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도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1980년대 중반에 터져나왔다. 에셜론 뉴질랜드 분소라고 할 수 있는 GCSB는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이다. 1984년 6월12일 뉴질랜드 총리 로버트 멀둔은 GCSB가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과 밀접하게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뉴질랜드가 이 다섯 국가 사이의 정보 연대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뉴질랜드 정보 분석가들은 현재 요원을 교육하고, 교환하는 등 해외 정보 기관과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GCSB는 자체적으로 요원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에셜론 시스템 안에서 좀더 효과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교육이다.
이 에셜론 국제 연대망에 속한 나라들은 모두 앵글로 색슨계 백인 기독교 국가들이다. 그런만큼 이외의 국가들은 모두 도청과 감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시 대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능력이 무한정 늘어나다보니 자기 살도 파먹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에셜론을 운영하는 미국가안보국(NSA)는 그 광범위한 도청망을 자국 국민에게도 돌리기 시작했다. NSA에 협조하는 미중앙정보국(CIA), 미연방수사국(FBI), 미국방정보국(DIA)은 NSA를 위해 내국인 감시 명단을 제출했다. 이 명단들은 매우 다양해서 급진 정치 그룹부터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일반 시민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명단에는 미국내 유명 연예인인 제인 폰다와,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도 들어 있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이 감시 대상이 점점 넓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감시 명단에 들어있던 사람과 접촉한 사람이나 단체도 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NSA 활동이 무한정 팽창하자 1978년 1월24일 지미 카터 대통령은 행정부 권한으로 NSA 활동을 규제하려고 시도했다. 이 시도는 NSA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저지른 광범위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4년 뒤 레이건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레이건은 이 첩보 기관의 국내 활동 권한을 더욱 확대했다. 레이건 행정부 명령으로 NSA는 대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NSA에는 컴퓨터, 정보 분석가가 한층 늘어났다. 결국 개인 사생활이 침해받을 위험은 더욱 커진 것이다.
에셜론 커질수록 인류미래 비관적
하지만 미국 의회 입법으로 이런 사생활 침해를 방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도청과 정보 수집을 막는 방안은 아마도 대학이나 산업계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신기술로 도청이나 정보 가로채기를 막는 것이다. 안전한 통화와 교신을 보장하는 이 신기술은 훨씬 비싼 요금을 받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보 기관 활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류 미래는 비관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국가가 전제 국가가 되고 독재자가 나타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전제 국가는 모든 통신 활동을 감시하는 기술력으로 시민을 통제할 것이다. 독재 체제를 뒤집으려는 시민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정보 기술력으로 시도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고 탄압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셜론 시스템을 악용한 단적인 예가 있다. 1989년 한 전직 에셜론 요원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옵서버 뉴스페이퍼’ 소유주인 론호 주식회사를 사적으로 도청하라고 명령한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이 신문은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영국 군부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군사 거래 스캔들을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었다. 기사 내용은 대처 총리가 이 거래를 강력하게 후원했고, 대량의 뇌물이 중개인 사이에 오고갔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받은 중개인 가운데는 대처 총리 아들인 마크 대처도 있었다. 마크 대처는 이 거래 과정에 뇌물 천만 파운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예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에셜론 시스템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이 시스템에는 윤리 규정이라든지 심지어 자국 의회나 시민 자유를 존중하는 규칙도 없다.
냉전 기간에 미국은 사회주의 소련이나 중국이 자국 국민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했다고 비난했다. 에셜론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공산주의 체제에 대항하기 위함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암울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컴퓨터 기술이 진보하면서 에셜론의 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에셜론은 어떠한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는 조지 오웰이 ‘1984’라는 소설에서도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다. NSA는 에셜론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어디에 있든지 개입할 수 있다. NSA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에셜론 시스템의 문제점을 몇가지로 지적한다. 첫째는 전지구적인 크기의 도청망은 냉전 시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냉전이 끝났는데도 이 시스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예산도 감축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 거대한 스파이 시스템이 존재할 만한 공적인 정당성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경제 정보가 중요하다는 논리로도 이 시스템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에셜론 냉전시대 산물
둘째는 에셜론 시스템이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경쟁국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에셜론 동맹은 과거 소연방이나 공산 국가를 상대로 공작했다. 그러나 현재 이 시스템의 손발인 국제상업위성통신, 마이크로웨이브 네트워크, 여러 위성들은 이라크나 북한 같은 요주의 국가를 겨냥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의 목표물은 에셜론 동맹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국가나 집단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회원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경쟁선에 있는 국가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데 에셜론을 활용하고 있다. 경쟁 국가의 자원을 헐값으로 사들인다거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이를 쓰는 것이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가 대표적인 예다.
다음은 전화회사 책임 문제를 들 수 있다. 전화를 쓰는 고객들은 전화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통화한다. 전화 회사에 요금을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팩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전화 회사들은 고객들의 통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에셜론 시스템이 통화를 엿듣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하는 것이다.
첩보는 중립적인 정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첩보의 힘은 매우 강력하고 위험하다. 첩보 수집력과 군사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개념이다. 이 둘 다 특정 국가나 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국가의 희생을 애가로 한다. 상대방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쳐부수는 데는 군사력보다도 정보력이 더욱 요긴하다. 에셜론 덕분에 미국은 놀랄만한 스파이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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