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떡살 제작 전통을 유일하게 잇는 김규석(金奎奭·55)은 30년 동안 우리 문양의 풍부한 상징성과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린 장인이다.
“떡에 찍는 문양을 그저 떡을 예쁘게 꾸미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떡살 문양 하나하나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생일과 혼례, 제사상에 오르는 떡에 찍는 떡살 문양이 다 다릅니다. 아무거나 찍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고물도 묻히지 않고 다른 부재료를 장식으로 올리지도 않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절편을 장식하는 것은 다만 요철로 남는 떡살 문양뿐이다. 그 밋밋한 떡에 살이 찍히면 떡은 메시지를 담은 신성한 음식이 된다. 그래서 옛말에 ‘당장 먹을 떡이라도 살 박아 먹으랬다’는 말이 있다. 살이 박힘으로써 그 떡은 신의 축복을 받는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은 떡을 올리는 경우에 따라 적절한 문양을 골라 썼다. 예를 들어 백일상에 오르는 떡에는 물결무늬와 파초문을 많이 찍는다. 물은 동양에서 생명의 기원으로 꼽고, 파초는 생명력과 부를 상징한다. 또한 물결무늬는 ‘물결 조(潮)’가 조정(朝廷)의 조(朝)와 음이 같아서 나중에 조정에 나가는 출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떡 한 조각에 담은 의미가 정말로 크다.

여러 가지 크기와 모양의 떡살과 다식판. 문양 조각 면의 나무와 떡살 몸체 나무가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문양뿐 아니라 떡살 전체 형태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게 많다.
부귀영화와 장수는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는 바지만, 떡살문은 시대상도 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태극 문양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고 미국 문화가 들어온 뒤 만든 것에는 영어로 새긴 것도 있다고 한다. 근세에 쓰던 떡살에는 어느 가난한 집에서 만든 것인지 학교와 자동차를 새긴 것도 있다. 교육을 받아 더 나은 삶을 보장받고 싶고, 자동차를 탈 만큼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소박하게 표현한 것이렷다.
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영원불멸부터 자동차까지,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부터 아주 세속적인 욕망까지 함축적으로 담아낸 떡살 문양은 그 염원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귀신 듣는데 떡 소리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신이 떡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신들에게 그만큼 많은 소망을 빌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많은 소원을 크지 않은 떡 조각에 담아내려니 표현이 함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떡살 문양은 같은 문양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고 여러 문양이 함께 복합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같은 국화문이라 해도 배경에 물결이 들어갈 수도 있고, 햇살이나 사선, 곤충, 기하학적 문양을 넣을 수도 있어 비슷한 듯하면서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변용된 문양들을 보노라면 기호와 상징의 바다에 빠진 기분이 든다.
“문양은 글씨가 나오기 전의 언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떡살뿐 아니라 옷이나 기와, 도자기, 단청 등에 들어가는 모든 전통 문양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떡에 찍는 떡살 문양은 신에게 드리는 기원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