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일본 NGO의 한국 낙선운동 따라배우기

  • 이영이 yes202@donga.com

    입력2006-10-10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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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3총선을 뜨겁게 달궜던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오는 6월25일로 중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에 전파돼 다시 정치개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정치 무관심의 표상인 일본에서 낙선운동과 정치개혁의 새바람은 성공할 것인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가 4월2일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시기를 두고 자민당의 각 파벌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4월 하순.

    자민당 내부는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주간지인 ‘슈칸 호세키(週刊 寶石)’가 지식인 5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낙선하게 만들고 싶은 국회의원’ 50명 명단을 공개한 것. 일본 시민단체들이 한국의 낙선운동을 도입해 추진하고 있었지만 낙선대상자의 명단이 발표된 것은 처음이었다.

    자민당 발칵 뒤집은 슈칸호세키

    게다가 이 낙선대상 명단은 대학교수 변호사 평론가 언론인 등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50명이 자신의 실명(實名)을 내걸고 의견을 밝힌 것이어서 더욱 충격을 주었다.

    자민당 임원연락회는 “아무리 보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고 해도 이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용중 일부는 사실무근인데다가 낙선운동 대상자의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자민당이 발끈한 것은 이번 낙선대상 명단에 자민당 의원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

    상위 20명 중 14명이 자민당 의원이었으며 모리 요시로(森喜朗·6위) 총리(당총재)를 비롯해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2위) 간사장,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3위) 정조회장 등 거물 정치인도 포함됐다.

    게다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가 낙선대상 1위로 꼽힌 데 이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4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8위·현 대장상)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18위) 등 역대 총리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물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7위) 자유당 당수와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9위)공명당 대표,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11위)사민당 당수 등 각 당의 거물급 정치인들도 다수 포함됐다.

    ‘시민연대·물결21’이 낙선운동 첫 테이프

    낙선시켜야 할 이유도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1위의 다케시타 전총리는 1년 이상 병원에 입원해 의정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막후에서 자기 파벌을 움직여 정치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것이 낙선 이유로 거론됐다. 현총리인 모리에 대해서는 ‘지력 담력 어느 면에서 보나 총리감과는 거리가 먼 존재’ ‘말도 안 되는 내각의 책임자’라는 신랄한 평가가 내려졌다.

    낙선대상 명단을 발표한 것은 슈칸호세키가 처음이지만 실제로 일본의 낙선운동에 불을 지핀 사람은 시민운동가 사쿠라이 젠사쿠(櫻井善作·65)씨였다.

    도쿄(東京) 고가네이(小金井)시에서 자비(自費)를 들여 15년째 ‘노비(野火)’라는 월간신문을 만들고 있는 그는 ‘시민연대·물결21’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 지난 4월 초부터 낙선운동을 시작했다.

    시민연대·물결21은 지난 4월10일 낙선운동 전개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17일부터 도쿄 유락초(有樂町), 도쿄 역, 우에노(上野) 역 등에서 가두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전국 유권자들에게 낙선대상 후보자들의 이름과 이유를 전화나 이메일 엽서 등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낙선시켜야 할 후보를 뽑는 이른바 ‘낙선투표’인데 4월30일 현재 유권자들의 참여는 1500건에 이른다.

    이 단체의 낙선운동 대상 선정기준은 우선 크게 ‘기본적인 결격자’와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자’의 두 부문. 기본적인 결격자는 ▲오직(汚職) 탈세 등의 전력이 있거나 ▲선거법 위반 전과가 있고 ▲의회 출석률이나 국회질문횟수, 입법제안활동이 부진한 의회활동태만자 등이다.

    또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자는 ▲평화나 인권 환경 복지 등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하거나 ▲전쟁책임이나 전후보상 강제연행 종군위안부 등의 문제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 교육을 파괴하려고 한 자 등을 포함한다.

    이 단체에 들어온 낙선투표 내용도 주로 정치원로들에 대한 비판이 많다. 예를 들면 한 시민은 나카소네 전총리에 대해 ‘실제로는 국회 활동이 거의 없는데 자민당 비례구 종신 1순위는 이상하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시민은 미야자와 대장상에 대해 ‘거품경제의 책임자’로 지목했다.

    이 단체는 변호사 등을 포함한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낙선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은 문제후보들에 대한 검증작업을 거친 뒤 부적격 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시민연대·물결21의 낙선운동을 계기로 비슷한 유형의 낙선운동이 일본 곳곳에서 시작됐다.

    시민들의 낙선운동 확산

    4월24일 저명인사 11명으로 결성된 ‘정치가 평정회의’는 ‘지연 혈연 등 개인적인 인연이나 호감만으로 투표하지 말고 정책비전을 엄격히 따진 뒤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선출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임에는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요시미(石川好), 평론가 사타카 마코토(佐高信), 저널리스트 다카노 다케시(高野孟), 작가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를 비롯해서 변호사 작곡가 등 일본 사회를 이끄는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이번 중의원선거 입후보 예정자를 대상으로 헌법개정이나 환경보호정책 등 6개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유권자들이 이 자료를 토대로 부적격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

    특정정당에 몸을 담지 않고 있는 ‘무당파(無黨派)’ 지방의회 의원들도 낙선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즈오카(靜岡)현 무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은 최근 ‘무지개와 녹색의 500인 리스트’를 조직하고 시즈오카현 입후보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낙선운동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또 도쿄도 기타(北)구 의회의 후루자와 구미코 (古澤くみ子)의원도 ‘자민-공명-보수당 반대 수도권 네트워크’를 만들어 도내 23구에서 낙선시키고 싶은 후보에 ‘×표’를 하는 운동을 시작했으며 오사카 등 간사이지역에서는 ‘파수꾼’ 등 시민단체 10여개가 최근 ‘결함의원을 낙선시키는 시민연대’를 결성해 공동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낙선운동에 자극받아 전국 선거구에서 시민단체 주최의 공개토론회도 속속 열릴 계획이다. 4월23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 따르면 전국 300개 소선거구 중 226개 선거구가 시민단체 주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은 1983년 이후 합동연설회를 폐지했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야유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을 한 자리에서 비교평가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 시민단체의 공개토론회다.

    일본의 언론들은 한국의 4·13총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줄곧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집중 보도해왔다. 선거가 끝난 후 선거결과 분석 보도에서도 단연 총선시민연대가 초점이었다.

    일본에는 한국과 같은 지역주의는 없지만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늘어나고 있어 한-일 양국의 정치상황은 유사한 점이 많다.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한 선거제도 역시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국민들이 스스로 낙선운동에 발벗고 나섰다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 지금껏 일본에 비해 ‘뒤떨어진 나라’로만 생각하던 한국이 정치개혁을 위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했다는 것을 알고 ‘괸 물’과 같던 일본정치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선거직후인 4월15일자에서 “정치쇄신을 요구하는 여론을 대변한 운동으로 일약 유명해진 것이 시민단체 연합체인 총선시민연대”라면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떨어졌으며 서울·수도권에서만 20명중 19명이 낙선한 사실을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같은 날 사설에서 “한국정치를 밑바닥부터 뒤흔든 것은 시민의 적극적인 선거참가와 후보자 개인정보 공개”였다고 평가했다. 또 “군사독재정치를 끝낸 민주화선언으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한국정치는 또다시 새롭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왕성한 활력이 놀랍고 부럽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한발 더 나아가 4월19일자에서 ‘한국의 NGO 파워’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문민정부 출범 이후 사회 각분야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시민운동을 소개하고 일본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이 낙선운동을 초기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한국의 낙선운동을 배우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일본에서 낙선운동의 불을 지핀 ‘시민연대·물결21’의 사쿠라이 대표는 3월8일부터 3박4일간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총선시민연대를 찾아가 500개 단체가 결집하게 된 배경과 낙선운동의 구체적인 방법 등을 듣는 한편 대학교수 출판인 금융관련인사 등을 두루 만나면서 낙선운동의 열기를 취재했으며 한국 방문기간에 배우고 느낀 것을 3월20일자 ‘노비’에 ‘2000년 총선거시민연대로부터 배우자-평화와 민주사회를 지향하며’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소개했다.

    직접 한국 방문해 배우기도

    그는 “처음 한국의 낙선운동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이것이다’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한다. 낙선운동은 일본인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너무나 새로운 발상이었다는 것. 그리곤 곧바로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배워 이번 중의원 선거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기로 한 것.

    “한국에 가보니 너무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민주화를 향한 타오르는 정열을 누구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죠. 어서 그 에너지를 받아와 일본에도 전하자는 생각에 발길이 바빠졌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낙선운동은 그에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는 30년 전 보험회사 사원이던 시절 당시 차기총리후보였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에 반대하는 비판집회를 혼자서연 경력이 있다.

    “돈의 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시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금권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을 총리로 뽑아서는 안된다”며 시민들에게 호소하다가 다나카 지지자들로부터 돌팔매질까지 받았다. 1984년에는 아예 다나카 전총리의 지역구인 니가타(新潟) 3구로 주소를 옮기고 각 선거집회를 찾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였다.

    다나카 전총리는 후에 록히드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부패정치인의 대명사’로 떠올랐지만 사쿠라이 대표가 낙선운동을 벌이던 1984년에는 오히려 더 많은 표를 얻으며 당선됐다.

    그런 전력과 열정 때문인지 사쿠라이 대표는 총선시민연대를 방문했을 때 “획기적인 시민운동”이라며 10만원을 성금으로 내놓고 성공을 기원했었다.

    그 외에도 일본 지방의회 의원과 환경단체 회원 등 10여명이 총선연대를 방문해 연대와 지지를 표명했으며 한국 총선연대 회원 4명이 도쿄(東京)에서 열린 낙선운동 토론회에 초청인사로 참가하기도 했다.

    일본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낙선운동은 일본 국민의 정치의식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

    사쿠라이 대표는 “일본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윗사람(정치리더)들의 말만 따라왔다. 정치에 대해 비판의식이 전혀 없고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너무나 무책임한 사회였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은 유권자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정치에 자기 목소리를 반영하기보다는 정치는 훌륭하고 강한 리더에게 맡기자는 ‘엘리트 민주주의’가 강하게 지배해왔다. 이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인정하지 않는 ‘무라(村)의식(일종의 단체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모두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돌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고방식이 권리의식을 희박하게 했다는 것.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국민들은 물론 일본 국민들까지 고생하게 만든 것은 일본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지 못한 채 일부 정치리더에게 국가의 운명을 내맡겼기 때문이라는 점을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다. 게다가 최근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의 무력감이 더욱 심화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경계론도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일본 유권자, 이대로는 안된다

    이와 함께 배금주의도 일본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나카정권 이후 일본에는 배금주의가 만연하기 시작, 먹고 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정치는 아무래도 좋다는 무관심이 조장되기 시작했다는 것. 또 거품경제 붕괴 이후에는 경제적 무력감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상승작용을 했다. ‘정치란 누가 해도 똑같은 것’이라는 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학자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52·마스조에정치경제연구소장)가 지난해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의 경험담이다. 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과 함께 옥외 선거연설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한 여성이 “무슨 일인데 마스조에씨와 이시하라씨가 나와서 연설을 하느냐”고 묻더라는 것. 지지자들이 도지사 선거유세라며 한표를 부탁했더니 오히려 그 여성은 전혀 몰랐다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마스조에소장은 “한국인은 누구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모였다 하면 정치 얘기를 하는 ‘정치동물’인 반면 일본인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대신 돈만 생각하는 ‘경제동물’이라는 점이 양국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정치적 무기력과 불신은 아사히신문이 1998년말 미국 일본 영국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선거 때 당신의 한 표가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과 영국 유권자들은 각각 63%와 56%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나 일본은 불과 40%의 유권자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 ‘자기 고장에서 뽑힌 국회의원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이나 영국은 20%와 29%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반면 일본은 43%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극도의 정치불신을 드러냈다. ‘부정을 행하는 정치가가 많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미국 유권자의 30%, 영국 유권자의 32%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일본은 7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와 같은 무관심과 불신으로 인해 투표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1996년 10월에 치른 중의원선거에서 투표율은 사상 최저인 59.56%를 기록했다. 최근 중의원선거 투표율은 ▲80년 6월 74.57% ▲83년 12월 67.94% ▲86년 7월 71.40% ▲90년 2월 73.31% ▲93년 7월 67.26% 등으로 전반적으로는 조금씩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50%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번 중의원선거가 처음이다.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투표율이 급격히 떨어져 앞으로도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불신 현상에 대해 사쿠라이 대표는 비관하지 않는다.

    “낙선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치를 포기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의 전화를 받아보고 정치에 대한 분노나 개혁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지금까지는 그 분노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뿐이지요. 이런 운동을 반복하다보면 유권자들의 주권의식이 강해져 정치를 엄격하게 감시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낙선운동을 시작하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히 정계 인사들이다. 특히 낙선운동의 타깃이 자민당 출신 거물 정치인에 집중되자 자민당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중이다.

    자민당 선거책임자 중 한 사람인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총무국장은 “올바른 정보에 의해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한국의 낙선운동이나 일부 주간지 보도를 보면 주관적인 판단이나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도 있다. 정치가를 조롱하며 우습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된다”고 반박한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도 “선거법상 선거공시 이전의 낙선운동을 제한할 규정은 없지만 당사자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정조회장은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민단체가 국회의원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뽑아 낙선운동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표율이 올라가면 민주당에도 나쁘지 않다”는 것. 간 회장 자신은 과거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특정정책을 평가해 지지여부를 표명하는 시민운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낙선운동이 고대 그리스에서 실시했던 도편추방제도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도편추방제도는 부정부패 등을 저질러 정치에 적합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도기(陶器)에 적어 투표해 정계에서 추방하던 제도.

    간 회장은 “도편추방제도 때문에 그리이스에는 청렴하지만 리더십은 없는 정치가만 남게 됐다. 낙선대상 평가기준에 부정부패 등 정치스캔들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도의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낙선운동 시민단체에 걸려오는 항의전화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입후보 예상자 쪽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낙선운동 자체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내용. “배후에 경쟁상대 후보의 지원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서부터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발목을 잡는 이유가 뭐냐” “우리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서로 비난하는 낙선운동은 일본 전통적인 문화가 아니다. 예로부터 서로를 인정하면서 화(和)를 존중해온 우리의 전통을 지키자”는 등의 협박성·설득성 전화가 많다.

    또 일부에서는 정치 후진국인 한국을 배우려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다. 왜 자존심도 없이 후진국인 한국 흉내를 내려 하느냐”는 것.

    이에 대해 시즈오카의 ‘무지개와 녹색의 500인 리스트’ 마쓰타니 기요시(松谷淸·49·시즈오카 시의원) 대표는 “낙선운동이라는 네거티브 형태가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불신이 극에 달해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 자치성 측은 “선거법상 낙선운동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조문은 없다. 개별 운동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견. 판례 등에 따르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운동은 선거공시 전에는 불가능하지만 특정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낙선운동은 공시 전에도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선거공시 후에 전단 등의 배포나 포스터의 게시, 선전을 위한 확성기 사용 등은 금지돼 있다. 또 허위사실이나 사실을 왜곡해 공표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 등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일본 낙선운동은 아직 준비단계

    그렇다면 6월25일로 예정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운동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우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됐던 낙선대상 선정기준을 얼마나 공정하게 마련할 것이냐에 따라 이번 낙선운동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모호한 기준이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낙선대상후보를 선정할 경우 오히려 낙선운동 자체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치학자인 마스조에소장은 “유권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근 시작된 낙선운동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이 불씨를 지피고 있지만 아직은 한국과 같은 뜨거운 열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시민운동 자체가 한국처럼 대규모로 이뤄지기보다는 주변의 뜻맞는 몇몇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움직임에 불과하기 때문.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한 ‘시민연대-물결21’만 하더라도 사무국 요원이 사쿠라이 대표의 가족 등을 포함해 10명에 불과해 가두 집회 때에도 4∼5명이 나가 확성기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낙선운동 참여를 호소하는 정도다. 사정은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여서 지역 홍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낙선운동은 국제경쟁력 가진 상품?

    낙선운동 시민단체끼리의 연대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람이 부족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연대활동이 필수적이지만 지금은 서로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도다. ‘시민연대-물결21’도 오사카 센다이 가와사키 등의 낙선운동단체 등으로부터 연대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연대방안은 협의하지 않은 상태.

    지금까지 정치운동을 해온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의 이름을 내걸고 공명선거운동을 벌여온 단체들이 실제로는 배후에 공산당이나 창가학회 등 특정정당이나 종교집단의 지원을 받아온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총선 일정이 앞당겨져 준비기간이 짧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는 3월까지만 해도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10월이 돼야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에는 오부치총리가 7월에 열리는 오키나와 서미트(선진8개국 정상회담)의 의장역할을 뒤 선거를 통해 물러날 것으로 예측됐던 것.

    그러나 느닷없이 오부치총리가 쓰러지면서 정치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졌다. 집권당인 자민당이 오부치총리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점을 부각해 동정표를 얻겠다는 의도로 6월12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25일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낙선운동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10월 중의원선거를 대비해 느긋하게 준비하던 시민단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6월로 당겨지자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셈이다.

    지금까지 정치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던 한국. 그러나 지난 총선 때 보여준 낙선운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게 없는, 국제경쟁력을 지닌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찬반 논란도 많지만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준 성공작으로 세계는 평가하고 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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