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집권 전반기 인사 검찰·친MB계만 부각
새 인재 찾는 탕평 없이 과거 인물 ‘돌려막기’
MB정부 실정 책임 있는 ‘그때 그 사람’ 기용
‘강성 우파’ 등용으로 ‘보수-중도 연합’ 자진 해체
2022년 4월 1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새 정부 2차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위기 상황은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갤럽이 10월 29∼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 부정 평가는 72%로 나타났다.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정 평가 또한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32%로 동률을 기록했으며, 조국혁신당 7%, 개혁신당 2%, 진보당 1%로 나타났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25%였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회에서는 야당이 사실상 집권당인 현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그리고 올해 4월 총선에서 역대급 참패를 겪으면서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스타일을 많이 바꾸겠다”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더 많이 소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갈수록 하락하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는 사실상 야당이 집권당인 현실에서 민심마저 이렇게 등 돌리면 국정 운영의 동력이 생겨나기 어렵다. 더욱이 조기 레임덕에 직면하게 됨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민심은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은 윤 대통령에게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현재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 사태의 장기화, 계속되는 ‘윤석열-한동훈’ 갈등, 김건희 여사에 대한 여론 악화 등 민심 이반을 낳은 요인들이 여러 가지로 쌓인 상태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의 최대 원인으로 꼽힌 것은 인사정책의 실패였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집권하고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도, 내내 민심을 모르는 국정 운영으로 비친 것도 기대 이하의 인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고위직 인사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 온갖 시빗거리는 블랙홀처럼 윤석열 정부 국정 성과를 모두 빨아들였다.
큰 틀에서 볼 때 무엇보다 문제가 됐던 건 문재인 정부 때와 다를 바 없는 진영과 편가르기 인사에 갇혀버린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반 탕평 인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진영에 갇힌 국정 운영을 했던 것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진영 정치를 비판하고 들어선 윤석열 정부가 자기 자신도 진영에 갇힌 인사를 반복하는 모습은 자가당착이었다. 민심의 실망은 여기서 시작됐다.
우선 윤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줄곧 지적받아 온 것은 검찰 출신 편향 인사였다. 윤 대통령 자신이 검찰 출신이기에 검사의 능력을 신뢰해서인지, 아니면 믿고 맡길 것은 검찰에서 부하로 데리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지, 검찰 출신 중용 비중이 과도하게 나타났다. 특히 차관급 인사와 대통령실 인사에서 검찰 출신 인사들의 기용이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도 많게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5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을 통해 공공기관의 관련 공시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에서 23개 공공기관의 임원인 이사나 감사로 임명된 검사·검찰공무원 출신 인사가 29명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검찰 출신 편향 인사가 계속된 것은 검찰 출신들이 자기 라인 사람들을 기용하는 자기들끼리의 폐쇄적 인사를 해온 탓도 있다. 인사기획관과 공직기강비서관 등으로 구성된 대통령실 인사 추천·검증 라인이 검찰 출신으로 채워지니 이들이 찾는 ‘일 잘할 사람’에 검찰 출신들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검사는 법률적 판단만 하면서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상명하복 원칙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정부 고위공직자든 대통령실 참모든 언제나 정치적 판단력이 뒷받침되는 정무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 인사들에 크게 의존한 것은 자신의 뜻을 충직하게 이행할 사람들을 선호하는 모습으로 해석됐다. 이는 대통령 주변에 직언할 사람이 없는 현실을 낳았다. 물론 야당들로부터는 ‘검찰공화국’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전반기 인사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과거 친(親)이명박계 인사들의 중용이었다. 이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부터 나타났던 현상이다. 대선 캠프를 구성할 때부터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에 활약했던 간판급 인사들이 대거 중용됐다. 더러 친박이나 과거 민주당 출신 인사도 섞여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실세는 친이계였다. 그래서 당시 윤석열 후보의 국민캠프는 검찰 출신과 친이계 인사들이 캠프 운영을 주도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과 우호적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집권 후 인사에서 MB계 부활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보수 정치인 가운데 유독 친이계를 중용한 것은 친박계와는 상대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과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수사의 책임을 맡았던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향해 수사의 칼을 든 주역이었고, 이에 친박계 인사들과는 불편한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인사정책에서 친이계 중용은 여론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실패한 정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새로 들어선 정부가 굳이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 따르는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광경은 실패한 과거 정부로 돌아가려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비쳤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친이계 중용 인사는 정책 면에서도 이명박 시절의 실패하거나 여론의 비판을 받았던 정책들을 재연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에 의존하는 인사를 해온 점은 민심을 잃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집권 전반기에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인사 특징은 인재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검찰 편중과 친이계 부활의 인사정책은 ‘대한민국에 그렇게도 인재가 없느냐’는 자조적 반응을 초래했다. 문재인 정부 5년이 낳은 국가적 대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통해 미래로 갈 새로운 정부의 모습을 보이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인사였다. 윤 대통령 주변에는 과거 실패했던 정부에 책임이 따르는 ‘그때 그 사람들’이 둘러싼 모습이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국민은 기대를 접고 실망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요구한 인사의 방향은 탕평
왜 윤 대통령은 새로운 인재를 찾아 나서고 중용하려는 의지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수준을 생각하면 새 정부를 이끌어갈 인물들이 검찰 출신 아니면 MB 정부 시절 사람들뿐이라는 광경은 국민으로 하여금 자괴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파의 담을 넘어선다면 각계에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데, 굳이 과거에 갇힌 인사에 매달리는 대통령을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초반부터 정파를 넘어 인재들을 널리 구하는 탕평 인사를 했어야 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인사 방향이었다. 그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가장 손쉬운 인사 방식에 안주한 것은 윤석열 정부 집권 전반기의 최대 패착이었다.
문제는 그런 비우호적 시선을 받으며 인사청문회에 나선 장관급 후보자들 가운데 자격 논란이 빚어진 인물이 많았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무위원 후보자가 신상 논란 때문에 중도에 낙마한 것은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호영·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이 있다. 그에 따른 파행도 간단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하면서 장관 자리가 5개월 가까이 공석이 되기도 했고, 김행 후보자 낙마로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이 2월 21일 물러난 이후 현재까지 여가부 장관은 공석이다.
윤 대통령은 9월 6일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했다. 두 후보자는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기에, 윤 대통령 취임 후 각각 28번째, 29번째 임명 강행이었다. 아직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음을 감안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고 조금만 흠결이 있어도 임명에 반대하는 야당의 강경 일변도 대응에도 책임은 있다. 민주당도 집권 시절 비슷한 고충을 겪었다. 하지만 다소의 논란거리가 있더라도 임명에 동의해 줄 때는 적극적으로 해주는 협치의 모습이 필요한데, ‘부적격’ 의견을 너무 빈번하게 내놓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거듭되는 임명 강행은 일방적 인사라는 인상을 쌓고 국정에 부담을 키워온 것 또한 사실이다.
집권 전반기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개의치 않는 듯한 윤 대통령의 모습은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이 9월 6일 임명을 강행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진화론을 맹신하지 말고 창조론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종교적 편향 발언을 했다. 그런가 하면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항문암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고,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장을 맡을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의 극단적 발언이었다.
이에 앞서 8월 30일 임명장을 수여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태극기 부대’와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고, 지금도 그런 소신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이나 고용노동부 장관 같은 자리는 ‘강성 우파’ 인사보다 중도 성향 인사를 중용할 때 정부 전체의 정책적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갈수록 강성 우파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민심을 잃고 이념만 얻는 인사로 귀결될 위험이 커 보인다.
최대 패착은 ‘보수-중도 연합’ 해체
윤석열 정부 집권 전반기의 최대 패착은 대선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보수-중도 연합’을 자진 해체한 일이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건만, 윤 대통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중도 성향 인사들의 충성도를 의심했는지 정권에서 배제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 진영 밖 새로운 인재를 끌어들인 것도 아니었다. 과거 정부에서 강성 우파 소리를 듣던 인물들이 윤석열 정부 전면에 포진하니,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는 초반부터 급랭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최근 인사를 봐도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진영 정치에 갇힌 과거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민심을 읽지 못한 채 계속 강성 우파 인사들만 중용하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끝까지 그렇게 가겠다는 오기마저 읽힌다.
이제까지 윤 대통령이 했던 인사 가운데 민심으로부터 환영과 박수를 받은 경우가 있었는지, 국민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할 인사가 있었는지, 국민이 그토록 갈구하는 새로움을 발견할 만한 인사가 있었는지, 이제라도 윤 대통령은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직언을 할 참모조차 주변에 없어 보이는 것은 윤 대통령 인사가 낳은 현실이다. 문제가 문제를 낳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2년 반 동안 자신이 해온 인사가 민심과 얼마나 거리가 있었는지를 끝내 자각하지 못한다면 집권 후반기에도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추락한 지지율이 아직 바닥이 아닐 수 있다. 임기 중반에 ‘실패한 정권’으로 결론 내려지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과 인적 쇄신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바꿀 각오 없이는 현재의 난국을 넘어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