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입법·사법·행정부까지 3부 완전 장악
미국 대외정책 우선 순위는 중국, 중국, 중국
트럼프 2.0 행정부, ‘불행 가장한 축복’일지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한반도에 전개되는 B-1B 폭격기, 핵추진 항공모함,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위부터 시계방향) 등에 대해 ‘택시요금’처럼 정확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Gettyimage, 미 해군]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연방헌법에 명기된 3권분립 원칙이 형해화(形骸化)하고, 그 결과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헌정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미 트럼프 2.0 행정부가 정식 출범하기도 전부터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핵심 직책에 지명된 인사들은 성폭행 혐의와 여성 인권에 대한 ‘퇴행적’ 발언으로 문제가 된 피터 헤그세스(국방장관), ‘백신 음모론자’로 악명 높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보건장관), 트럼프의 첫 탄핵 재판에서 트럼프 변호를 맡고 2020년 선거 사기에 대한 허위 주장을 지지한 패멀라 본디(법무장관), ‘푸틴의 꼭두각시’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털시 개버드(국가정보국장), 중국·러시아 커넥션으로 ‘이해충돌’의 우려가 높은 일론 머스크(정부효율장관) 등이다. 이는 정실주의로 인한 폐단이 본격화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들의 발탁 기준은 ‘트럼프 개인에 대한 충성심’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신의 사돈 3명을 프랑스 대사, 미국 대사에 이어 아랍·중동 담당 고문에 임명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 미국 역사에서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노골적인 족벌주의다. 한마디로 트럼프 2기 핵심 키워드는 ‘정실주의·족벌주의·충성주의’로 요약된다. 트럼프 1기에서 ‘어른의 축’으로 불리며 사사건건 트럼프의 충동적 결정(주한미군 철수 등)을 좌절시킨 예비역 장군들은 이번에 단 1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가 시작될 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뉴시스]
5개 적대국 =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북한
1973년 설립된 미국의 보수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당시부터 ‘리더십의 사명(Mandate for Leadership· MfL)’이란 제목으로 차기 대통령 집권 프로젝트를 작성하고 있다. 보고서 권고 사항의 60~70%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헤리티지 재단은 트럼프가 202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 연방정부를 재편성하고 행정기관 권한을 통합하기 위한 보수주의적, 우익적 정책 제안 모음집인 ‘프로젝트 2025’를 작성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난 ‘프로젝트 2025’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일부는 동의하지 않으며 어떤 것들은 완전히 터무니없고 끔찍하다”고 선을 그었다. 무려 920쪽 이상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문건은 경제·외교·안보·무역·이민·낙태 등에서 급진 보수적 정책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프로젝트 2025’를 ‘극우 로드맵’으로 낙인찍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실무팀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와 무관하다”며 발뺌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프로젝트 2025’가 진짜 트럼프”라고 경고했다. 그 가운데 가장 극단적 성향을 보인 제1부 ‘행정부 고삐 채우기’에는 일례로 임기가 보장된 연방정부 공무원을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정치적 임명직으로 바꿀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문(미국에 대한 약속)’이다. 서문에 “오늘날 미국과 보수주의 운동이 1970년대 후반과 유사한 분열·위험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오늘날 미국은 인플레이션, 약물(펜타닐 등) 과다 복용, 학교까지 침입한 포르노, 미국의 이익·가치를 위협하는 중국의 독재정권, 워키즘(wokeism)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특히 ‘프로젝트 2025’는 중국공산당(CCP)에 대한 노골적 적개심을 드러냈다. 지난 30년간 세계화를 추진한 결과, CCP의 배만 불리고 미국 산업기반은 초토화됐으며 중국과 한 자유무역은 재앙을 가져왔다든 것. 그동안 정치인들은 중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미국의 경제성장과 미국적 가치 확산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미국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아웃소싱되고, 제조업이 붕괴하는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문제시하고 있다.
‘프로젝트 2025’의 국무부 관련 사항에서 지목된 5개 적대국은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북한 등이다. 그 가운데 초점은 ‘닥중(닥치고 중국)’이다. 문건에 의하면 CCP의 장기 계획은 심각하고 위험하다. 따라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용 부과 전략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중국을 적대국으로 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대(對)중국 X조항(Article X for China)’을 제정해야 한다. 워싱턴 조야의 일부 유화론자들은 중국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꺼리며, 때로는 중국의 악의적 행동에 대한 비판을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중국과의 ‘경쟁·협력 병행’ 정책은 실패했다. 문제는 중국 국민이 아니라 공산주의 독재정권이다. 중국의 도전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중국의 전략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호전적 행동은 오직 외부 압력을 통해서만 억제될 수 있다.
미국 우선, 중상주의적 거래, 힘에 의한 평화
여기서 핵심은 ‘대(對)중국 X조항’이다. 이는 냉전 초기, 미국의 대소련 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익명의 논문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특정 국가·체제에 대한 장기적·전략적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정책 문서를 의미한다. 일례로 1947년 조지 케넌은 ‘포린어페어즈(FA)’에 ‘Mr. X’라는 필명으로 ‘소련 행동의 원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그 후에 ‘X조항’은 냉전 시기에 미국 외교정책의 철학적 토대로 자리 잡았다. 이는 헌법 수정이나 법률 제정보다 대통령 행정명령, 국가안보전략(NDS), 의회 결의안 등으로 구체화할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 2.0 행정부의 대중국 봉쇄정책은 ‘X조항’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 중상주의적 거래주의, 힘을 통한 평화 등으로 전망된다. 첫째, 미국 우선주의다. 이는 글로벌 또는 다자적 고려 사항보다 미국의 주권, 안보, 경제적 이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복합적·다면적 독트린이다. 즉 미국 외교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한다.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처음 주창한 이 개념은 미국의 민족주의·불개입주의·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포퓰리즘 이론으로 변모했다. 이는 세계를 국가들이 상생하는 ‘글로벌 공동체’가 아니라 주권국들이 경쟁하는 ‘대결의 장’으로 상정한다. 여기서는 전통적 동맹이나 다자적 협정보다는 협소하게 정의된 국익을 우선시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국가 번영을 위한 경제적 상호 의존을 강조한다. 반면, 미국 우선주의는 비대칭적 의존도의 ‘무기화’ 가능성을 지적하며, 거래적·자립적 접근 방식으로 전략적 재조정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는 장기적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이나 초국경적 문제 해결보다는 단기적 국가 이익에 초점을 맞춰,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근본적 방향 전환을 반영한다.
둘째, 중상주의적 거래주의다. 기본적으로 이해득실을 철저히 따져 손해가 되는 거래를 거부한다. 또한 가치·인권·동맹 같은 추상적 관념은 배제된다. 트럼프는 대외관계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다른 나라들이 일방적 이익을 취하는 불균형 구조를 시정하려 한다. 일례로 그가 말하는 경제·통상 분야의 불균형 구조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가리킨다.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불균형은 동맹국들의 미온적 안보 기여에서 비롯된다. GDP 2%에 미달하는 국방비, 불만족 수준의 방위비분담금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중국 같은 적대국에는 물론이고, 한국·일본 및 NATO 회원국 같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들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다. 트럼프는 다자간 협정이나 국제조약보다는 양자적·직접적 방식의 1대 1 협상을 강력히 선호한다. 이런 방식이 우월한 경제력·군사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거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 ‘힘을 통한 평화’이다. 이는 로마 시대 하드리아누스 황제(76~138)가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추진한 국방 전략에서 유래했다. 훗날 레이건 행정부에 계승된 이 전략은 우세한 경제력으로 뒷받침된 압도적 군사력을 국가적 안보와 국제적 안정 확보의 전제조건으로 간주한다. 트럼프 2.0에서는 2024년의 8600억 달러를 넘어 ‘국방비 1조 달러’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이러한 역대급 국방비 확대는 육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 등 모든 영역에서의 역량 제고, 방위산업 인프라 구축, 미사일 방어 강화, 핵전력 현대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접근방식이 긴장 고조, 군비 경쟁, 갈등 확산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주창론자들은 압도적 군사력만이 전쟁 억제와 평화 유지의 첩경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힘을 통한 평화’는 손자병법이 말하는 ‘부전승(不戰而屈人之兵)’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트럼프는 군사력 증강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전쟁 개입이나 기존 분쟁의 확대를 꺼린다. 이는 군사력을 대외적 군사개입 도구가 아니라, 억제력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암시한다. 여기에는 군사력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장기간 군사개입 등을 회피하면서도 유리한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실용적 계산이 반영돼 있다.
한미동맹,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
한미동맹의 상징인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동아DB]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전화 통화에서 선박의 보수·수리·정비 분야(MRO)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많은 사람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제기될 방위비분담금 증액(현재 11억 달러 수준을 최대 100억 달러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20%의 고율 관세, 확장억제 공약의 약화 같은 문제가 중대한 안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군사 분야뿐 아니라, 미국 주도 지역 질서의 유지·강화, 우주, 사이버, 차세대 첨단기술(AI, 5G, 양자역학, 퀀텀 컴퓨팅) 등에서 협력을 통해 ‘윈-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해 주기를 요청하기에 앞서, MRO 분야와 같이 우리가 미국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설득하는 거래주의적 접근방식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리스크’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줄 수 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호혜적 거래를 통해 우리의 숙원인 독자 핵무장, 혹은 전술핵 재배치,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로이 출범하는 시점에 우리가 당면할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은 미국이 제공해 온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에 근본적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중국·러시아·북한 등 3개 핵보유국이 제기하는 집단적 핵 위협, 중국의 대대적 핵무력 증강으로 인한 3체 문제(three-body problem), 동북아에서 중국·북한과 동시 핵전쟁을 벌여야 할 가능성 등으로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은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2기의 핵 정책·전략과 관련해, 이미 신임 대통령에게 추가적 핵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성 연구(study of sufficiency)’가 개시된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의 초점은 극초음속 미사일의 발전, 전술핵 확산, 사이버·인공지능 같은 신흥 기술 등이 제기하는 새로운 핵 위협 환경을 분석·평가해, 기존 핵3원 전력(nuclear triad)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2024년 11월 15일 미 의회에 제출한 ‘핵 운용 지침’에 관한 기밀 해제 보고서에서 중국의 핵전력 급증과 러시아의 차세대 핵무기 개발 등의 문제들을 반영했다. 핵심은 중·러·북을 동시에 억제하기 위해 핵 운용 지침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자체 핵무장 관련한 5대 미신
2023년 10월 12일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이 부산에 입항하고 있다. [뉴스1]
일체형 확장억제에는 핵·재래식 전력의 통합 운용, 미 전략자산 전개, 핵 기반 시나리오를 반영한 연합훈련 정례화 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런 사항들은 모두 ‘돈 문제’와 직결된다. 일례로 트럼프는 한반도에 전개되는 B-1B 폭격기,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 등에 대해 ‘택시요금’처럼 정확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제공했던 것들을 ‘공짜’로 여기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을 구하기 위해 ‘핵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의 본질적인 무정부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1945년 이후 지속돼 오던 기존의 국제 체제가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3차 세계대전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등장한 유엔의 기능부전(dysfunction)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이상 지속된 장기 평화·세계화·자유무역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약육강식·각자도생·적자생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제 체제의 본질인 무정부상태에서 주권국이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할 제1 과제가 ‘자조(自助·self-help)’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NPT 같은 국제 레짐이나 국제법, 동맹 체제 등은 모두 스스로(self-help)를 돕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지금 같은 전쟁의 시대, 혼란의 시대, 격변의 시대에는 스스로를 돕기 위한 ‘자강의 노력’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지금 중국·러시아·북한이 제기하는 집단적 핵 위협·협박·공갈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우리 스스로 핵 능력을 확보하는 길 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엘리트 계층, 사회지도 계층, 전문가 계층 사이에 ‘학습된 무기력’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표 사례가 “왜 대한민국이 절대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다섯 가지 미신’이다. △핵무장과 한미동맹은 공존 불가, △핵 개발에 나서는 순간 경제는 폭망, △글로벌 비핵화 레짐의 붕괴, △글로벌 핵 군비경쟁과 핵무장 도미노 촉발, △설마 북핵이 동족을 겨냥하겠냐 등등. 그 나름대로 논리가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유효성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동시에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한때 타당했던 논리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안보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는데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식의 ‘만고의 진리’로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각에서는 핵 개발을 한미동맹의 대척점으로 주장한다. 혹자는 “핵 개발 시도는 한미 갈등을 초래하고, 미국 핵우산을 후퇴시키고, 한미동맹의 손상을 크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말이 맞을까. 2024년 1월 영국의 텔레그래프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은 “미국이 15년 만에 영국 본토에 핵무기를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이미 2022년에 미국과학자연맹은 미 공군이 런던 동북부에 위치한 영국 공군기지에 설치할 핵무기 보관시설의 예산(약 5000만 달러)을 확보한 점을 들어, 이곳에 개량형 핵무기(전술핵) B61-12가 ‘재배치’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거 이곳에 배치됐던 전술핵(B61 110발가량)이 2007년에 전량 철거되고, 15년 만에 다시 배치되는 셈이다.
영국은 현재 260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 노후돼 실전 배치가 곤란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략으로 유럽이 안보 위기에 직면하자, 미국이 자국의 전술핵을 동맹국인 영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려는 미국의 결정은 ‘한국 핵 개발은 한미동맹의 파탄’이라는 논리가 엉터리 주장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자국의 전술핵을 동맹국에 배치함으로써 미영 ‘동맹관계의 손상’이 아니라 ‘집단적 안보 역량을 제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도 러시아 같은 잠재적 적대국으로부터의 핵 위협을 경계하지만, 위협의 체감지수 면에서는 북한의 고도화된 핵 위협에 직면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여타의 억지스러운 주장들도 근거가 희박한 괴담에 불과하다. 약육강식 시대가 닥쳐 사나운 포식동물이 우글거리는 밀림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철 지난 ‘비핵화’ 논리를 신주단지로 모시면서, 초식동물로 남으려 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2.0 행정부는 우리에게 살길을 알려주는, ‘불행을 가장한 축복(a blessing in disguise)’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