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눈물에 철거비 받기도 미안”
“하루 150만 원 벌던 식당이 요즘은 40만~70만 원”
“권리금 1억5000만 30평 가게는 지금 7000만 원”
“코로나 때 받았던 대출금, 확인하기도 무서워”
2023년 폐업 사업자 98만6487명…통계 집계 이후 ‘최고’
자영업자 비율 韓 19.6%, 日 9.6%, 美 6.6%, 獨 8.7%
전방위로 무너지는 자영업자들의 절규
8월 8일 서울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남부고용복지센터에 시민들이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윤채원 기자]
8월 7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서 만난 철거업자 40대 김모 씨의 낯빛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는 “코로나 때보다 자영업자들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진 해엔 폐업이 많지 않았어요.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버텨본 거죠. 그런데 2021년부터 폐업이 늘더니 지난해엔 2020년에 비해서 일이 3배 많아졌어요. 한 달에 10곳 이상 철거를 해요. 큰 점포는 철거에만 2~3일 걸리니 쉬는 날도 없이 일했다고 봐야죠. 올해엔 외려 일이 줄었어요. 자영업자들 형편이 나아져서 그런 게 아니라 이미 다 망해버려서 더 망할 곳이 없어 보여요. 허탈하죠.”
어쩌다 폐업 자영업자 ‘100만 시대’가 됐을까. 7월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 2022년(86만7292명)보다 11만9195명 늘었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수다.
폐업 이유는 ‘사업 부진’(48만2183명)이 가장 많았다. 금융위기가 닥친 2007년(48만8792명) 수준이다, 전년(40만6225명)과 비교하면 7만5958명(18.7%) 늘었다. 증가폭으론 역대 최대다. 올해 상반기 실업자 중 지난 1년간 자영업자로 일했던 사람은 월평균 2만6000명으로 2022년에 비해 23.1%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실업자가 6.9%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증가율이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다. 7월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전체 취업자 가운데 19.6%가 자영업자다. 미국(6.6%), 독일(8.7%), 일본(9.6%)에 비해 2~3배 많다. 따라서 한국의 자영업자 업황은 경기의 척도가 된다. 자영업자 폐업 100만 시대는 결국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신동아’는 폭염이 한창이던 7월 31일~8월 8일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5년 전만 해도 바글바글하던 거리가…”
7월 31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 한 중고 가구 가게에 팔리지 않은 중고 가구가 쌓여 있다. [임경진 기자]
경기가 좋든 나쁘든 이 거리는 건재했다.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더라도 그 자리에 새로운 자영업자가 창업했고, 새로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곳 중고 물품 가게를 찾았다. 떨어진 잎을 거름 삼아 새 식물이 자라듯,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업자나 이들에게 물건을 넘기는 철거업자·자영업자에게도 폐업과 창업은 자연 법칙과도 같은 ‘순환’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이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거리엔 폐업 자영업자들이 내놓은 물건과, 이를 사려는 예비 창업자들로 붐볐다. 하지만 이젠 흘러간 옛이야기가 됐다. 생기는 사라지고 적막함이 남는다.
중고 환풍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임모(73)씨는 “5년 전만 해도 중고 물품을 싣고 온 트럭으로 거리가 바글바글했는데, 이젠 텅 비었다”며 “중고 물품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 창고에 물건이 쌓인 채 나가질 않는다. 그러니 우리 같은 업자도 더는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중고 가구점 사장인 50대 윤모 씨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2~3년은 잠복기였던 것 같다”며 “자영업자들도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버티다가 이젠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고 했다. 윤 씨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A씨도 “경기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매일 실감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장에 들어오는 가구의 질을 보면 경기를 알 수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땐 깨끗하고 쓸 만한 가구가 들어와요. 반대로 경기가 나쁠 땐 질 나쁜 물건이 들어오고요. 폐업한 가게를 이어받다 업주가 돈이 없으니까 새 가구를 사지 않고 기존 가게에서 쓰던 걸 그대로 쓰거든요. 요즘 저희 가게에 들어오는 물건 질이 그래요. 안 좋아요. 자영업자 사정이 안 좋긴 안 좋구나 싶죠.”
7월 3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강길중 씨가 보여준 이날 매출전표. [전혜빈 기자]
철거업자 김 씨는 “요즘은 가게가 폐업만 하고 그 자리가 새로 채워지지를 않는다. 이 때문에 중고업자들 창고에 물건이 회전되지 않는다”며 “2년 전부터는 폐업 가게에서 나온 중고 주방용품·가구 등을 업자들에게 넘기려면 오히려 폐기 비용을 줘야 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주방거리가 생기를 잃은 데는 ‘당근마켓’ 등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된 이유도 크다. 여기에 문 닫는 가게도 늘면서 주방거리 곳곳에는 점포를 없애고 오피스텔 등 대형 건물이 들어섰다. 임 씨의 말이다.
“신축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임차료도 많이 올랐어요. 새 임대인들은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월세를 요구해요. 다들 못 버텨서 가게를 빼고 있어요. 우리 가게 월세도 170만 원이었는데, 지난해 11월 임대인이 바뀌더니 5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법정 싸움을 진행하고 있어요. 임대인이 ‘소송비용이 들었으니 보증금 못 주겠다’며 버티고 있는데… 판결 나고 보증금 받으면 저도 이 거리를 떠날 겁니다.”
“오늘 장사 끝났어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 아직 가게 문을 닫기엔 이른 시간인데 영업 종료를 알리는 강길중(62) 씨의 말엔 착잡함이 배어난다. 그는 이곳에서 30여 년간 전통찻집을 운영한 ‘터줏대감’ 중 한 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가게를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했다. 예술가, 관광객 등 찾는 사람도 많았다. 코로나가 덮치며 거리에 생기도 사라졌다. 이젠 손님이 적어 점심 장사만 하고 문을 닫는다. 주말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 호시절, 죽을 때까지 안 올 것”
7월 3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전혜빈 기자]
종로는 서울의 대표 번화가이자 상업밀집지구다. 종로 1~6가를 통칭하는 말이다. ‘상권 1번지’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는 곳이라 해서 ‘운종가(雲從街)’라고 불리기도 했다. 조선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전통의 거리이지만 이곳 역시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인사동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엔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이 있다. 이른바 ‘역세권’이지만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20여 년간 고등어 횟집을 운영한 B(72) 씨는 “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며 “고등어 가격은 올해 80%쯤 올라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가게가 유지되려면 일 매출이 150만 원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지경이다. 너무 창피해서 얼마라고 말해주기도 싫다”고 덧붙였다.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 방향으로 가면 광장시장, 곱창골목, 닭한마리 골목으로 대표되는 종로5가·6가 상권이 나온다. C(66)씨는 2006년부터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18년간 장사를 해왔지만 이젠 한계점에 다다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티기 위해 받은 소상공인 대출이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코로나 때 돈이 부족할 때마다 1000만 원씩 대출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이젠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어요. 보기도 무서워서 이제 갚을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확인도 안 해요. 생활도 어렵고 대출금 갚아나가는 게 버거워요. 빚을 갚아나가려면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가게 살림이 정상화돼야 해요. 하루 매출 150만 원은 올려야 하는데 요즘은 적게 버는 날은 40만 원, 많이 벌면 70만 원입니다. 공과금과 빚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려요. 코로나 이전에만 해도 직원 4명이 있었는데 다 내보내도 더 힘들어졌어요. IMF 외환위기도, 코로나도 버텼는데 더는 못 버티겠어요.”
김동빈(70) 씨는 종로5가에서 40년간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며 이 거리와 함께했다. 가히 ‘산 역사’라고 할 만한 그에게도 지금 상황은 이례적이다.
“이젠 다들 장사를 안 하려고 해요. 코로나 이전만 해도 30평형 가게 권리금이 1억~1억5000만 원이었는데, 이젠 7000만~8000만 원까지 떨어졌거든요. 코로나 이후로 여기 상권은 다 죽어버렸습니다. 코로나 이전 경기는 평생,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안 올 것 같아요.”
“장사 20년 만에 카드빚 생긴 건 처음”
8월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용회복위원회 관악지부에 시민들이 새출발기금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남부고용복지센터 창구 6곳에서는 실업급여 신청을 받고 있었다. 오후 6시에 출입문을 닫는데, 10분 전에도 대기 번호표를 뽑을 만큼 사람들이 몰렸다.
자영업자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D씨는 “13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접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도 견딘 그였지만 누적된 손해를 견딜 순 없었다. 까다로운 실업급여 신청 절차가 그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다. 폐업일 이전 24개월간 1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자영업자는 적자 지속, 매출액 감소, 건강악화 등 고용노동부령에서 정하는 사유로 폐업 시 가입 기간에 따라 120~210일간 기준 보수의 60%를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자영업자는 드물다. 5월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0.66%에 그친다. D씨는 “홍보가 잘 안 돼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고, 절차도 까다롭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업급여를 받기까지 전화만 10번, 창구만 2번째 방문했어요. 실제로 신청해 보니 안내문엔 없던 것들을 요구하더라고요. 담당 공무원도 잘 모르는지 여기저기 전화 돌리고…. 결국 받긴 받았지만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자영업자들은 센터를 찾기 전까지, 폐업을 막으려고 마지막 동아줄인 ‘새출발기금’을 찾는다.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에 따른 영업제한 등으로 피해를 입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신용회복위원회에 새출발기금 신청을 하면 기존 금융권 대출에 대해 상환기간 연장, 금리부담 축소 및 원금조정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용회복위원회 관악지부에서 만난 50대 이모 씨는 “20년 자영업을 해오며 카드 대금이 연체된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딱 3일 연체한 카드 대금이 신용도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낮아진 신용점수에 대출 금리가 1%대에서 3%대로 올랐다. 장사가 잘되면 버틸 수 있었지만 닥쳐온 불경기가 이씨의 사업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운영하던 가게가 여럿 있었는데, 이제 하나만 운영해요. 직원 10명이 있었는데 1명으로 줄였죠. 그마저 적자가 나서 이 나이에 새 직장 구해봐야 받아주는 곳 없으니 어떻게든 폐업은 막아보려고 버티고 있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이 많긴 많은가 봐요. 여기 상담받느라 예약까지 해서 2주 기다렸어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캠코 서울통합상담센터에서도 새출발기금을 신청하러 온 자영업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70대 서모 씨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살며 전자제품·자동차 부품 재활용 사업을 한다고 했다.
“40대까지 선경(현 SK)을 다녔어요. 회사 관두고 지금 하는 사업으로 자식들 대학원까지 다 보냈죠. 코로나 때 상황이 어려워서 8000만 원 대출을 받았고, 올해 3월부터 원금 상환을 시작했어요. 이자만 갚는 건 어떻게든 하겠는데, 원금까지 갚으려니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새출발기금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도 견딘 그지만 이젠 버틸 수 없다. 폐업이 임박한 회사를 생각하면 그는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든다.
“IMF 때도 대출을 받았어요. 나라에서 20% 탕감해 주고, 제가 80%를 갚았습니다. 딱 8년 걸렸어요. 그런데 이젠 더 심합니다. 사무실 월세도 못 내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곧 문을 닫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