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군산공장 폐쇄, 한국 제조업 붕괴 상징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 하락
제조업 위기의 외부적 원인, ‘중국’과 ‘환율’
수출 제조업 77.7%가 중국 제품에 의해 타격
제조업 위기 극복 위한 ‘3-트랙’ 방안
2018년 2월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는 한국 제조업 붕괴 실태를 가장 실감 나게 보여준 사건이다. [동아DB]
2013년 12월에는 70%를 차지하던 유럽 시장 수출이 급감하면서 가동률이 70% 이하로 줄었고, 2017년에는 크루즈의 부진과 올란도 판매량 감소로 가동률이 20% 이하로 떨어졌다. 결국 한국GM은 2018년 2월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확정함으로써 생산과 가동이 모두 중단됐고, 그해 6월 1일 최종적으로 공장 문을 닫았다.
한때 4000명에 이르렀던 한국GM 종사자들은 가깝게는 광주로, 멀리는 울산으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상당수는 아직도 안정된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더 많은 인력은 훨씬 큰 고통을 떠안았다. 인근 상가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됐고, 부동산 시장이나 대중교통 업계도 아직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3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이 주최한 GM군산공장 폐쇄 특별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동아DB]
초(超)위기 제조업, 위기 제조업, 정상 제조업
현재의 한국 제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폐업 통계’다. 2023년 폐업자 수는 4만2280명으로 최근 4년 중 가장 많았다. 신규사업자에 대한 폐업자 비율은 91.7%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2024년 통계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나머지 20개 제조업 생산지수는 2021년 4사분기에 비해 낮다. 특히 생산이 저조한 8개 제조업은 가죽가방 65.8, 가구 67.8, 목재 70.4, 의복 76.1, 비금속광물 76.4, 인쇄 78.2, 전기장비 79.0, 그리고 섬유 79.3다. 이 8대 제조업 생산은 지난 3년 동안 생산이 20% 이상 축소돼 ‘초위기 제조업’이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2021년에 비해 2024년 생산이 100에 못 미치는 제조업종으로는 화학물질, 1차 금속, 식료품, 종이, 전기가스, 의료기기, 플라스틱, 전자컴퓨터, 금속가공, 석유제품 등으로써 이들 제조업은 ‘위기 제조업’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머지 5개 제조업, 즉 의약품, 조선 등 기타 운송장비, 담배, 음료 및 자동차의 경우에는 2024년 생산지수가 2021년보다 높으므로 위기에 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상 제조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조업을 초위기 제조업과 위기 제조업, 그리고 정상 제조업으로 구분하는 것은 제조업이 모두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이 있어 생산과 영업이 활발한 반면, 그렇지 못한 제조업도 있다. 이를 구분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따로 모색해야 한다.
2019년 2월 12일 전북 군산의 한국GM 군산공장에 철강 가공물을 납품하던 협력업체의 정문이 굳게 잠겨 있다. 군산공장 폐쇄로 문을 닫은 공장 내부에는 각종 기자재와 설비가 방치돼 있다. [동아DB]
중국 요인과 환율이 제조업 위기 1차 원인
초위기 제조업이든 위기 제조업이든 공통적으로 위기에 봉착한 첫 번째 원인은 중국의 추격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은 국내시장뿐 아니라 수출 시장에서도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 때문에 수출이나 수주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228개 제조업체에 대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제조업체 중 69.7%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실적에 영향을 받고 있거나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제품은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기술경쟁력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전, 스마트폰 등 작은 완제품에서 자동차, 선박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제품까지 중국산이 국내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배터리 같은 제조 제품 부품에서도 중국산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AI 및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중국은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빠르게 좁히며 위협하는 상황이다.
중국 요인 외에 우리나라 제조업은 환율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특히 일본 엔화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일본 제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제조업 제품들이 국내시장에서나 해외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제조업 위기 내부 요인 = 저임금, 노후 설비, 작업환경
풍부한 도시 노동력을 배경으로 유지되던 도심 제조업은 대부분 초위기 제조업으로써 판매시장 부재, 초저임금 구조, 노동력 부족, 고령화, 열악한 작업환경 등 복합적 원인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 의류제조, 의료기기, 인쇄, 가구, 가죽구두, 기계금속, 가방, 가발, 기타 제조업 등이 포함된 도심 제조업 등은 최악의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 속에서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고 있다.
예컨대 도심 제조업의 대표 격인 의류봉제업의 경우 종사 인력과 업체 수는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2020년 7만875명이던 서울 지역 의류봉제업 종사자는 2023년 6만266명으로 15%, 약 1만1000명이 감소했다. 업체 수도 같은 기간 1만6000개에서 1만4000개로 11.6%인 약 2000개가 사라졌다.
‘초위기 제조업’ 및 ‘위기 제조업’은 대부분 저임금과 저생산성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 임금이 낮으므로 유능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가 없고, 따라서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생산설비가 노후화하면서 자본생산성도 떨어지는 데다가 자본력이 약해 신기술 신상품 개발을 위한 투자 여력도 거의 없다.
위기에 처한 제조업 기업 대부분은 강력한 국내 산업 보호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입 상품에 대해 관세를 높여주기를 바라고, 수출 상품에 대해서는 보조금(subsidy)을 지급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관세 보호조치나 수출보조금은 첫째로 국제무역 규범에 위배되는 조치다. 세계무역기구(WTO) 헌장을 보면 모든 가맹국은 관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돼 있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올리겠다는 것은 WTO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우리나라로서는 일방적으로 수입 관세를 인상할 수 없다. 이는 상대국의 보복 조치만 초래할 뿐이다.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해당 상품의 국내 가격이 상승하면서 물가도 자극하고, 국내 소비도 위축시키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제조업을 살리려면 관세나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록 기업들이 절실히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제조업 위기 극복 위한 3-트랙 방안
제조업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제조업체별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체(A-TIER)와 경쟁력 회복 지원이 필요한 업체(B-TIER), 그리고 선도 지원 업체(C-TIER)로 따로 구분해 업체별로 지원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첫째로 경쟁력 회복이 가능한 초위기 및 위기 제조업 업체(B-TIER업체)는 존속시키되, 둘째로 자립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제조업체는 과감한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업체)로 지정한 뒤 필요한 지원 정책을 적극 실시해야 한다. 초위기 제조업체나 위기 제조업체 중에서 경쟁력 회복이 가능한 업체 선정은 최근 몇 년간의 영업 실적, 외부 평가 및 업체 스스로의 전망을 바탕으로 하고, 이들 기업에 각각 필요한 지원 정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통 뿌리산업의 중요성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부터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첨단 제조업과 기초과학 연구에만 집중한 결과 지난 10년간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 이런 반성에 입각해 미국은 2001년부터 전통 제조업, 즉 뿌리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정부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통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제조업은 당장의 실적이 아니라 먼 안목을 보고 평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경쟁력은 한류라기보다는 제조업이며, 특히 전통 제조업이 도태되면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의 지원 정책으로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하거나 겸업화로 경쟁력을 보강하는 것이 있다. 또 이종 혹은 유사 업종으로 전환을 유도하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동종 유사 업종 업체 다수가 합병해 대형화하려고 하는 경우 정부가 매칭펀드를 조성해 지원할 수도 있고, 금융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제조업체 운영자가 전업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직업교육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력 회복 지원업체(B-TIER)의 경우에는 기술개발(R&D) 투자 지원, 설비투자 지원, 신규 시장 개척 지원, 그리고 인적자원 교육투자 지원으로 나눠 필요한 수준에 맞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의 선도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체(C-TIER)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개발투자, 기술투자, 설비투자, 인력교육 지원, 신규 시장 개척 등을 들 수 있다.
3-트랙 방안에 필요한 조치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 지원 정책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나 겸업화로 경쟁력을 보강하거나 이종 혹은 유사 업종으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경영 자문과 함께 법률 자문 지원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경영 자문기관과 법률 자문기관의 제도적 참여를 확보해야 한다. 인적 교육이 필요한 경우에도 경영 전문 교육기관의 협조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대형화, 겸업화의 인센티브로서 매칭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재정이나 금융기관 혹은 투자기관 협력도 필요할 것이다.
경쟁력 회복 지원업체(B-TIER)나 선도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체(C-TIER) 지원 정책에서는 기술개발(R&D) 투자 지원과 설비투자 지원을 위한 막대한 자금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펀드를 조성하거나 아니면 특수목적의 투자기구를 설립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2의 기업은행 설립과 같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기관을 설립해 대처할 수도 있다. 인력교육의 경우 경영 전문 교육기관의 협조를 받게 하고, 신규 시장 개척의 경우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혹은 외교기관을 적극 활용해 대응할 수 있다.
제조업 위기 극복은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자금과 굳은 결의가 필요할뿐더러 오랜 기간이 필요한 과업이다. 따라서 정부의 끈질긴 집념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구성하고 입법부 지원을 통해 ‘제조업 위기 극복 5개년 계획’과 같은 중장기 플랜 마련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