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8년 2월26일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인터폴 본부 마약과에서 근무했다. 근무를 시작한 첫날 필자의 책상으로 벨기에 경찰청이 보낸 긴급전문이 도착했다. 전문에는 북한의 조선제약 총회사가 북한 보건부로부터 발부받은 추천장을 첨부해 벨기에의 한 화학회사에서 필로폰의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에페드린 20t을 구입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벨기에 경찰청은 인터폴에 북한의 주문에 응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에페드린은 통상 진통제의 제조에 쓰이나, 합성마약인 필로폰 제조에도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UN 마약통제기구에서는 에페드린의 제조와 판매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의 인구나 산업규모로 볼 때, 북한은 연간 2t의 에페드린을 수입하면 북한에서 소요되는 진통제 1년치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연간 필요량의 10배에 이르는 양을 주문했으니 벨기에 경찰청은 인터폴에 의견을 물어온 것이다.
인터폴 마약과 직원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북한의 주문량이 너무 많으므로 벨기에 경찰청에 관련회사의 수출을 중단하도록 요청키로 했다. 그러한 내용의 전문을 보내자, 벨기에 경찰청은 즉각 인터폴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벨기에 경찰청은 벨기에 보건부로 하여금 에페드린이 마약제조에 쓰일 수 있는 통제 화학품이니 북한으로의 수출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보내게 했다.
인터폴 근무 첫날 겪은 이 사건은 그후 필자가 경험하게 된 인터폴이 벌이는 국제범죄와의 전쟁 서막이었다. 인터폴과 전쟁을 벌이는 국제범죄 세력 중에는 북한도 유력한 후보로 올라와 있다.
세계화와 국제범죄
연간 한국의 국제공항과 항구를 통과하는 출입국자는 1000만명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도 세계화했다는 이야기다. 세계화는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화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경험한 후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계화를 향한 부단한 노력으로 경제위기는 극복하였지만, 반대급부로 한국은 국제범죄의 유입이라는 부작용을 떠안게 되었다. 연간 국민 10명 중 1명꼴로 해외를 출입하는 지금 한국인은 국제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동남아에서 쇼핑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했는데, 귀국 후 국내에서 청구된 것을 보면 사용내역에 산 적이 없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터무니없는 기록과 함께 엄청난 대금이 청구된 사례가 발견된다. 반대로 외국인이 위조 신용카드를 갖고 한국에 들어와 2, 3일간 최고급 물건을 다량 구입한 뒤 출국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동안 연예인들의 마약복용이 사회문제가 됐는데, 마약범죄야 말로 국제범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국제범죄와 싸우는 사령탑이 인터폴이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인터폴의 속살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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