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떼놓은 당상인가?

  •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2024-12-15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17년 문재인, 안철수·홍준표 분산 덕에 당선

    • 1차 대통령 탄핵안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

    • 이재명 대표 상대할 여권 주자 현시점 없어

    • “윤석열도 싫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유권자 많아

    2024년 11월 15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실형이 선고됐다. [뉴시스]

    2024년 11월 15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실형이 선고됐다. [뉴시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파면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최대 수혜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였다. 사실 문 대표는 2016년 11월 상순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빨리 종식할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퇴진 요구를 유보하고 신중론을 지켰다.

    그러나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고 탄핵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뒤늦게 그 역시 박 대통령 탄핵 요구에 몸을 실었다. 당시 제1야당 대표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그리고 대선에서 비(非)문재인 표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로 나뉘는 3자 구도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실패한 ‘친위 쿠데타’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 때의 국정농단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윤석열발(發)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다. 2024년 12월 3일 밤의 광경은 50여 년 전에나 있었던 군사 반란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다. 국민이 받은 충격과 불안은 국정농단 사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국민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고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건물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던 과정을 여러 생중계 채널로 지켜봤다. 2시간 반 만에 국회의 해제 요구로 비상계엄은 무효가 됐다. 실패한 ‘친위 쿠데타’는 이제 엄정한 법적·정치적 심판을 앞둔 상황이다. 그날 이후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요구가 사방에서 분출했고, 대통령으로서 그의 권한과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윤 대통령의 거취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날 문제 같았지만 이를 둘러싼 정국 갈등은 격화됐다. 12월 7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놓고 여야는 심각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국민의힘은 여론의 역풍을 무릅쓰고 반대 당론을 고수했고, 이탈표 방지를 위해 아예 집단 불출석했다. 결국 1차 탄핵소추안은 의결 정족수 200명(전체의 3분의 2)을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됐다.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는 여야 간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탄핵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격하게 나타났고,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가 달랐다. 이는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주도권 경쟁이라 할 수 있다. 1차 탄핵안 처리가 무산된 다음 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동을 하고 공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또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와 조기 퇴진을 비롯한 사태 수습을 여권이 주도해서 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는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민주당에 넘겨주는 데서 나아가 정권을 야당에 헌납하는 상황을 막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야권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얼굴을 바꾼 2차 내란 행위”라고 비판하며 “두 한(韓) 씨의 반란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이 여론의 역풍을 무릅쓰고 탄핵을 무산시킨 이유는 윤 대통령 탄핵이 간신히 정권을 되찾은 보수 정치를 다시 궤멸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에 있다. 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조기 대선을 실시할 경우 이재명 대표에게 대통령 자리를 그냥 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국민의힘의 그런 판단이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여론 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가 뉴스핌의 의뢰로 2024년 12월 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2.4%가 이재명 대표라고 응답했다. 2위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9.8%에 그쳐 5배 이상의 압도적 격차를 나타냈다. 뒤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6.7%,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5.5%, 홍준표 대구시장 4.9%, 김동연 경기지사 3.9%, 김경수 전 경남지사 3.1% 순으로 나타났다.

    2024년 12월 초 기준으로 이재명 대표를 상대할 만한 여권의 대선주자가 없는 셈이다. 이 조사에서 특기할 점은 이 대표가 보수정당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장년층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아 전 연령대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민심의 역풍이 강하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상계엄 사태에 묻힌 이재명 사법 리스크

    이 대표에게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윤 대통령이 일으킨 비상계엄 사태 덕분에 대선 출마의 최대 위기 요인이던 ‘사법 리스크’를 일거에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사태가 있기 전만 해도 이 대표는 2027년 3월의 대선 출마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2024년 11월 15일 공직선거법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 형을 확정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되기에 2, 3심에서 이 판결이 유지된다면 이 대표는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선거법상 선거사범 사건은 1심 6개월,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강제 규정이 아니라 훈시 규정이라 이 대표의 1심 선고만 해도 검찰이 재판에 넘기고 2년여가 지나서야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선거사범 선고 시한 규정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1심 선고가 지나치게 지체된 데 대한 비판 또한 많았기에 2, 3심의 심리와 선고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빠르면 2025년 5~6월께 대법원 최종 선고까지 내려질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1심에서 징역형까지 내려졌기에 2심에서도 최소한 대선 출마 자격이 상실되는 형이 내려질 가능성이 제법 컸다.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서도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의 진행 속도와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2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대표에게는 아직 살아 있는 폭탄이다. 위증교사 혐의가 갖는 심각성을 강조하며 1심 무죄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2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될지는 가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후폭풍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을 조기에 퇴진시켜 자신의 선거법 사건에 대한 3심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르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여기에 위증교사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뒤집히는 3심 판결까지 조기 대선 이전에 나오지만 않는다면 이 대표의 대선 가도를 가로막을 것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2024년 12월 3일 밤 군 병력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12월 3일 밤 군 병력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의 시간 싸움

    2024년 12월 4일 이후,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시간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국민의힘이 7일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국회 본회의에 집단 불참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무산시킨 것도, 그렇게 빨리 탄핵 열차를 발차시키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일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해졌지만, 이 대표의 선거법 사건에 대한 확정 판결이 먼저 내려져야 그가 대선에 출마하는 길이 봉쇄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 그리고 비상계엄에 강력히 반대했던 한동훈 대표까지도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탄핵이 아닌 다른 방식의 ‘임기 단축’을 거론한 것이다.

    결국 조기 대선의 시기가 언제가 되느냐 하는 문제다. 국민의힘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윤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그래야 이재명 대표에 대한 확정판결도 가능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라도 유지하며, 조기 대선에 대비할 여유가 생긴다는 이유일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의 퇴진과 조기 대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그것이 사법 리스크도 해결하고,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 대선을 치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막상 민주당이 요구하는 탄핵 절차를 통한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과 대선 실시, 그리고 국민의힘이 원하는 임기 단축 방식에 따른 조기 대선 일정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날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아무리 시간 벌기를 원한다 해도 6개월 이상 윤 대통령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에 따른 국가적 혼란도, 국민의 비난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2025년 6월께 하야하도록 하는 방안을 거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경우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기에 2025년 8월쯤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의힘의 희망 사항일 뿐, 탄핵을 방어하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매주 탄핵소추안을 발의한다고 하니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이탈표가 늘어나 탄핵소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내란 혐의로 입건된 윤 대통령이 조기에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더는 탄핵에 반대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표를 의식한 시간 벌기 싸움에만 매달리면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탄핵 반대당’ ‘내란 비호당’이라는 낙인에 공감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서 힘도 써보지 못하고 그 이전에 궤멸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가 궤멸된 것은 탄핵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환골탈태하지 않은 보수 정치의 모습이 진짜 원인이었다.

    지금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지켜주는 모습으로 비칠 때 국민 여론으로부터 고립당해 조기 대선이 있어도 속수무책인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반대로 윤 대통령을 좀 더 과감히 손절해 결별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인다면 조기 대선이 실시돼도 해볼 만한 구도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열려 있다.



    2024년 12월 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12월 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중도층에서 비토층 많은 대선주자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확고부동한 대선주자이지만, 여전히 중도층에서 비토층이 많다. “윤석열도 싫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유권자는 지금도 많다. 다만 윤 대통령이 워낙 큰 사고를 저질렀기에 다들 윤석열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빨리 손절하고 보수 정치를 재건축한다는 기치와 함께 당내 역동적 경쟁을 통해 한동훈이든 오세훈이든 단일 후보를 내세워 이재명 대표와 1대 1 대결 구도를 만든다면 해볼 만한 선거가 될 길은 열려 있다. 박근혜 탄핵 직후에 실시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얻은 표의 합이 문재인 후보의 표보다 많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전제는 국민의힘이 이미 끝나버린 윤 대통령과 한 몸이라는 시선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준 것은 이재명 대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국민의힘도, 윤석열 후보도 대선에서 승리할 만한 특별한 매력을 보여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재명만은 찍을 수 없다”는 이재명 비토층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도층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많았던 ‘이재명 비토층’ 덕분에 당시 윤석열 후보는 어찌 보면 어부지리의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내가 찍는 후보가 잘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선거의 결과는 이렇게 참담한 결말을 낳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윤석열이 이재명을 살려주는 판을 만들어줬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차기 대선의 중대 변수로 살아 있던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정국의 블랙홀을 만들었다. 이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윤 대통령 탄핵 여론에 덮여 관심권 밖으로 사라졌다. 윤석열이 이재명을 구해 주고 자신이 정치적 무덤으로 가는 어이없는 자폭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필자가 ‘신동아’ 2024년 12월 호에 쓴 칼럼 제목이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 정치의 ‘X맨’인가’다. 자칫 윤 대통령으로 인해 보수 정치가 궤멸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얘기였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정기 국회에서 야당의 ‘무한 폭주’를 비판하던 여론과 언론들도 군을 동원한 윤 대통령의 초현실적 비상계엄 앞에서 쑥 들어가 버렸다. 비판받을 강도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야당의 극단주의적 강경파 의원들이 다시 정치의 주역이 돼 TV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 사태의 결말이 우리 정치를 어디로 가게 만들지는 안개 속이다. 2017년 대통령 탄핵 → ‘촛불 정부’의 집권 → 다시 정권교체를 거치고서도 우리 정치는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대혼돈에 갇혀 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리에 매달려 있는 여당이 한심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칼만 휘두를 줄 알지 성숙한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운 야당의 모습에서 그들이 대안이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어렵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정치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