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정치파업, 법치를 흔드는 처사
정치적 노조, 여당은 물론 야권에도 부담
80% 근로자 외면하고 있는 노조
노란봉투법, 노동쟁의 대상만 애매해지게 돼
尹 노동개혁, 100점 만점에 70점
취업하고, 아이 낳고 싶은 삶 만드는 노동정책 필요
출산장려금, 육아휴직도 지금보다 늘려야
아이 낳고 돌아온 근로자는 더 빨리 승진해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조영철 기자]
자리에 앉아 있는 김 장관에게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계엄에 찬성한다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김 장관은 “계엄에는 반대한다”면서도 “탄핵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장관의 태도를 두고 야권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2024년 12월 1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 장관의 발언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며 “침묵과 회피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이 같은 평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2024년 12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사에서 만난 김 장관은 “민주노총 등 노조가 파업을 해가며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 발언은 2012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탄핵 재판을 앞두고 있는 대통령을 편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 장관은 누구도 편들지 않았다. 그가 “옳지 않다”고 말한 부분은 ‘대통령 퇴진 운동’이 아니라 ‘파업’이었다. 김 장관은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금지돼 있다”며 “잦은 파업은 일을 못 하는 회사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크지만, 그 시간 급여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손실도 크다”고 말했다.
1시간의 인터뷰 내내 김 장관은 지금의 근로 환경과 노동 관련 정책 개선안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당초 이 인터뷰는 김 장관 취임 100일에 대한 소회와 노동개혁을 주제로 마련됐는데, 그 사이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시국 관련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김 장관은 현 시국에 대해서는 “근로 환경 개선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하는데 (계엄 및 탄핵 시국으로) 업무 진행이 쉽지만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민주노총, 차기 정권에 부담 주려 정치파업 감행
2024년 12월 5일 오후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파업 등 노동쟁의의 목적은 근로자의 권익 개선인데, 이번 파업은 근로자의 권익과는 무관한 정치파업이다. 이는 법을 어기는 행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2조 5항은 파업 등의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의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이 결정에 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 상태”라 규정한다. 김 장관은 민주노총의 파업이 사용자(회사)가 아닌 정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법을 어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양대 노총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차기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 본다. 대통령 퇴진에 앞장섰으니 차기 정권이 수립되면 ‘정년 연장’ ‘임금 인상’ 등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차기 정권이 양대 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일까.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가 더 우려스럽다.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단체인데 노동자가 아니라 일부 노조, 혹은 노조 간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의 권익의 희생되는 것은 물론 노동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률적인 정년 연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정년이 임금체계 개편 없이 일률적으로 늘어나면 기업은 새 근로자를 채용하기 어려워진다. 통상 근로자들은 근속연수가 높을수록 임금이 높아진다. 임금이 높은 근로자를 정년이 돼도 해고할 수 없으니 일자리 창출은 더 어려워진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근로자들도 당장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위험도 있다.
“정년 연장을 하려면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해 급여를 줄이는 데에 동의해야 한다. 이외에도 퇴직 후 촉탁직 재고용도 가능하다.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만큼 회사 측의 부담이 줄어든다. 부담이 줄어든 기업은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생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년을 앞둔 근로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양보라기보다는 고령자의 일자리와 청년의 일자리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퇴직 후 재고용, 임금체계 개편 등 상생을 위한 여러 제도적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계는 국민 노후 안정을 위해서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계가 ‘국민’을 내걸고 정년 연장을 주장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정년 연장의 수혜자가 그리 많지 않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퇴직을 앞둔 대기업이나 공기업 근로자들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집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80.9%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그런데 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정년 연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정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당장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인데 정년이 됐더라도 굳이 해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은 왜 정년퇴직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다. 개발도상국에서 힘들게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도 한국 중소기업의 근무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대형 노조가 정말 한국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정년 연장을 주장하기보다는 근로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
노란봉투법, 오히려 근로자 권익 후퇴시켜
2022년 7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의당(현 녹색정의당)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린 가운데 이은주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노란봉투법 제정’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동아DB]
세월이 흐르고 바라보는 방향은 달라졌으나 노동 현장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김 장관은 2024년 8월 30일 취임사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 약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그분들의 삶을 지키겠다”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소외된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어떤 정책을 펴고 있나.
“노동약자보호법(가칭)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 근로자, 플랫폼 프리랜서,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노동약자보호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사용자가 확실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근로계약서도 작성하고, 일하다 다치면 일부 보상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약자보호법 입법 대신, 이 법이 보호하겠다는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프리랜서,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랬다가는 근로기준법상 혼선이 생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려면 근로자와 그 근로를 사용하는 사람이 특정돼야 한다. 근로 환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노동 약자로 분류되는 업종은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배달 플랫폼 프리랜서인 배달원을 예로 들어보자. 배달원의 사용자는 배달비를 내고 음식을 주문한 사람일까. 아니면 배달을 요청한 음식점일까. 그것도 아니면 배달을 중개한 플랫폼일까.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야당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해 플랫폼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도 노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노조를 설립한다고 해도 쟁의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결국 모든 책임을 대기업이나 대형 플랫폼으로 돌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상식적이지 않다. 근로자를 위한답시고 모호한 입법을 하면 오히려 근로자의 권익은 후퇴하고 과도한 쟁의가 벌어져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노동조합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사측)의 범위를 원청 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가 늘어나는데 근로자 권익이 후퇴할 수 있을까.
“늘어난 노조가 근무 환경 개선의 책임을 무작정 대기업이나 대형 플랫폼으로 돌리면 근로자 권익이 후퇴할 수 있다. 건설 현장에서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가 다치는 사고가 있다고 가정하자. 지금은 현장을 책임지는 시공사에 책임을 묻는다. 공사가 해당 근로자의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빠르게 피해보상을 받고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근로자는 해당 건설을 의뢰한 시행사에 피해를 보상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시행사는 별개의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상 보상 책임이 없다. 책임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니 분쟁은 길어진다. 그만큼 근로자가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시간은 늦춰진다.”
정권 교체되면 노동개혁 무산시킬 것
윤 대통령은 집권 기간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한다는 것이 현 정부 노동개혁의 골자인데, 현재 노동개혁은 얼마나 진행됐나.
“노동시장 유연화는 거의 이뤄진 것이 없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하려면 취업 규칙을 바꿔야 하는데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때 노조가 있는 회사는 노조와 단체협약을 하는데 설득이 쉽지 않다.”
현 시국이 문제인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현 정부의 노동개혁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라 본다.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실패했으나 불필요한 파업을 줄이는 일에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게 된다면 이 성과도 다시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교체되면 다음 정권이 노동개혁을 무산시킬 것이라는 의미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했든 노동계는 탄핵 정국에서 총파업이라는 공을 세웠다. 다음 정권에 원하는 바를 요구할 텐데, 나는 노동계 요구안 중 하나가 ‘노란봉투법 통과’라 생각한다. 법이 통과된다면 쟁의의 대상도 명확하지 않은 노조가 우후죽순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불필요한 파업도 늘어날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노조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은 노조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근로자 권익이 제대로 보호받는 것도 아니다. 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다수 근로자의 목소리가 사라진다. 대표적 예가 젊은 근로자들이다. 전체 노조 간부 중 20~30대 비율이 얼마나 되겠나. 대부분은 50~60대다. 노조가 늘어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고령층 근로자들의 목소리만 커지다 보니 청년 근로자들이 원하는 바를 들을 수 없다.”
청년 근로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정책이 뭐라고 생각하나.
“젊은 층이 결혼·출산·육아를 포기했다고들 하는데, 그만큼 이들이 처한 근로 환경이 열악하다는 의미다. 젊은 근로자들이 결혼하고 출산할 용기를 얻도록 확실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현 정부 들어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렸더니, 9년 만에 출산율이 반등했다. 제도적 지원으로 근로환경을 확실하게 개선한 효과다.”
2024년 11월 20일 한 엄마와 아이가 서울시내 한 직장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2025년 2월 23일부터 육아휴직 기간이 현행 1년에서 최장 1년 6개월로 연장된다. [뉴스1]
“인사상의 불이익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각 회사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에게 인사고과 가점을 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출산이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내가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육아휴직 마치고 돌아온 직원을 원하는 부서에 우선 배치했고,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남녀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출산, 육아 등으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일하는 근로자가 늘어날 것이다. 기업의 부담이 너무 크다면 근로의 형태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일하는 시간, 급여 등을 조정해 아이를 기르면서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선행돼야 한다.”
김 장관은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측과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펴 근로자의 삶을 개선하고 이로써 노사 다툼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노동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근로자의 권익과 무관한 파업은 멈추고, 파업을 하더라도 영리하게 해야 한다. 사측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때까지 파업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협상에 나서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회사만큼이나 근로자의 손해도 크기 때문이다.”
신동아 1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세대 주역 ‘청년’이 제시하는 2025 새 희망 비전
KAI “성능 문제없고, 폴란드 측 승인 기다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