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트 지형으로 둘러싸여 그림 같은 경치를 자랑하는 왕위엥.<br>강 위에 놓인 다리는 외국인에게만 통행료를 받는다.
왕위엥에서의 시간은 단순했다. 바쁜 도시생활에 복수라도 하는 기분으로 온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마음껏 여유를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왕위엥이 머금고 있는 여유의 가장 큰 근원은 바로 사람들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점차 순박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자연을 닮아 순수한 왕위엥 마을 사람들. 이방인 앞에서 여전히 수줍고 어색해하는 그들의 눈빛은 경쟁에 내몰려 험악해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마을 한켠에는 상설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생활용품과 잡화, 가전제품을 파는 시장은 마을 규모에 비하면 제법 큰 편이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상인들은 “사바이디(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넨다. 한참 동안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다.
상설시장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가면 노천시장이다. 구경하는 재미로만 따지면 상설시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는 장바닥 풍경 그대로다. 직접 재배한 과일과 야채는 물론이고 날다람쥐, 박쥐, 새, 생선을 튀겨 파는 주민도 만날 수 있다.
좁은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물건을 파는 모습은 우리의 옛 장날 풍경과 다를 바 없이 정겹기만 하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볼 수 있던 추억 어린 장면을 이제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남는다.
왕위엥 주변에는 동굴이 많다. 현지인들은 동굴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 중 가장 유명한 탐창 동굴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다. 강 위에는 대나무를 잇대어 만든 가교가 놓여 있는데 외국인에게만 통행료를 받는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인 듯했다. 그러나 힘들게 찾아간 탐창 동굴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동굴 내부는 넓지만 부자연스런 인공조명이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 탐창 동굴에서 나와 몇몇 동굴을 더 들렀지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동안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보았던 환상적인 동굴들이 기대치를 높여놓았기 때문일까.
동굴 투어와 함께 왕위엥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튜브 타기. 차를 타고 강 상류로 올라가 두 시간 동안 튜브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오는 이 물놀이는, 왕위엥을 찾는 외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즐기는 필수코스다. 연록색에 조금은 탁해 보이는 강물은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흐른다. 강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튜브에 몸을 싣고 시간의 흐름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관광객의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스며든다.
해가 질 때쯤이면 사람들은 노을을 보기 위해 강 옆 카페로 모인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일몰은 여행의 또 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어낸다. 사방을 붉게 물들이던 태양이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사라지는 광경은 묘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짧은 시간에 숱한 상념이 스치고 지나간다. 때묻지 않은 눈빛을 가진 왕위엥 사람들과 도시가 방문객에게 남겨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