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이동수의 투시경] 尹 사과의 공통점 = ‘책임 회피’ ‘남 탓’ 그리고 ‘기만’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4-12-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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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발언, 개 사과, 국회 개원식 불참, 명태균…

    • ‘갈등 조정’ 안 보이고 권리의식만 충만한 ‘문제인(問題人)’ 윤석열

    • 대통령은 국회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자리

    • 정치는 무너졌고, 경제는 흔들렸으며, 외교는 신뢰 잃어

    • 선의에 기댄 시스템은 돌발 변수 막지 못한다

    • 다음 대통령은 정치 해본 사람, 검증된 사람 뽑아야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2024년 12월 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2024년 12월 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되짚어 보면 이 모든 사건의 시초에는 ‘개 사과’가 있었다.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21년 10월 19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선거운동차 들른 부산의 한 당협위원회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말로 요약되는 이 발언은 당연히 큰 논란을 일으켰다. 윤석열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5·18과 군사쿠데타는 잘못했다고 분명 얘기했다”면서 앞뒤 다 떼고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라는 식으로 반박했다. 고집은 매를 벌었다.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전두환 옹호’ 발언 이틀 뒤 그는 유감을 표명했다.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에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날 또 사과했다. “전두환 정권에 고통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라며.

    일단락된 듯했던 설화가 재차 불거진 곳은 소셜미디어(SNS)였다. 두 차례 사과한 그해 10월 21일 밤, 그의 인스타그램에 반려견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이 올라왔다. “안녕하새오. 톨이애오!” 개에게 사과를 내민 사진 구도부터 말투까지, 국민을 비아냥거리는 거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캠프 측에선 실무자가 올린 거라고 해명했다. 뭐, 이때까지는 눈치 없는 누군가의 말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볼 수 있었다고 치자.

    2021년 10월 21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논란이 됐던 ‘개 사과’ 사진. [동아DB]

    2021년 10월 21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논란이 됐던 ‘개 사과’ 사진. [동아DB]

    ‌‘개 사과’ 이후에도 윤석열이 사과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는 처음엔 부인하거나 무시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대통령실 관계자나 국무위원 전언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직접 나서는 건 그 정도 선에서 매듭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악화해 궁지에 몰렸을 때다. 최근만 보더라도 김건희·명태균 리스크가 본격화했을 때(2024년 11월 7일)나 비상계엄 발동으로 탄핵 여론이 격화됐을 때(2024년 12월 7일),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윤석열의 사과에는 공통점이 있다. 책임 회피와 남 탓 그리고 기만이다. 그는 늘 본인은 국정 운영에 최선을 다했는데 야당을 포함한 반국가 세력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상황이 이 지경이 됐다고, 그래도 논란이 되긴 했으니 일단 사과는 하겠다고 말했다.

    권리의식만 충만한 尹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야당의 탄핵 남발과 예산 폭거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그들이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한다”며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이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과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면서 국민의 피로도 높았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야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하지 않았던 게 그 증거다. 그러나 제아무리 야당이 의회에서 안하무인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회를 폐쇄하고 체포조를 가동해 현역 정치인 여럿을 잡아들일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대통령으로서의 권리의식이 충만한 ‘문제인(問題人)’ 윤석열에게는 일말의 비판도 용납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 비뚤어진 결기는 김건희 여사와 결부된 지점에서 더욱 강화된다. 국민의힘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고 간 윤·한 갈등만 봐도 그렇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어느새 반윤의 대표 주자가 되지 않았던가.

    2024년 1월 24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월 24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월,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앉은 지 한 달 된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표면적 이유는 김경율 당시 비대위원을 서울 마포을 총선 후보로 ‘사천’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이견, 무엇보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 결정적이었다는 건 모두가 안다. 1월 24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약속 대련’이라고 의심했다. 설마 그 정도 발언으로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가 너무 상식적으로만 판단했다.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여소야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화와 타협은 필수 덕목이다. 2013년 10월 미국 연방정부가 문을 닫았다. 이름하여 셧다운(Shutdown).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안) 도입을 둘러싼 예산 갈등이 발단이었다. 17년 만에 행정부 기능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상·하원 지도부에 직접 전화를 돌리며 설득에 나섰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는 채 10분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취임 후 2년이 다 되도록 야당 대표와 인사 한번 나누지 않은 대통령에 비하면 ‘양반’이다. 오바마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공화당 하원의원 232명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물론 대부분이 불참했다. 그러나 셧다운은 일주일 뒤에 풀렸다. 당시의 갈등 해소 과정이 매끄러웠다고 보긴 어렵지만, 극심한 충돌을 타개하려고 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은 2022년 5월 대통령 취임 이래 그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기존 정치에서라면 당정 간에, 여야 간에 만나서 이야기 몇 번 나누면 해결될 일도 극단의 상황까지 몰고 갔다. 양곡법 거부권 행사가 그랬다. 그가 인사나 예산 문제로 교착상태에 놓인 정국을 풀어내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식사 자리를 갖거나 통화 한 통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예산만 봐도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세수 펑크가 계속되자 각종 기금에서 돈을 끌어다 썼다. 그중에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외국환평형기금이나 주거 안정에 쓰일 주택도시기금도 포함됐다. 국채 발행이나 추경은 기존에 주장한 건전 재정 기조와 배치되고, 국회 동의도 필요하다. 자존심을 꺾기도, 손을 내밀기도 싫으니 ‘꼼수’를 쓴 것이다.

    거부권, 개원식 불참 이어 계엄령까지 ‘신기록 행진’

    정치의 본령은 갈등 조정이다. 정치 최정점에 선 대통령은 일하면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숙명이자 의무다. 행정수도 이전, 한미FTA 추진 등으로 거센 반발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건희 여사 말에 따르면 “노무현 영화 보고 혼자 2시간 동안 울었다”던 윤석열에게선 그런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비판이나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과 다르거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대통령의 의무라도 이행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임기 동안 헌정사에 유례없는 장면이 대거 연출됐다.

    거부권은 이제 말하기도 지겨운 소재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횟수 총합은 16회. 노태우 7회, 김영삼·김대중 0회, 노무현 6회(2건은 고건 권한대행), 이명박 1회, 박근혜 2회, 문재인 0회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1월 26일 김건희 특검법까지 총 25회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에 관한 한 ‘윤석열의 2년 반’은 그 이전 대통령들의 34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국회 청문보고서가 미채택된 장관 임명 건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장관만 놓고 봐도 17건에 달한다. 다사다난했던 문재인 정부도 11건에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존경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한 건 불과 3건이었다.

    2024년 9월 2일, 윤석열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24년 11월 4일엔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이 참석하는 게 관례로 자리 잡았던 국회 시정연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1년 만이다. 사흘 뒤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불참 사유가 가관이다. “대통령 망신을 좀 줘야겠으니 국민들 보는 앞에 와서 무릎 꿇고 망신 좀 당하라는 건데, 이건 정치를 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라 정치를 죽이자는 얘기”라는 것, 그러니까 야당의 ‘망신 주기’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권력자 선의에 기댄 민주주의, 더는 안 된다

    윤석열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배운 적 없다. 아니, 정치 자체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정치도 검사처럼 했다. 범죄자 잡아넣는 데 전문이었던 그는 정치도 그렇게 밀어붙이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 캐릭터가 ‘범죄와의 전쟁’이나 ‘적폐 청산’ 같은 방향이 아니라 비상계엄으로 구현됐다는 건 한국 정치사의 블랙코미디다. 대화, 타협, 합의 등 ‘정치의 덕목’이 결여된 그는 항상 물러서지 않았다. 비상계엄도 밀리고 밀린 끝에 택한 결정이었다. 아마 그다음이 있었다면 군사 도발이 아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항상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강조했던 그는, 마치 TV 리모컨 버튼을 죄다 눌러보는 유아(幼兒)처럼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을 마구잡이로 행사했다. 그 권한에 함께 포함돼 있는 의무는 외면했다. 덕분에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분석처럼 5000만 국민은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멋대로 휘두른 권력의 대가를 할부로 갚아나가게 생겼다. 정치는 무너졌고, 경제는 흔들렸으며, 외교는 신뢰를 잃었다. 한 사람의 폭주에 따르는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윤석열의 등장과 당선, 몰락 과정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지난했던 야당과의 대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헌법과 법률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줬다. 속된 말로 대통령이 ‘알박기’를 하면, 국회가 무슨 수를 쓰고 국민이 뭐라 비판해도 제지할 수 없었다. 고작 한 사람의 대통령이 입법부를 마비시키고 사법부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걸 윤석열은 증명해 줬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다.

    1973년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제목의 책을 쓴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대통령의 권한이 행정부를 넘어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때 그는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제왕적 대통령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누누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던 건 역대 대통령들이 나름의 책임감과 염치를 가지고 국정에 임해 왔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아닌 권력자의 선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유지해 온 셈이다.

    선의에 기댄 시스템은 돌발 변수를 막지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변수를 헌법과 법률에 모조리 기재할 수도 없다. 어떤 경우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고, 어떤 사람은 사면권을 행사하면 안 되는지를 일일이 적어놓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엔 사람이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의 반작용으로 반짝 뜬 라이징 스타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훈련되고 검증받은 사람이 올라가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출마 자격에 대한 제도(공직선거법)가 될 수 있고, 당의 공천 규칙이 될 수도 있다.

    소명 의식 충만하고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같은 버그(오류)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 대통령은 정치 해본 사람, 검증된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통령은 다시는 나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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