생계를 위해 별다른 정보나 시장분석 없이 반강제로 자영업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둘째, 유통 생태계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온라인과 비대면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과거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노리고 침투해 들어올 때보다 더 무서운 기세다. 오프라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않으면 매출 저하로 장사가 불가능해졌다. 모텔 등 숙박업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역시 매출의 6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숙박 앱을 쓰지 않으면 손님이 찾지 않는다. 하지만 플랫폼에서 내 상품을 소비자의 눈에 잘 띄게 하려면 홍보비가 필요하고, 매출에 비례해 수수료 역시 증가한다. “안 쓰면 망하고, 쓰면 적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고물가로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코로나로 인해 받은 대출은 고금리로 돌려막기로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생태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지출 항목은 고비용 구조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게다가 이미 디지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소상공인이 생겨났고, 그 결과가 폐업 증가로 볼 수 있다.

    셋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출구가 없다. 쉽게 얘기해 장사가 안되면 대책이 없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고령자 노후실태 및 취업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0세 이상 자영업자 중 3개월 미만의 준비 기간을 거친 비중은 64.5%에 달한다. 하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 준비 없이 뛰어든 이들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내 폐업률은 66.2%, 특히 문턱이 낮은 숙박·음식점업의 폐업률은 같은 기간 77.2%에 달한다. 10곳 중 8곳이 5년 내 문을 닫고 있다.

    이미 진입한 자영업자들에게도 퇴로가 필요하다. 고용 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자영업자들에게 재취업, 재창업의 기회를 확대해 자영업 과밀화를 최소화해야 역동적이고 건강한 자영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경제활동 인구 48.1%가 소상공인 종사자

    국내 소상공인 사업장 종사자 수는 1000만여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48.1%를 차지한다. 고용주와 무급 가족 등을 제외하면 자영업 근로자만 350만 명가량 된다. 이들 대다수는 사회 경험이 필요한 저숙련 초년생이거나, 소상공인 외 사업장에 취업이 쉽지 않은 근로자다. 이들을 품어 안으며 대한민국 고용의 저수지 역할을 해온 소상공인의 붕괴는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실업자 양산과 폐업으로 이어져 결국 취약계층이 되고 국가재정의 부담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너진 자영업 생태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 대기업유통사의 골목시장 침탈,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기업들의 시장지배적 영향력 확대와 불공정행위 등 기울어진 자영업 생태계로 소상공인이 침몰하고 있다. 지난해 7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배달 앱이 일방적으로 44% 수수료를 올려도 소상공인은 이용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주문한 물건값을 플랫폼에서 77일 후에 줘도, 연 15%에 달하는 이자를 내는 선정산대출을 받으면서도 소상공인은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온라인플랫폼법 등을 제·개정해 변화된 경제 생태계에서 공정한 경쟁과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소상공인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지역 특산물과 문화에 맞는 차별화된 로컬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은 물론 라이브방송 등 뉴미디어 채널과의 공조, 전국 온·오프라인 팔도대전, 지역축제와 연계한 소상공인 가게 세일전 등 다양한 협업 방안이 지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고비용 구조를 타파해 저비용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매출이나 이익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다면 우선 나가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인건비다.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을 해도 아르바이트생보다 못 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노동강도, 노동생산성, 사용자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결정이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당장 통계자료 확보가 어렵다면 최저임금 미만율(전체 임금노동자 중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인 임금노동자 비율)이 높은 몇 개 업종이라도 시범 도입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확대해 나가면 된다.

    또한 현재 전기요금 제도는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전기자동차로 구분된다. 이 중 소상공인들은 판매단가가 가장 비싼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고 있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PC방이나 숙박업, 외식업 등 특수업종을 중심으로 ‘에너지 지원’을 법제화하고, ‘소상공인 전용요금제 신설’ 등 소상공인이 체감할 수 있는 종합적 지원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급격하게 증가한 부채와 금융비용도 문제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규모가 1055조 원을 넘어섰다. 178만 명이 3개 이상의 대출기관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이고, 자영업자 취약차주의 연체율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대출 상환 조건을 완화해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에게 빚을 늘려주거나 기한을 연장해 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감한 채무 탕감과 정리가 필요하다.

    올해 초 ‘소상공인연합회 경영 실태조사’ 결과 고정비 중 금융비용, 원가, 인건비에 이어 임차료가 경영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임차료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나가야 하는 고정비용이다. 유럽에서는 중심가에 작고 오래된 매장이 임차료 때문에 이전해야 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상가를 정부나 자치단체가 매입한 후 소상공인에게 적은 비용으로 임차해 주고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다시 매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희망상가, 공공안심상가 등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유럽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현장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전통시장에만 적용되는 카드 공제율 80%를 모든 소상공인 사업장에 적용한다면 소비자에게도 혜택을 주면서 소상공인의 매출 증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전통시장을 제외한 소상공인 사업장에는 현재 카드 공제율 15%를 적용하고 있다.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도 크게 보면 소상공인 매출을 높이고 소비를 증진해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그렇다면 두 상품권의 장단점을 보완해 통합된 소상공인 상품권을 만들어 전국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골목상권과 지역경제 부활을 꿈꾸며…

    국내 자영업자 비중은 1964년 69.3%로 정점을 찍은 후, 1984년 처음으로 50% 선이 무너진 데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30% 선이 붕괴하는 등 매년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도 자영업자 비중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산업구조의 변화로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급격하게 추진될 경우 사회적 대혼란과 경제적 쇼크를 유발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시장에서 따뜻한 온기를 찾을 수 없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소상공인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줬던 골목과 지역경제라는 거대한 잠재력과 생활공간, 온정이 사라졌다. 한 푼을 더 깎아주고, 하나를 더 담아주고, 한 번 더 우리 생활을 살펴준 따뜻한 소상공인들의 시선 대신 차갑고 우울한 양극화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덮치고 있다.

    플랫폼이나 프랜차이즈 같은 기업체가 우리 사회를 덮었기 때문이라고 힐난하고 싶은 게 아니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틈새 한 곳에서 조용히 숨을 둘릴 수 있고 온정을 나눌 공간이 있다면, 소박하게 영업을 하면서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순간 정이 들고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 아닐까. 골목상권에서 대기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소비자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꿈꾸는 것이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이 다시 춤추는 그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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