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DJ와 가깝다니까 안기부장은 면담 신청, 재벌은 돈다발 들고와”

탤런트 김수미가 살짝 엿본 정치인·기업인 그리고 뇌물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3-03-25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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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대선 때 DJ 지원 유세를 했던 탤런트 김수미씨. 대선이 끝난 후 DJ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했다. 그중엔 재벌도 있었고 지난 정권의 안기부장도 있었다.
    “DJ와 가깝다니까 안기부장은 면담 신청, 재벌은 돈다발 들고와”
    “1998년 3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였어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OO그룹 계열사의 한 간부가 돈다발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 사람은 회사가 세무사찰을 받고 있는데 줄을 좀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연말 막을 내린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22년 동안 ‘주책없는 할머니’로 살아온 ‘일용 엄니’ 김수미씨. 올해로 연기생활 34년째를 맞는 그가 5년 전 한때 자신이 권력의 막후 실세(?)로 알려졌던 ‘정치 비화’를 털어놨다.

    김씨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분신’인 일용 엄니로 TV(선거)광고에 출연해 김대중 지지를 호소하는가 하면 라디오 찬조연설에서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상대방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 지원유세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대통령선거 때 제가 그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뛴 이유는 단 하나,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전라도가 한번 정권을 잡아보자’는 생각이 강했었죠.”



    -단순히 고향이 같기 때문에 도왔다는 건가요.

    “아뇨.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이전부터 존경하는 분이었지요.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없애자 하지만 지역감정이라는 게 없애자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분이 쓴 ‘옥중서신’을 읽고 빠져들었어요. 거기에 이런 부분이 있더라고요. 교도소에서 운동을 하러 마당에 나갔는데 돌 틈에 새끼손가락 만한 하얀 꽃이 핀 걸 봤대요. 그러던 어느 날 우박이 쏟아졌는데 그 꽃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돼서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는 거예요. 감옥살이를 하는 것도 억울하고 힘들었을 텐데 작은 꽃 하나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아서 무작정 좋아했죠. 남자가 꽃을 좋아하면 마음이 참 여리고 착한 사람임에 분명한데 이런 사람이 그 험한 야당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싶더라고요. 언젠가 (김대중 전 대통령)부부와 같이 영화를 보고 밥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밥을 먹는 저를 보시고는 그분이 부인 이여사에게 ‘밥 많이 먹는디 고봉으로 푸지 그래’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서는 피붙이의 정마저 느껴졌어요.”

    DJ ‘옥중서신’ 읽고 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였나요.

    “(1997년으로부터) 한 20년 전쯤이요.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을 때가 처음이었죠.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울의) 명보극장이었어요.”

    -유세기간에 김대중 후보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얼굴도 한번 못 봤어요. 저는 그때 후보를 따라다니지 않았어요. 전 저대로 뛰었고 후보는 후보대로 유세를 다녔어요. 출연하는 드라마 녹화하랴, 선거홍보용 TV광고 찍으랴 바빠서 한 자리에서 대면은 못했어요. “

    -선거 때 정치인을 위해 지원유세를 한 적이 있습니까.

    “전라도 출신 국회의원들이 출마했을 때 몇 번 도와준 적은 있지만 대선 때 나서기는 처음이었어요.”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제가 열심히 뛰고 도와줬던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그런지 스스로 유관순이 된 듯한 기분이 듭디다.”(웃음)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김수미씨는 김대중 당선자로부터 ‘도와줘서 고맙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선거 기간 동안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의례적’으로 발송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초청받은 사람 중 단상에 ‘자리잡고’ 앉은 연예인은 그가 유일했다고 한다.

    -청와대로 초대받은 적은 있습니까.

    “그분이 취임한 지 한 달쯤 지나 선거 때 도움을 줬던 연예인들을 청와대에 초대합디다. 그때 들어가 봤어요.”

    -지원유세를 한 연예인 중에서는 ‘톱스타’급에 속했는데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까.

    “남녀 시계 한 쌍을 줍디다. 다른 연예인들도 모두 받았어요. 김대통령과는 20여 년 전 명보극장에서 만난 이후 처음 얼굴을 맞댔는데 예전의 일(영화보고 밥 먹었던)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습디다. 기억했다면 인사를 나눌 때 오랜만이라든지, 당시의 얘기를 꺼내면서 아는 체했을 텐데….”

    -몰라봐서 좀 섭섭했다는 건가요?.

    “아뇨. 옛날 인연을 기억하지 못한 것보다는 목숨 걸고 지원유세를 한 것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섭섭했죠. 라디오를 통해 1시간 동안 찬조연설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참모진이 들고온 원고가 약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제 성에 안찹디다. 그래서 제가 손수 강도 높은 원고를 작성해서 연설을 했어요. 그때 상대방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감옥에 갈 것을 염두에 둘 정도로 공격 수위가 ‘쎈’ 연설이었어요.”

    그는 당시 라디오 찬조연설에서 법적으로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두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아들만 군대에 보냅니까? 돈 없는 집 자식들은 최전방에서 지뢰 밟고 죽으면 개 값 받고 말라는 겁니까. 저도 돈 한푼 안 들이고 아들 군대 안 보낼 정도의 빽은 있습니다. 그래도 제 아들은 군대에 보낼 겁니다”고 외쳤다.

    청와대에서 돌아온 그는 내심 속이 상했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자신은 감옥에 갈 각오로, 또 남편 사업이 무사하지 않을 것까지 각오했기에 자신의 충정을 몰라주는 데 대해 섭섭함도 적잖았던 것. 섭섭했던 건 또 있다.

    “손숙 선배가 환경부장관에 임명되고 난 후 한때 배신감에 못 이겨서 펄펄 뛰었어요. 손숙 선배는 선거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대통령과 손숙씨는 팬과 배우 사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장관에 임명되고 나니까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듭디다.”

    -그렇다면 정치 쪽에 뜻을 두고 지원유세를 했다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줘도 저는 안 해요.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자리를 바랐던 게 아니라 그래도 목숨 걸고 뛰어 준 저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한번 건네줬으면 하는 바람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김대중 대통령과 참모들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더라고요. 그게 섭섭했던 거죠. 목숨 걸고 뛴 저와 비교하면 손숙씨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손숙씨가 장관 된 후에 제가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니까 남편이 ‘너 까불지 마. 다른 건 다 관두고라도 말이야. 너 한자를 몇 자나 아냐. 손숙씨는 고려대 나왔어’라고 말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래 내가 대통령이라도 손숙씨 지명하지 나는 안 할 것 같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장관이나 국회의원 감은 아니잖아요.”(웃음)

    당시 동료 연예인들은 그가 국회의원이나 문화부장관 자리 정도는 꿰차지 않겠냐고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 탤런트가 찾아와 ‘단역도 없어 목이 마르니 주인공 좀 시켜달라’는 부탁까지 했을 정도니.

    김씨가 ‘막후 실세’로 떠오르게 된 것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이다. 그는 “한 TV 방송에서 1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특집 프로그램 ‘대통령을 말한다’에 출연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좀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그 프로그램에 김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생, 그리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나이가 많았던 현역 국회의원이 출연했어요. 거기에 제가 함께 출연했으니 사람들이 제가 김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로 알겠어요. 측근 중에 측근이기 때문에 출연하지 않았겠냐고 오해했던 거죠. 그 날부터 제 주변에는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특별히 김대통령과 친하다는 말을 하고 다닌 적도 없는데 하루아침에 이상하게 바뀌어 가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었다는 겁니까.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기업체 회장이 과일바구니를 보내질 않나. 평소 친분 있는 안기부 직원이 자기 부장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술자리를 주선하지 않나. 심지어 어떤 이는 옆 사람에게 저를 소개할 때 ‘어른과는 오누이처럼 지내는 분’이라고 합디다(그는 최근 펴낸 고백 에세이집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에서 ‘김대중 대통령 오라버니’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서 안기부장을 만났습니까.

    “예. 만났죠. 김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죠. 평소 함께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 친분있는 안기부(이때는 국정원으로 바뀜) 직원이 부장을 소개해주겠다면서 다리를 놨어요. 그 직원, 부장, 저 이렇게 셋이서 만났어요. 저녁 때 만나서 밥도 먹었고 자리를 옮겨 룸이 있는 술집에서 오랫동안 같이 마셨죠” 하고 당시를 회상했다.

    “나 만나고 다음날 배 가르더라”

    -주로 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그 분(안기부장)이 자기는 ‘일용 엄니 팬’이라고 그럽디다.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고 주로 드라마 얘기를 주고받으며 술을 꽤 많이 마셨죠. 그런데 저 만난 다음날 (안기부장이) 배 갈랐습디다(그가 만났다고 말하는 안기부장은 바로 권영해씨로 그는 1998년 3월 이른바 북풍(北風)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받는 도중 할복을 기도했다). 안기부 직원 말로는 부장이 김대통령과도 친하다고 합디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웠어요. 일개 배우가 안기부장과 술을 마셨다는 게 굉장히 찝찝했어요(그는 ‘찝찝했다’는 표현을 그대로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입니까

    “제가 김대통령과 가깝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그동안 전혀 연락이 없던 사람들이 찾아옵디다.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불안해졌어요. 굉장히 겁이 났고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습니까.

    “권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명인사들이었죠.”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권력의 실세’로 오인해 치켜 세우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김대통령이 오라버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드라마 ‘전원일기’팀은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이어 ‘국민의 정부’도 전원일기 팀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당시 김수미씨는 ‘전원일기’ 팀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음에도 마치 대통령 내외분이 자신만을 불러 청와대에 혼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주변사람들에게 말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습니까.

    “한마디로 재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그는 일본말 ‘가오다시’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고 부연 설명했다). 사람들이 저를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어서 한번 재려고 그랬던 거지. 사람들이 권력 옆에 붙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무섭기 시작합디다. 저를 ‘측근’이라고 오인한 사람들에게 20년 전에 대통령을 만난 게 전부였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청와대도 전원일기 팀과 같이 들어갔는데 마치 저만 혼자 들어간 것으로 얘기했고, 주위 사람들이 ‘대통령과 전화통화는 자주 하느냐’고 물으면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으면서 ‘어제도 전화통화를 했다’는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옵디다.”

    현금으로 거액 싸들고 찾아와

    재벌기업 돈다발 소동도 이 무렵 일어난 일이라며 그는 씁쓸히 웃었다.

    -돈은 얼마를 가지고 왔으며 청탁하러 온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거액이었고 모두 현금이었어요. 누가 얼마를 갖고 왔는지는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해야죠.”

    -돈은 받았습니까.

    “아뇨. 그 자리에서 돌려보냈어요. 그때 그 사람에게 솔직히 고백했어요. 저는 ‘김대통령과 특별한 친분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이죠.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김대통령과는 20년 전에 만났을 뿐이고 지원유세를 했던 인연밖에 없다고 털어놨어요.”

    -그런 청탁을 한 기업이 또 있었습니까.

    “그 곳 한 군데뿐이었어요.”

    권력과 가깝다는 소문이 나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서’ 극진히 떠받들기 시작했다는 김수미씨.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져 거짓말까지 늘어놓게 됐고 ‘권력의 실세’가 된 듯한 행동하면서 본의 아니게 ‘권력의 맛’을 본 그는 스스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괴로웠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저는 남을 속이기 위해서 헛방 치고 거짓말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권력자와 가깝다고 알려진 이후 자꾸 주위 사람들이 저를 권력의 실세로 떠받들면서 사람이 몰려들고 청탁이 들어오니까, 남편이 ‘너 그러다 칼맞아 죽어. 말조심하고 까불지 마’라고 충고하더군요. 결혼생활 30년 동안 제 사생활에 일절 간섭하지 않던 무던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맘이 꺼림칙했어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기면서 잠자리에 들어서도 괴로웠고 남편이 ‘까불지 말라’고 아침저녁으로 잔소리를 해대는데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렇게 사는 게 하도 답답하고 힘들어서 잘 아는 명상가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더니 그분이 ‘정상에 우뚝 서 있지 마라. 벼락 맞는다. 높은 담에 의지하지 마라. 언젠가는 그 담벼락에 깔려 죽게 된다’고 조언하더라고요.”

    “대통령 아들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된 것도 주변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고 말한 그는 “집 한 칸 없이 전세를 살고 있었거나 돈이 없었다면 줄 대달라며 가져온 그 돈다발을 받았을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제가 먹고 살만 하니까 그랬지, 쥐도 새도 모르는 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돈을 먹고, 먹은 값을 하려면 이러저리 쑤시고 다녔어야 할 텐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끔찍해요. 자의가 아니라지만 주변 사람들이 제가 권력의 측근인 양 행동하도록 몰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앞뒤가 모두 막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무서웠죠. 사람들이 저절로 붙기 시작하는데, 정말이지 그때 남편이 저를 말리지 않았다면 무슨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권력이라는 태풍 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당했다는 그는 지난 16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노무현 후보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지원유세 요청을 받았지만 다시는 정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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