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무신 걸 허영 살아야 할지 막막허우다”

감귤 가격 대폭락, 한숨짓는 제주 농민

  • 임재영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입력2003-03-24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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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를 괴롭히는 것은 태풍만이 아니다. 감귤이 올 초 껌값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폭락해 제주도민을 울리고 있다.
    • 자식교육의 밑거름이었던 ‘황금의 나무’에서 농가를 붕괴시키는 ‘절망의 나무’로 변한 감귤 농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무신 걸 허영 살아야 할지 막막허우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농장에서 한 농민이 감귤밭을 돌보고 있다

    “이제 다 죽어수다(이제 모두 죽었습니다). 무신 걸 허영 살아야할지 막막허우다(어떤 것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감귤 가격 폭락으로 제주지역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감귤은 제주도민에게 ‘생명산업’과 다름없다. 농민 대부분이 감귤재배에 매달리고 있어 감귤의 성패가 곧바로 이들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감귤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감귤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속출하는 가운데 농민들의 허탈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농민들이 제주도청으로 몰려가 감귤나무를 불태우며 가격 폭락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으며 한 농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제주 뒤흔든 ‘감귤 대란’

    제주도는 ‘감귤 대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농가에 저장된 상품용 감귤을 kg당 200원에 수매했으나 이는 농민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200원은 ‘껌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인 것이다.

    감귤 주산지인 제주 남제주군 남원읍에서 25년 동안 감귤을 재배한 양상집(50)씨는 저장창고에 쌓인 감귤을 쳐다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가격 폭락으로 출하는 엄두도 못낸 채 썩고 있는 감귤만큼이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감귤농사는 끝장났어요. 감귤을 팔아봤자 수입은 별게 없고 오히려 비료값과 인건비 대느라 빚만 늘었지요.”

    1만평의 감귤과수원을 재배하는 양씨는 지난해 감귤을 110t 생산했지만 빚만 눈덩이처럼 불었다. 최근엔 수매조차 거부당한 3t의 감귤을 창고에서 썩히고 있는 실정이다. 양씨는 “학비를 조달하지 못해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휴학하고 농사일을 도왔지만 용돈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울분을 토했다.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홍승화(60)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74t의 감귤을 생산했지만 노임과 비료값 농약값을 제하고 나니 100만원도 건지지 못했다. 홍씨는 “감귤과수원 1300평 정도를 갈아엎어 채소를 재배할까 싶지만 전망이 불투명해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감귤 가격 폭락으로 생산비도 건지지 못한 농민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온 감귤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며 과수원을 포기하는 일이 제주에서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농민들을 더욱 속상하게 만드는 것은 감귤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마땅히 심을만한 작물이 없다는 점이다. 올해는 양파와 파 등의 밭작물이 좋은 가격을 받았지만 매년 가격 널뛰기가 심해 불안하다. 또 녹차, 가시오가피, 참두릅 등의 인기 특용작물은 재배 노하우가 부족하다.

    남제주군에서 20년 동안 감귤과수원을 돌본 오영준(43)씨는 과감하게 7000평의 과수원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감귤농사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한우 사육을 준비중입니다.”

    그렇다면 감귤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락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서울 등 대도시 농산물공판장에서 낙찰된 감귤의 평균 가격은 지난 1월 중순 400원대에서 2월초 270원대로 폭락했다. 3월 들어 kg당 400원대를 회복했으나 감귤이 귀해지는 시기적 특성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가격이 아니다.

    감귤 가격은 무려 4년째 폭락해왔다. 대도시 공판장의 평균 경락가격은 지난 1998년 kg당 948원에서 1999년 510원으로 폭락했으며, 2000년 658원으로 다소 회복세를 보이더니 2001년에는 또다시 559원으로 내려갔다.

    감귤 가격이 폭락한 원인은 생산량이 늘어난데다 과일시장이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 감귤재배면적 1만494ha, 생산량 18만7000t에서 1990년 1만9414ha, 생산량 49만3000t으로 증가했고 1999년에는 2만5823ha, 생산량 63만9000t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렌지 등 외국산 감귤류 수입이 1997년부터 개방되면서 감귤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중간상인과 일부 감귤 농민들이 저질 비상품을 시장에 대량 유통시키면서 감귤 이미지 더욱 나빠진 것이다.

    감귤의 생산원가는 kg당 400원 정도. 따라서 이 가격으로는 농약값 물류비 등을 갚을 수 없다. 감귤 가격이 폭락하자 일부 농민은 감귤 출하를 포기하고 창고 등에서 썩고 있는 감귤을 산간 도로변에 몰래 버리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ha당 2400만원을 지원해 300ha의 감귤과수원에 대해 폐원(閉園)작업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농민들의 폐원 신청 면적은 1226ha에 이르렀다. 감귤로는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감귤농사 포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감귤산업발전계획(2001∼10년)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별로 없다.

    오락가락한 감귤 대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7년부터 감귤 생산과 유통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생산조정제가 시행되고 한해 동안 감귤 생산을 제한하는 감귤 휴식년제가 실시됐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오렌지 등 감귤류 수입에 따른 판매수익금으로 조성된 기금이 바닥나 더 이상 농민에게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지난 1995년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감귤류 수입판매 국영무역기관으로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이하 제주감협)을 지정해 수익금을 감귤 농가를 위해 쓰도록 했으며 일반 수입업체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기금이 조성돼 감귤 관련정책에 투입됐다. 지난해 이월된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은 134억원. 그러나 올해 수출물류비, 감귤출하연합회 무역사무소 운영비 등의 예산 58억원과 저장용 감귤수매에 따른 부담금 27억원을 제하고 나면 49억원이 남을 뿐이다.

    이 돈은 올해 제주도에서 추진하는 감귤과수원 폐원에 따른 예상 지원액 54억66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이 올해 말 바닥날 형편이다. 특히 제주감협이 지난해 제주감귤을 미국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액 14억7000만원을 감귤류 수입판매 수익금에서 충당할 방침이어서 적자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또 내년부터 오렌지 등 감귤류 수입에 따른 관세율이 제주감협과 일반 수입업체에 동일하게 적용됨으로써 제주감협이 가지고 있는 수입권은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기금마저 바닥나고 정부에서 끌어다 쓸 예산도 변변치 않게 되면서 제주도는 올해를 감귤산업 생존의 최대 고비로 여기고 있다. 우근민(禹瑾敏) 제주지사는 최근 도의회 개회식에 참석해 강력한 근본대책을 천명했다.

    “197억원을 들인 2002년산 감귤 수매대책은 감귤 농가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일시적인 고육책일 뿐 감귤을 살리는 근본대책은 아닙니다. 더 이상 농가들이 생산한 감귤을 폐기하거나 도민의 세금으로 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지사의 이같은 발언은 감귤 수매 등 땜질 처방식 대응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회생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우선 감귤 생산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대대적인 간벌(間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간벌이란 빽빽이 심어진 나무를 간간이 베어내는 것으로, 채광을 높여 감귤의 당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줄여나가는 감산정책의 하나다. 고지대와 토양이 습한 지역 등 감귤 재배에 부적합한 과수원에 대한 폐원 정책도 제주도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감귤나무는 한때 몇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는 ‘대학나무’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주도민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변했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는 감귤 품종은 온주밀감으로 1911년 프랑스인 다케 신부가 일본에서 15그루를 들여온 것이 효시다. 1913년 일본인에 의해 서귀포시 지역에 처음 감귤과수원이 조성된 이후 일제 강점기간 일본인 중심으로 감귤 재배가 장려됐다. 그러나 당시 제주지역에서 재배된 감귤은 일본에서 들어온 감귤에 비해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어 주민들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주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감귤이 재배된 것은 1950년대 후반. 일본에서 밀수입되던 감귤이 사라지고 제주지역에서 생산된 일부 감귤이 비싼 값에 팔려나가면서 주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감귤이 경제작물로 전환되면서 1964년부터는 농어민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정부의 지원이 이뤄져 감귤 재배 붐이 일었다.

    조나 보리 등을 재배했던 밭이 감귤과수원으로 탈바꿈하고 해안에서 해발 600m 이하의 냉해(冷害) 피해를 보지 않은 곳에는 어김없이 감귤나무가 들어섰다.

    한평생을 감귤농사로 보낸 서귀포시 서홍동에 사는 강평순(72)씨의 회상.

    “1960년대부터 너도나도 감귤나무 심기에 바빠 집안일을 돌볼 겨를조차 없었지. 감귤 가격이 좋아 힘든 줄도 모른 채 일에 파묻히기 일쑤였는데…. 아마 감귤나무가 없었다면 7남매를 모두 교육시키지 못했을 거야.”

    감귤 열매를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인부가 드나들기 힘들 정도로 감귤나무를 빽빽하게 심었고 화학비료를 쏟아 부었다. 당시는 감귤의 품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토양의 지력을 높이는 데 대한 고심이나 품종개량은 뒷전이었다. 감귤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대량 생산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같은 감귤 재배 행태가 개선되지 않은 채 30여 년이 흘러 오늘날 제주 감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제주 경제 살리는 효자 역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일찍 감귤이 익는 극조생 온주밀감과 늦게 수확하는 만감류 재배가 성행했으나 주류는 역시 온주밀감이었다. 1980년대 초에는 제주지역에 비닐하우스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파인애플 재배가 유행하다 시들해지자 바나나 재배가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이들 과실 재배는 5년을 넘기지 못했고 1987년에는 비닐하우스에 심었던 바나나를 갈아엎고 대신 감귤나무를 심었다. 노지재배 감귤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4∼7월에 감귤을 생산해 높은 가격을 받는 ‘하우스 감귤’이 나타난 것이다. 이로써 감귤은 노지 온주밀감 9월말∼2월, 만감류 2∼4월, 하우스 감귤 4~7월 등으로 연중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감귤 산업이 성장하면서 제주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커다란 버팀목이 됐고 1997년 이후 국내 과수생산량에서 사과 배 등의 과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1년말 현재 제주지역 4만 농가 가운데 3만7000여 농가가 감귤을 재배하고 있으며 전체 경지면적 5만8900ha 가운데 2만5000ha가 감귤과수원이다. 1996년 감귤의 조수익은 6079억원으로 당시 제주도내 총생산 4조145억원의 15%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농자재 비용과 유통 및 물류비 고용인력비 등을 합치면 감귤 관련 시장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급성장한 감귤산업은 지역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산간 벽지까지 전기와 수도가 가설됐고 ‘감귤갑부’가 지역사회의 실력자로 등장했다. 제주에 감귤과수원을 갖고 현지에 관리인을 고용하는 부재지주가 등장했는가 하면, 감귤을 원료로 한 음료 젤리 초콜릿 등 각종 제품이 출시됐다. 또 잉여 노동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1970년대 들어 전라도지역 주민들이 대거 제주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지역 주민과 외지인 간에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감귤은 비단 경제문제로만 그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감귤 진흥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주요 이슈였으며 후보에게 치명타를 주는 소재이기도 했다. 1998년 민선 2기 지사선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생산량 조정을 위해 수매한 감귤을 폐기 처분한 정책이 농민들을 자극해 신구범(愼久範) 후보가 낙마하는 요인이 됐다. 2002년 선거에서는 이전 선거의 감귤 폐기문제가 또다시 불거져나와 일부 농민들이 신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감귤 폐기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작년산 감귤 처리가 난항을 겪으면서 제주도는 수매를 결정했고 수매한 감귤을 농민 스스로 버리는 ‘산지(産地)폐기’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지난해 도지사선거 때 우근민 현 지사가 감귤 문제로 상대 후보를 공격했던 사실을 알고 있기에 ‘폐기’라는 표현을 꺼리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가격이 상승해 농민들의 얼굴이 펴질 때는 현직 단체장이 선거에 유리하고, 가격이 하락할 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해 감귤은 ‘정치작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감귤이 제주와 북한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남북협력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 1998년부터 해마다 북한에 감귤을 무상으로 제공해 북한측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제주도민들은 북한에 감귤을 보낸 덕분에 국내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민간인 초청을 받아 북한 땅을 밟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지역의 생활 문화 행정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감귤 산업이 이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주도 김광호 농업기술원장은 “1980년대까지 3000평의 감귤과수원을 운영하면 가구당 평균 생활비인 1500만원의 2배인 3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수입자유화와 생산과잉 등으로 2000년 들어서는 감귤농사를 지으면 오히려 빚만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들어 위기를 절감한 제주도는 간벌과 폐원, 유통구조개선, 품종개량사업, 흙살리기운동, 감귤휴식년제, 생산조정제 등의 적극적 시책을 내놓았다. 감귤 해외수출도 감귤 산업의 활로를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1990년 캐나다에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제주 감귤은 현재 미국 싱가포르 홍콩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이 다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된 감귤에서 궤양병이 발견돼 통관이 금지되고 일본산 감귤보다 맛과 품질이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다. 공적 자금에서 상품포장과 물류비 등이 지원되고 있지만 해외 과일시장에 정착하지 못한 채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품종 개량만이 살길

    작년에 출시된 감귤의 가격 폭락으로 시련을 맞고 있지만 제주지역 농가들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맛을 특화한 일부 감귤 상품은 높은 가격을 받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놓았다.

    지난 2월 제주감협의 특화 브랜드인 ‘불로초’와 ‘귤림원’ 등은 kg당 1700원 선에 팔려나갔고 몇 년 사이에 감귤 품종의 최고 강자로 부상한 ‘한라봉’은 kg당 8000∼1만원선을 유지했다. 간벌과 폐원 등 감귤 생산량 조정에 힘을 쏟는 제주도와는 달리 감귤 전문가들은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이들은 생산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품질’에 제주 감귤산업의 사활이 걸렸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량이 크게 줄어 45만t 내외가 되더라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아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제주감협이 감귤 2만개를 대상으로 당도를 분석한 결과 시장경쟁력이 있는 당도 10Brix(브릭스) 이상 감귤은 2∼3%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조사가 나왔다.

    제주감협 오홍식 조합장은 냉정한 진단을 내린다.

    “결국 제주 감귤은 ‘맛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시장에서 외면당해 가격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대적인 품종 개량이 이뤄지지 않는 한 감귤 가격은 당분간 회복되기 힘들다고 판단됩니다.”

    지금까지 화학비료에 의존한 시비(施肥)체계가 감귤의 품질을 떨어뜨렸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유기질 비료를 사용한 감귤의 당도가 1∼2브릭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 화학비료 사용의 문제점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비의 개선만으로 감귤의 당도를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품종을 도입해야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결국 다품종 고품질의 감귤 생산이 해답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감귤 농민들의 자구노력이 우선이며 효율적인 농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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