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제난을 겪는다고 해서 이민자 가정의 청년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르나예프 형제에게 ‘이슬람교’는 일종의 안식처였다. 어릴 적부터 믿어왔던 종교지만 처지가 힘들어지고 삶이 바닥을 치면서 종교에 심취했다. 체첸인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바랐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라를 잃고 세계를 유랑하는 그들을 보듬어주는 것이 종교다. 형제는 인터넷을 매개로 알 카에다와 연결됐다. 둘은 알 카에다가 만든 사이트를 통해 극단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급진주의자가 됐다. 이윽고 지하디스트(전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다게스탄을 다녀온 후 타메를란은 더욱 급진적으로 변했다. 다게스탄에서 이슬람 조직원들을 만났을 소지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형제는 스스로 전사가 된 테러범이다.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면 오사마 빈 라덴처럼 이슬람 복장을 하고 수염을 기른 남자를 떠올린다. 그러나 형제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보통의 미국 젊은이였다. 미국이 충격을 받은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겉모습만 봐서는 아무런 의심이 가지 않는 이웃집 청년이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는 것에 미국인은 경악했다. 조하르는 FBI 조사에서 “형이 인터넷을 보고 테러를 계획했고 배후에 테러조직은 없다”고 진술했다. 범행 동기는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뇌당하는 건 순식간”
타임스퀘어를 폭파시키려다 실패한 샤자드도 파키스탄계 미국인이다. 그는 안보당국이 그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했던 인물로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실직한 후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잃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고향 파키스탄에 다녀온 후 자신이 겪은 불행은 미국 사회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2009년 9월 콜로라도 주 덴버공항에서 셔틀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나지불라가 뉴욕 지하철을 노린 자살폭탄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된 일도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2명을 포함해 버지니아 주 출신의 미국 청년 5명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파키스탄에서 체포됐다.
이렇듯 늘어나는 자생적 전사는 미국의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이들은 범죄와 관련돼 기소된 전력이 없는 평범한 시민인 경우가 많은데다 테러단체들과도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예가 많다. 그러니 정보당국, 안보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기 어렵다. FBI는 “자생적 테러, 나홀로 테러 위협이 커졌다”면서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알 카에다만큼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나시르 차우드리는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 등을 경험한 이슬람교도가 인터넷을 통해서 세뇌당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했다.
미국 안보당국은 잠재적 테러범을 적발하려고 함정수사 기법을 종종 사용한다. 2011년 9월 모형 항공기를 이용해 국방부와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려던 폭탄 테러 모의가 적발된 적이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레즈완 페르도스가 플라스틱 폭탄(C4)을 실은 원격조종 항공기를 이용해 국방부와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가 거사를 벌이기 전 체포된 것은 FBI 비밀요원의 함정수사 덕분이었다. 페르도스는 보스턴 외곽인 매사추세츠 주 프레이밍햄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위장한 FBI 비밀요원으로부터 워싱턴 테러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미리 부탁한 폭발물과 수류탄, AK-47 소총 등 무기를 넘겨받다 체포됐다. 이 같은 함정수사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를 사전에 막으려면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미국 정부의 생각이다.
지난해 10월 뉴욕 연방준비은행 건물에 폭탄 테러를 시도하려던 방글라데시 출신 청년이 FBI에 체포됐다. FBI는 450㎏의 폭탄이 실린 차량을 뉴욕 맨해튼 리버티가(街)에 주차시키고 폭탄을 터뜨리려고 한 콰지 모하메드 레즈와눌 아산 나피스(21)를 검거했다. 나피스가 갖고 있던 폭탄은 FBI가 함정수사 과정에서 제공한 가짜였다. 뉴욕 경찰에 따르면 9·11 이후 함정수사로 적발된 테러 시도가 16차례에 달한다. 함정수사는 일종의 ‘선제공격형 검거’라고 하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사관은 “테러 잠재 세력을 사전에 적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함정수사는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테러범 양산하는 함정수사

4월 15일 폭발 직전 촬영된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오른쪽 흰색 야구모자)와 테러로 목숨을 잃은 8세 마틴 리처드(왼쪽 원 안).
모하무드는 고교시절 파키스탄 알 카에다 근거지에 살고 있는 미국 오리건 주 출신 학생과 e메일을 주고받았다. FBI의 안테나에 이 e메일이 포착되면서 모하무드는 감시를 당하게 된다. 모하무드는 e메일을 통해 파키스탄 방문 의사를 밝혔고, 상대편 학생은 ‘압둘하디’라는 사람과 연락을 취해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그 학생과의 연락은 끊겼고, 파키스탄을 방문하려던 모하무드의 계획도 무산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압둘하디’로 가장한 FBI 요원이 모하무드 앞에 나타났다. 모하무드는 FBI 요원으로부터 순교 목적의 테러를 제안받는다. ‘압둘하디’는 폭탄 전문가로 가장한 또 다른 FBI 요원을 모하무드에게 소개해줬다. FBI 요원 2명은 모하무드에게 폭탄 제조 장비 구입비용과 아파트 임차료 등의 명목으로 2810달러를 건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