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도심·‘핫플’은 그나마 버틸 만… 도심 외곽은 ‘줄폐업'

[Special Report | 어쩌다…폐업 자영업자 100만 시대] 자영업도 부익부빈익빈

  •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

    입력2024-08-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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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성수·용리단길·익선동 ‘선방’

    • 은평·관악·강북·강서는 ‘폐업 악순환’

    • ‘핫플’ 상인 “안 좋긴 해도 유동인구·관광객으로 버텨”

    • 외곽 지역 상인 “동네 주민들 구매력 떨어져 가격 낮춰야”

    • ‘제 살 깎아먹기’ 해야 살아남는 소자본 자영업자

    • “자영업도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인가”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가 새 부를 창출하고, 가난은 다시 가난을 낳는다. 자본주의 사회 불변의 법칙이다. 호황이 찾아오면 부자는 빈자보다 더 크게 돈을 번다. 반대로 불황이 찾아오면 부자는 자본으로 버티고, 빈자는 무너진다. 그렇기에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마치 인체의 손과 발끝부터 괴사가 시작되듯, 사회는 변두리부터 바스라진다.

    불경기 파고를 넘을 때마다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부의 계급 사회는 공고해진다. 이는 피라미드 최상단과 말단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만 유효한 원리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처지가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성립하는 ‘부의 공식’이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이던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7월, 통계청)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다. 부의 공식은 응당 이들에도 적용된다. 좋은 상권에서 비싼 임차료를 감당하는 자영업자들은 어떻게든 버티지만, 그럴 형편이 안 돼 임차료가 싼 점포를 찾아 도심 변두리에 자리한 자영업자들은 무너진다.

    올해 1분기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이른바 ‘핫플’이 있는 지역의 폐업률(3개월간 폐업 수/ 개업 수) 혹은 5년 생존율은 상대적으로 나은 지표를 나타냈다. 폐업률은 수치가 낮을수록, 반대로 생존율은 높을수록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 평균은 각각 2.7%, 51.9%다.

    익선동으로 대표되는 종로구는 폐업률에서 2%로 최저였다. 젊은이들의 ‘핫플’이 된 성수동이 있는 성동구는 생존율에서 56.4%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용리단길~숙대입구(남영동) 상권을 보유한 용산구는 폐업률 2.2%(3위), 생존율 55.5%(3위)를 기록해 준수한 상태를 보였다. 반면 관악구(3.7%·46.9%, 1위·22위), 강북구(3.6%·46%, 2위·24위), 강서구(3.5%·49.1%, 3위·16위), 은평구(3.4%·46.6%, 4위·23위) 등 서울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나쁜 지표를 나타냈다. 왜 이런 지표가 나온 것일까.

    “벌이 나빠져도 월 500만 원 번다”

    8월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일식집에 재료 소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일식집에 재료 소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1~4일 ‘신동아’ 기자들은 현장을 찾았다. 취재 결과, 이러한 폐업률·생존율 지표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불경기는 소자본, 변두리 자영업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카페거리. 흔히 ‘성수’로 불리는 ‘핫플’이다. 식당과 카페가 밀집해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끄는 ‘SNS 맛집’이 많다. 가게 현관 곳곳엔 ‘직원 구함’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오후 7시 30분께 한 일식집 앞은 입장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sold out(품절)’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내걸렸기 때문이다. 가게 영업 종료까진 1시간30분가량 남았지만 손님이 많아 재료가 모두 소진된 까닭이다. 7월 메뉴 가격을 올렸는데도 업황엔 지장이 없다. 20대 직원 구모 씨의 말이다.

    “재료비가 많이 올라서 판매가 대비 원가 비율을 조정해야만 했어요. 소고기 카레 가격을 500원 올렸는데, 손님은 계속 찾아오고 있어요.”

    사람이 붐비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오후 9시 20분께 한 디저트 가게엔 4인용 테이블 7개가 가득 차 있었다. 폭염 경보가 내린 더운 날씨였지만 야외 의자 8개 가운데 4개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이곳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5500원. 흔히 찾는 ‘스타벅스’의 그것보다 1000원 비싸다.

    성수를 찾는 시민들이 가격에 둔감한 까닭은 거리 특징에 기인한다. 식당·카페가 많긴 하지만 시민들은 ‘식사’를 하기보다는 ‘관광’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거리에서 만난 20대 허모 씨는 “대구에서 가족 4명이 다 같이 놀러왔다. 초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길”이라며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 느껴지지만 놀러왔으니 그 정도 돈은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월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음식점들에 ‘직원 모집’ 공고가 붙어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음식점들에 ‘직원 모집’ 공고가 붙어 있다. [임경진 기자]

    용산 상권도 성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용산을 대표하는 상권은 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삼각지역~숙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용리단길~남영동 상권이다. 주변에 대학교와 회사가 많아 탄탄한 수요층을 보유한 데다가, 이곳 역시 성수와 같이 SNS에서 ‘핫플’로 여겨지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숙대입구역 인근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가게를 내놓았다. 장사가 잘 안 돼서가 아니라 출산·육아 때문이다. 가게는 건물 지하 1층에 있고, 33㎡(10평)쯤 된다. 170만 원 월세를 내면서도 월 300만~500만 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A씨는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아서 수익이 나면 내가 다 가질 수 있었다”며 “잘될 땐 1000만 원도 벌었다. 단체주문이 많아서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 양식당 사장 30대 B씨도 “버틸 만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땐 장사가 어찌나 잘되던지 직원 4명에 월 매출만 1억 원이었다. 운영시간도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16시간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나빠져 직원을 1명으로 줄이고 운영 시간도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10시간으로 줄였다. 그래도 월 매출 3000만 원에 400만~500만 원 순수익이 나서 견딜만하다.”

    종로구 ‘핫플’ 익선동도 ‘선방’ 중이다. 익선동은 서울지하철 3호선·5호선 인근 좁은 골목 사이로 식당·카페가 늘어선 거리다. 젊은 세대는 물론 인근 인사동을 찾은 외국인이 더해져 평일 저녁 및 주말엔 예약 없이 매장을 이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C(56)씨의 말이다.

    “이 동네는 코로나19 사태 때도 공실이 안 나고 권리금을 받던 동네다. 지금도 공실 없이 잘 굴러간다. 상권이 워낙 좋으니까. 물론 코로나19 사태 전보다야 사정은 나빠졌다. 손님이 줄어 매출이 반 토막 났으니까. 우리 가게가 20평(66㎡) 조금 넘는데, 월세 880만 원, 전기세 100만 원, 직원 인건비 600만 원이 유지비로 나간다. 상권이 좋으니 유지비가 높은 편이지만 그래도 가게 유지는 된다. 월 400만~500만 원은 번다.”

    “원가는 올랐는데, 메뉴 가격은 내렸다”

    8월 1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 잡화점에 폐업정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채원 기자]

    8월 1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 잡화점에 폐업정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채원 기자]

    ‘핫플’을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가면 상반된 광경이 펼쳐진다. 오후 4시 서울 은평구 서울지하철 6호선 증산역 인근 동태탕 가게. 식사시간은 아니지만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8인용 테이블 8개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D(44)씨는 4년 전 이 가게를 열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생 3명을 둘 만큼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도 견딜 만했지만 상황은 그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모두 내보내고 어머니와 나, 둘이서 일하며 버티고 있지만 9월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직장인·대학생이 많이 찾는 상권은 불경기에도 손님이 줄을 잇는다. 출근이나 등교를 했으면 어차피 밥을 먹어야 하니까. 반면 도심 변두리 상권은 동네 주민들이 ‘외식’하려고 찾는 곳인데, 경기가 나빠져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장사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지하철 6호선 불광역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후 5시 30대 E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는 4인용 테이블 12개 가운데 1곳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E씨는 재룟값이 올랐음에도 ‘삼겹살 세트’ 가격을 5만1000원에서 4만5000원으로 낮췄다. 그는 “구매력이 큰 동네가 아니어서 가격을 높이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이 동네는 손님이 없다 보니 손님을 유치하려고 가격을 더 낮추는 ‘박리다매’ 전쟁 중이다. 가격을 낮춰 손님이 늘어나긴 했지만 순수익은 오히려 줄었다”고 털어놨다.

    서울 관악구 조원동 상인들도 ‘박리다매 악순환’에 빠진 듯했다. 떡집을 운영하는 60대 F씨는 “이 지역은 인터넷이나 SNS를 보고 찾아오는 곳이 아니다. 주민들의 호주머니로 먹고사는데, 모두 힘들다고 하니 재룟값은 올랐어도 떡값은 내렸다”고 말했다. 카페 사장 30대 G씨도 “원가가 오른 지 한참이지만 2년 전부터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가격을 높이면 판매 자체가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

    상권이 죽으니 손님도 떠난다. 이곳 주민 이모(18) 씨는 “이곳엔 마땅하게 즐길 거리가 없어 친구들과 주로 가까운 홍대 앞을 찾는다”고 말했다. 유동인구 감소는 다시 상권을 악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서울 강북구 서울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모(71) 씨는 “장사는 유동인구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고, 하더라도 도심 번화가에 가서 한다”며 “가게 유지비용이 월 70만 원으로 싼 편이지만 7월 매출액이 고작 32만 원이다. 월세도 못 내서 결국 가게를 내놨다”며 속상해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은 2021년 세 모녀가 500채 넘는 빌라 세입자들에게 전세 보증금 298억 원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화곡동 세 모녀 사건’ 등 전세사기가 잇달아 터진 곳이다. 불경기까지 더해져 설상가상이 됐다. 이곳에서 일하는 부동산공인중개사 H씨는 “전세사기 때문에 가뜩이나 사람들이 찾지 않고, 살던 사람들도 떠나고 있다”며 “사정이 안 좋은데 개업하려는 사람도 없다. 나도 폐업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정은(55) 씨는 화곡동을 떠나는 자영업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반찬과 밀키트를 팔던 가게를 지난 6월 폐업하고 가게에서 쓰던 가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게를 내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팔리지 않아 권리금 2억 원도 포기하고 폐업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주택가인데, 주택에 사는 사람은 대개 젊은 학생이거나, 나이 많은 노인 등 저소득층이 많다. 물가가 올라서 메뉴 가격을 올리니 바로 장사가 안 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동네일수록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나도 돈 많은 부모가 있었다면…”

    8월 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폐업 가게에서 쓰던 주방 집기를 트럭에 옮기고 있다. [전혜빈 기자]

    8월 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폐업 가게에서 쓰던 주방 집기를 트럭에 옮기고 있다. [전혜빈 기자]

    자영업자 가운데 좋은 상권에서 장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권이 좋을수록 사업 성공률은 높아진다. 그만큼 점포 수요와 임차료도 오른다. 이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상권을 차지한다. 더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지만 장사가 더 잘되고, 적어도 ‘살 만큼’은 먹고산다.

    ‘성공 보증 수표’를 살 만큼의 돈이 없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가혹하다. 성수동의 부동산공인중개사 I씨의 말에서는 ‘부의 진입장벽’까지 느껴진다.

    “장사를 해보고 싶어도 여긴 아무나 못 들어온다. 임차료도 비싸고, 권리금도 높다. 공인중개사들이 가게를 쉽게 알아봐주지도 않는다.”

    20대 J씨는 7월 불광역 인근에 카페를 개업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서울 중구 을지로 쪽을 알아봤지만 이곳 역시 ‘힙지로’로 일컬어지는 ‘핫플’이다. 가진 돈으론 감당할 수 없는 액수가 필요했다. 10평 남짓한 가게 임차료가 19평인 현재 가게보다 비쌌다. 권리금 3000만 원도 따로 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제 살 깎아먹기’를 해야 한다.

    “을지로는 직장인 등 유동인구가 많아 손님을 받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은 다양한 손님 유치 활동을 해야 한다. 뭐라도 더 얹어줘야 한다. ‘영수증 리뷰’를 하면 2500원짜리 휘낭시에라도 하나 더 주는 식이다.”




    8월 4일 서울 관악구 한 건물의 공실 유리창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4일 서울 관악구 한 건물의 공실 유리창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임경진 기자]

    김민호(22) 씨도 관악구 조원동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중학생 때 병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살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문대에서 회계를 배웠고, 졸업 후 상경했다. 그는 “집안도 어려웠고 불행히도 ‘공부 머리’마저 그다지 좋지 못해 조금 모은 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다”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중소기업에 취직해 하루 10시간씩 일했지만 연봉은 3000만 원이 되지 않았고, 월급은 연체되기 일쑤였다. 견디다 못해 창업을 준비해 회사를 나왔다. 매월 생활비와 모친에게 보낸 돈을 빼고 나니 모은 돈은 퇴직금을 합쳐 600만 원 남짓. 모두 보증금으로 털어 넣고 월세 80만 원짜리 가게를 차렸다. 월세·공과금을 내고 나면 80만 원쯤 손에 쥔다. 마이너스통장엔 벌써 1000만 원 가까운 빚이 생겼다.

    ‌대학에서 만난 그의 동갑내기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창업을 했다. 친구는 부모로부터 3억 원 지원을 받아 ‘용리단길’에 창업했고,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얼마 전엔 SNS에 1억5000만 원짜리 외제차를 샀다고 자랑했다. 친구가 부지런하고 장사도 잘해서 성공했으리라고 믿지만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순 없다.

    “그 친구가 잘해서 그런 수 있지만 못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그 정도 돈이 있었다면, 부모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친구가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단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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