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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신체적 장애 있으면 심리적 장애를 가질 여유가 없다”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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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딸 루시와 함께 쓴 어린이 과학책과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시간의 역사’.

호킹 박사의 장애와 그가 이룬 연구 업적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대중은 휠체어에 갇힌 나약한 육신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이 남자를 불치병 환자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로 만든 것일까. 의지? 천재성? 물론 호킹 박사는 굳센 의지의 소유자인 동시에 드문 천재성을 갖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삶에 대한 낙천적인 자세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 학생이나 연구원들은 파티에서 전동휠체어를 밤새도록 빙빙 돌리며 노는 호킹 교수의 모습에 익숙하다.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몸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내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놀이를 할 수 없을 때”라고 대답했다. 장애를 비관한 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심리적인 장애를 가질 여유가 없다”고 위트 있게 말했다.

한마디로 호킹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뛰어난 과학자답게 그에게는 삶을 단순하게 보고,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그에게는 또한 장애인 남편을 기꺼이 뒷바라지하는 사랑이 있었다. 호킹 박사는 1990년대에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시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스토리야말로 그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영화 그 자체다.

스티븐 호킹의 사생활

호킹 박사는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없는 그의 처지에서는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언론도 ‘감히’ 삶의 궤적에 대해 자세히 묻지 못한다. 그는 지금까지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첫 부인 제인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소설가가 된 둘째 루시와는 어린이를 위한 과학책 ‘조지의 우주를 여는 비밀 열쇠’를 공동집필하기도 했다. 장남인 로버트는 아버지처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 미국에 정착했다. 영국, 그중에서도 케임브리지에서 ‘호킹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기가 너무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물두 살에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호킹이 어떻게 결혼하고, 세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이혼한 걸까? 1962년 말, 세인트올번스에 있는 프랭크 호킹 박사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열대질병 전문 의학자인 프랭크 호킹 박사는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아버지처럼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가을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에 진학한 큰아들 스티븐도 연말 휴가를 맞아 집에 돌아와 있었다. 스티븐은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장학생이었고, 우등생으로 졸업한 터라 아버지의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스티븐은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수재형 청년이었는데, 직관과 판단력이 워낙 예리한 탓에 그의 어투는 가끔 건방지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옥스퍼드 시절에 스티븐은 머리는 확실히 좋지만 공부는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대학 2학년 때는 물리학과 전체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정작 졸업시험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우등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본인의 회고대로라면 대학 시절 내내 하루 한 시간씩밖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스티븐은 영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유망주임이 분명했다. 이날 파티에 참석한 손님 중에는 호킹 일가의 이웃인 와일드 가족도 있었다. 고교 졸업반인 와일드 부부의 딸 제인은 이날 스티븐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두 사람은 금방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사형수보다는 나은 처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스티븐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말을 더듬는가 하면, 포도주를 따르다 병을 떨어뜨려 술을 엎지르기도 했다. 그해 여름, 스티븐은 중동 지방을 여행했다. 프랭크 호킹은 아들이 중동의 풍토병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 케임브리지로 돌아가려는 아들을 붙잡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스티븐은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각종 검사를 받았다.

진단 결과는 호킹 가족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정신은 멀쩡하고 통증도 없지만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속수무책으로 죽게 된다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 병명이었다. 의사들은 스티븐에게 남은 시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었다. 의사인 프랭크 호킹 박사는 이 병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프랭크 호킹은 아들의 지도교수인 사이애머 박사를 찾아가 2년 안에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죽기 전에 학위과정이라도 마치게 해주고 싶었다. 사이애머 박사도 그 같은 부모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지만, 케임브리지 대학 규정상 학위과정은 최소 3년이어야 했다.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제자에게 학위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모든 상황의 당사자인 스티븐은 당연히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오랜 시간 절망에 빠져 허우적댄 것은 아니었다. 우울증 속에서 그는 연거푸 악몽을 꾸었다. 사형수가 되어 처형의 순간을 기다리는 꿈이었다. 최소한 사형수보다는 내 처지가 낫지 않은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루게릭병은 병이 진행되어도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말하자면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마비가 진행돼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비참한 병이지만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아무데도 아프지 않은 자신의 처지가 낫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있을 때 맞은편 침대에서 한 소년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보기에 좋은 장면은 결코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최소한 나는 병 때문에 아프거나 속이 메스꺼워지지는 않았다.’(스티븐 호킹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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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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