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은 민주적 소양 부족에서 비롯
46차례 ‘친위 쿠데타’ 중 80% 성공
비상계엄 저지 시민, 대통령 탄핵도 요구
현행 대통령제, 완전한 삼권분립 아냐
대결적 권위주의 정치 문화, ‘실패’한 대통령 양산
맹목적 ‘팬덤 정치’와 유튜브 알고리즘이 문제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채널A 화면 캡처]
그런데 난데없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 형식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생중계되면서 비상계엄을 실감케 했다.
의원 190명 비상계엄 해제 결의
최정예 특수부대 계엄군 수백 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헬기와 장갑차 등을 동원해 국회·선관위 등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진입을 막는 시민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시민들은 출동하는 군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다. 경찰은 국회를 전면 봉쇄했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차단했다. 국회에 진입한 일부 군인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하려 했지만 시민과 보좌진, 국회 직원 등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소화기를 동원해 진입을 막았다. 그사이 국회의원들은 출입이 봉쇄된 국회의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속속 모였다.
12월 4일 오전 1시 1분 국회는 190명 의원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출동했던 계엄군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소식이 전해진 후 철수했다. 그러나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3시간 가까이 해제 결정을 하지 않았다. 오전 4시 30분이 돼서야 국무회의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6시간 만에 계엄 상황은 종료됐다.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국민 누구도 비상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 왜 군의 총구를 국민에게 겨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동 이유에 대한 의문도 많지만 시민은 언제 다시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반란 주동자인 윤석열은 쿠데타 실패 이후에도 열흘 넘게 ‘직과 권한’을 유지해 국민적 불안과 분노가 커졌다. 대규모 시민들은 매일같이 여의도에 모여 윤석열의 탄핵을 촉구했다.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는 표결에 불참했던 국민의힘 의원 일부를 탄핵 소추 찬성으로 선회하게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비상계엄을 통한 ‘군사 반란’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과 1979년 12·12 쿠데타를 경험한 바 있다. 이번이 세 번째 군사 반란이다. 하지만 과거 두 차례 쿠데타와는 상황과 의미가 매우 다르다. 우선 한국은 더는 후진국도 아니고 권위주의 국가도 아니다. 이른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며 정치적으로도 ‘공고화된 민주주의(consolidated democracy)’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학에서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이상이면 쿠데타 불가’ 이론이 있다.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설령 발생한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군사 반란
실제 대한민국은 쿠데타가 가능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 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 주도하에 군사 반란이 발생했다. 과거와 이번 군사 반란이 다른 점은 ‘친위 쿠데타’라는 점이다. 과거 두 차례 군사 반란은 권력을 잡기 위한 목적에서 군 장성이던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해 주도됐다. 하지만 12·3 계엄 사태는 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현직 대통령에 의해 주도됐다. 즉 군사 반란 주체가 다르다. 왜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 쿠데타를 할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됐고,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여서 군사 반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윤 대통령과 군부는 왜 쿠데타를 시도했을까.
윤 대통령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이유는 ‘여소야대 국면에서의 국정 운영의 어려움’ 등이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부인 김건희 특검법 처리 임박’과 ‘정적인 이재명 대표 사법처리 실패’ 등이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대통령이 윤 대통령이 경험한 정치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여소야대, 대통령 자녀 특검, 그리고 강력한 야당 지도자의 견제 등은 거의 모든 대통령이 겪었던 어려움이다. 어떻게 보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그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의 쿠데타는 반란 주체와 목적이 뚜렷했다. 소수 군부 세력이 영속적인 군부독재를 목적으로 국민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존 정부를 전복했다. 그 과정에서 군부는 무력으로 시민들의 생명, 자유 그리고 권리를 박탈했고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질서를 형성했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군부 중심의 영구 집권을 추구했고,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신군부의 권력 승계로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했다. 이들은 반란의 목적과 주체가 뚜렷했고, 반란 세력이 상당 기간 미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반란으로 인한 위험 감수 의지를 다져왔다. 따라서 실행력도 매우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은 무슨 세력으로, 무엇을 위해, 어떤 미래를 생각하며, ‘친위 쿠데타’를 감행한 것일까.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 개인 실패’ 성격이 강하다. 윤 대통령은 본인이 통제하는 검찰만으로는 그가 원하는 방향의 통치가 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군의 무력으로 헌정 질서를 무력화하고 ‘검찰·군부’ 중심의 자신만의 체제 구축을 위해 쿠데타를 했다고 판단된다. 이런 친위 쿠데타는 주체가 기존 공권력을 독점한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매우 높다. 쿠데타 연구가들에 따르면 1946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46차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의한 ‘친위 쿠데타’가 있었고, 그 가운데 5분의 4에 해당하는 약 80%의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고 한다. 즉 윤 대통령은 쿠데타 성공 조건이 열악한 한국이라 할지라도 높은 성공률을 보인 ‘친위 쿠데타’는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권력기관 통한 일방 통치가 비상계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직후 계엄군이 국회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이 집권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제1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총선 직후 단 한 차례뿐이다.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회 다수당 대표를 배척해 온 것이다. 당연히 만나서 국정을 논의해야 할 야당 대표를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이기 때문에 못 만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는 변명일 뿐이다. 그냥 대화가 싫은 것이다. 대화를 통한 ‘양보와 획득’이라는 정치의 본질 자체가 싫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통치’만을 원했던 것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정치력 발휘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 12·12 쿠데타를 주도했던 전두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우호적 인식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확인됐다. 광주 학살 주모자인 전두환에 대해 “정치 잘하시는 분”이란 윤 대통령의 인식은 ‘쿠데타의 싹’이 이미 내재함을 의미한다. 함께 군사 반란을 실행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친위 쿠데타’ 원조 격인 히틀러의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소수의 쿠데타 지향주의자들이 권력 강화와 장기 집권을 위해 군사 반란을 시도한 것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계산에서 놓친 것이 있다. 대한민국 시민이다. 12·3 비상계엄은 시민들에 의해 저지됐고 탄핵 소추도 시민들의 힘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위기 때마다 ‘국민주권주의’를 확실히 보여줬다. 연일 타오르는 시민들의 촛불 행렬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불가역적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국회 진입 과정에서 계엄군 총구를 손으로 잡아 뿌리치는 한 여성의 모습과 출동하는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몇몇 시민의 모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큰 의문이 하나 제기된다. 왜 군사 반란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더 크게 보면 군사 반란뿐만이 아니다. 8년 전 국정농단으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이 있다. 그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헌정 질서가 유지되지 않고 국민이 혼란에 빠진 경험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는 일도 자주 목격됐다. 민주화 이후인 1987년 이후에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왔고 윤석열 대통령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반복되는 대통령의 실패를 중단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대통령 실패의 피해가 오롯이 시민 몫이 되는 데 있다. 왜 한국 시민들은 8년 만에 행복하게 즐겨야 할 연말에 다시 차디찬 거리로 나와야 하나. 12·3 비상계엄의 원인을 대통령 윤석열의 개인적 요인에서 찾는다면 다른 대통령의 탄핵과 감옥행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개별 대통령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서는 구조적 요인이 한국 대통령의 잇따른 실패를 촉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는 반복적인 대통령의 실패를 헌법에 규정된 권력구조에서 찾기도 한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가 권력의 집중을 가져오고 따라서 권력의 남용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패한 대통령, 권위주의적 인식 체계 공유
실제로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되는 정확한 삼권분립 체제로 보기 어렵다. 권력의 속성은 조금이라도 더 센 곳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띤다. 특히 권력의 핵심은 ‘공권력’ 행사와 ‘인사권’으로 집약되는데 한국 대통령제는 이 두 가지 권한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제의 경우 ‘인사권’은 의회 상원(Senate)이 공유하고 있으며 ‘공권력’도 개별 주(state)들도 행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한 사람의 독점적 권한 행사는 불가능하다. 아울러 윤석열 정권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한 검찰도 미국에서는 지방검찰총장 등이 선출직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통제력이 제한적이다. 윤석열 정권이 야당과 문재인 정부 인사 공격에 활용한 감사원도 미국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직할이 아니라 의회 산하에 배치돼 있어 오히려 삼권분립을 강화하는 의회의 주요 기제로 활용된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 대통령은 더 많은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한국 대통령의 ‘실패’를 ‘제도적 문제’ 또는 ‘구조적 문제’로 규정한다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반대로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완결성이 매우 높다는 미국 대통령제에서 나타난 2021년 1·6 미 의회 난입 ‘친위 쿠데타’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패’한 대통령들 사이에서도 편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을 명확히 관통하는 하나의 요인도 존재한다. 실패한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인식 체계를 공유하고 있다. 야당과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힘으로 야당을 압도하거나 심지어 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인식과 태도를 보였다.
민주화 이후 가장 극명하게 야당의 존재를 부정한 사례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사법처리를 통해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야당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결국 ‘친위 쿠데타’로 귀결됐다. 이 같은 인식과 행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국정원을 통해 야당 정치인을 불법 사찰했으며,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비상계엄 문건을 작성하는 등 힘으로 억압하려는 행태를 보인 점이 유사하다.
실패한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권력기관의 힘을 앞세워 일방적, 더 나아가 불법적 정치 행태까지 보이게 되는 근원적 원인은 무엇인가. 실패한 대통령을 양산하는 근본 원인은 단언컨대, 한국의 대결적 권위주의 정치 문화다. 마치 전쟁과 같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힘의 논리가 한국 정치 문화에 깊게 내재한다. 특히 승자는 지배하고 패자는 복종을 강요받는 권위주의와 결합하면서 대화와 타협은 설자리를 잃었다. 더욱이 독재와 군부 쿠데타가 상당 기간 한국 정치를 압도하면서 ‘힘을 앞세운 정치 문화’가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 권위주의 정치 문화 속에서 승자인 대통령은 견제로 인한 압박감에 인내심을 잃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쉬운 길’을 반복적으로 택해 왔다. 결국 대결적 정치 문화는 더 강한 권력 추구 필요성을 크게 했고, 대통령들의 권력 남용으로 이어졌다.
맹목적 ‘팬덤 정치’와 유튜브 알고리즘 확산
대결적 권위주의 정치 문화의 부정적 효과는 각각의 정권과 대통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그러나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들이 이 정치 문화에 더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주의가 권위주의 속성의 일부를 공유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평생을 재벌 총수로 살아왔다. 재벌 총수로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직원은 복종하는 권위주의적 기업문화가 정치 영역에서도 이어져 일방적 정치로 인한 갈등 그리고 결국에는 선거 결과 불인정과 1·6 ‘친위 쿠데타’로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적 검찰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쌓았던 윤 대통령도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에 쉽게 부응하며, 검찰·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야당을 억압하는 행태를 이어갔다.
상대 진영과 상대 당을 부정하는 대결적 정치 문화는 최근 확산되는 두 가지 현상에 의해 더 악화되고 있다. 첫째, 맹목적 ‘팬덤 정치’의 확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약 30%의 국민은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자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는 ‘진지’ 구실을 한다. 나를 대신해 싸워줄 세력이 있다는 것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이들을 앞세워 힘으로 대결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맹목적 팬덤 세력’은 시간이 갈수록 극단화하는 속성이 있다. 극단화된 팬덤 세력에 올라탄 정치지도자들은 당연히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의 대결적 정치 문화를 악화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 등장한 ‘태극기부대’는 아직도 잔존하며 정치적 갈등 장면마다 나타나고 있다. 12일 “비상계엄은 합법적이며, 계엄 선포 이유가 야당에 있다”는 윤 대통령의 담화는 본인이 끝까지 싸울 테니 지지자들도 싸워달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12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가 2021년 1월 6일 스미스소니언 광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의사당 진입을 촉구했던 연설과 오버랩된다.
둘째, 유튜브 알고리즘의 확산이 대결적 정치 문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12·3 비상계엄 때 군은 국회와 더불어 선관위 점령을 시도했다.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선관위가 해킹에 무방비 상태에 있고 따라서 지난 총선 결과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군을 진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일부 극우 유투버들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이른바 ‘부정선거론’이다. 한국에서 가장 엄정하게 치러지는 것을 고르라면 선거와 대학입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일부 유튜버의 ‘부정선거론’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선관위에 진입시켰다고 주장한다. 유튜브는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해 급기야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믿게 한다. 결과적으로 상대 진영을 불신하게 하고, 진영 간 갈등과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제왕적 한국 대통령제는 오랜 시간 동안 대결적 정치 문화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견제가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고, 이런 ‘권력 집중 구조’는 대결을 부추겨 왔다. 승자가 독식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all or nothing game)’ 성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쟁의 양상은 치열해지고 대결적 정치 문화를 심화시킨다. 이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권한을 남용할 수 없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대통령의 선의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제도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다시는 12·3 비상계엄 사태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든, 제도의 문제든, 정치 문화의 문제든, 이제는 끝을 보아야 한다. 만약 이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일까 상상해 본다. 끔찍하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시민의 힘과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신동아 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