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안팎이 그를 두고 들끓는다. 옛 동지가 입에 칼을 문다.
- 인권위 문 닫잔 얘기란다. 그간, 뭇매를 맞기만 한 그가 입을 열었다.
신자유주의·신고전학파라는 머리표가 붙은 주류 경제학은 마거릿 대처(85),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시대를 겪으면서 이념으로 격상했다. 사상도 정상에 오르면 공격받게 마련이다. 하이에크보단 카를 폴라니(1886~1964)를 닮은 제도학파가 숫자를 무기 삼아 주류에 맹공을 퍼붓는다. 장하준(47)이 젊은 공격수다.
공산주의, 자유주의 같은 이념은 강하면서도 무섭다. 항공모함 무게로 사람을 짓누르며 세상을 견인한다. 주체사상이라는 참혹한 이념에 매몰된 북한이 그렇다. 사상 덕분에 기득권을 누리는 집단은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고집 부린다. 이념을 바꾸면 변절자로 낙인찍는다. 옛 동지가 입에 칼을 문다.
탁자, 책의 주인은 홍진표(47) 시대정신 이사. 사상을 바꾼 전향자면서 동지를 배신한 변절자다. 청춘을 바친 이념을 버렸다. 한나라당이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그를 추천했다. 좌파 언론 헤드라인은 거칠었다.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오마이뉴스), “홍진표가 인권위원이라니”(프레시안)
상임위원으로 추천받은 뒤로, 그는 언론인을 만나지 않았다. 좌파가 휘두르는 매를 맞기만 했다. 거칠 게 없어 보이던 달변이 사라졌다. 설화(舌禍)로 낙마할까 걱정하는 듯하다. 국회 인준 절차가 남아서다. 비겁하단 생각이다. 공격적으로 물으려 애썼다. 입에 칼을 물진 않았지만.
서울大 두 번 합격
사무실이 춥다. 난방이 엉망이라고 입을 뗐다. 바람이 살을 엔다고 덧붙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는 데 날씨 얘기만한 것도 없다. 그가 소설가와 맺은 인연을 아이스브레이커로 꺼내놓는다. 전기난로라도 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석영 선생 기사 썼대요.”
“아, 네. 황 선생 소설을 좋아합니다. 새해 인사 물으면서 볕 좋은 날 막걸리 들이켜기로 했어요.”
‘신동아’는 2010년 11·12월호, 2011년 1월호를 통해 표절 시비를 가리면서 황 작가를 몰아세운 일이 있다.
“황석영 선생 배포 하나는 대단해요. 범민련 활동할 때 황 선생이 북한에 있었거든요. 북한에서 우리와 상의 없이 황 선생을 범민련 대변인으로 임명해서 발표해버렸어요.”
“남측본부 대변인요?”
“아뇨. 전체 대변인. 남측 범민련에선 황당했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황 선생 북한에서 행적 잘 모르죠. 김일성이 늙어서 판단력 흐릴 땐데, 미국에 조총련 같은 친북 교포 단체를 만들려고 했어요. 김일성이 황 선생한테 그 일을 맡겼죠. 황 선생은 알았다, 하겠다, 해놓곤 각국을 떠돌다 한국으로 들어와버렸습니다. 김일성 상대로 장난 친 거죠. 아무튼 배짱 하나는 최고예요.”
‘시대정신’은 자유주의를 표방한 시민단체면서 두뇌집단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는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데올로그 격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보다 하이에크를 믿고, 장하준보다 프리드먼을 신뢰한다. 자유기업원은 벗이고, 참여연대는 맞수다.
“서울대 83학번이죠?”
“아뇨. 82학번. 경제학과로 입학했다 시험 다시 봐 83학번으로 정치학과에 들어갔어요.”
“고향에 현수막이 두 번 붙었겠네요.”
“1학년 1학기 때부터 운동권이었죠. 수업을 아예 안 들어갔어요. 광주 비극 2년 뒨데, 일종의 반발이었죠. 시험도 안 봤어요. 학점이 0.87이 나왔더군요. 졸업정원제 시절인데, 선배들이 졸업 못한다, 그러대요. 그래서 자퇴하고 학력고사를 봤는데,성적이 나쁘지 않았어요. 정치학과를 골랐죠.”
“어차피 졸업 못했는데, 쓸데없는 짓 했네요.”
“제적 몇 번 당하고 재입학하고 그랬죠. 1990년대 말에 마지막으로 복학했는데, 학교 분위기가 수업 안 들으면 학점 안 주는 걸로 바뀌었더군요. 4학기를 더 다녀야 했는데, 졸업장 받으려고 사회생활을 포기할 순 없었죠.”
“공화국이 그럴 리 없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왼쪽)가 홍진표 그룹의 이데올로그 격이다.
“홍진표 형은 코어(core·핵심) 중에서도 코어였죠. 보통의 운동권은 핵심그룹이 북한 지시를 따르는 걸 몰랐죠. 코어는 하나같이 이념을 바꿨어요.”
소준섭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전민련 부대변인 할 때 함께 일했죠. 홍진표 탓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휴. 꼴통이었어요. 미국대사관이 토론회를 제안해왔는데, 홍진표가 미국이랑 뭐 하러 대화하느냐고 방방 뜨는 바람에 무산된 일도 있어요. 북한을 비판하면 공화국이 그럴 리 없다면서 방방 뜨고. 골수 중 골수였죠.”
그는 주사파 핵심이 하나같이 전향한 건 아니라고 했다.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 알죠. 그 친구랑 민혁당을 같이 했습니다. 김영환도 자유주의자로 전향했죠. 구해우 중심 분파도 전향했고요. 산하에 분파로 창업한 다수가 이념을 바꾼 건 맞지만, 남은 친구들도 있죠, 일일이 거명하긴 어렵지만. 핵심이 주사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았죠. 단파라디오 내용을 녹취하거나 김일성대 강좌 내용을 등사해서 각 대학에 보급했거든요. 알 사람은 다 알았어요.”
변절, 전향은 어감(語感)이 다르다. 그는 이 두 낱말을 싫어했다.
“운동할 때 인류의 보편적 발전에 대한 열망이라고 할까, 혹은 사회정의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 같은 생각 자체가 바뀐 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전향이라는 표현은 궤적을 온전히 담지 못하죠. 변절은 결코 아니고요.”
“왜, 변절, 아니 전향, 그러니까 바뀌었나요?”
“문익환 목사와 북한 사이의 갈등이 3~4년간 꽤 심각했어요. 북한이 우리를 협상 상대가 아닌 도구로 사용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식량난이 발생하고, 탈북자가 넘어왔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죠. 15년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을 비판했더니 돌팔매가 날아오더군요. 김영환을 신뢰했는데, 그 친구도 북한에 다녀온 뒤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 제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죠.”
그가 말한 새로운 운동은 북한 민주화운동을 가리킨다. 홍진표, 김영환은 1997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세운다.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기보단 나름의 논리로 합리화하곤 한다. 그가 주사파로 지낸 15년 삶에서 부정하는 일, 긍정하는 일은 뭘까.
“긍정하는 건 여하튼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 그러니까 내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이 바탕이었지만 어쨌든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있으니까. 여하튼 뭔가 국가라든지 민족이라든지 나아가 인류라든지, 그런 그림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 그렇게 발상했다는 거, 하여튼 어떤 세속적인 것에 관심 없이 몰두했다는 거.”
여하튼, 어쨌든, 하여튼이란 부사에선 부정의 냄새가 난다. 긍정하는 걸 말했으니, 부정하는 걸 언급할 차례다.
“친북(親北)했다는 것,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했다는 것, 그것은 오류였다고 봐요.”
잘못이냐, 오류냐고 물으려다가 말꼬리를 잡는 듯해 질문을 틀었다.
“친북이 아니라 종북(從北)한 거 아닌가요.”
“포괄적으로 친북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주사파 초기엔 북한에 맹목적이진 않았어요. 남한 운동권의 독립성을 분명히 생각했으니까.”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진 않는군요.”
“오류가 있었던 거 인정합니다.”
급여 제대로 받는 첫 직장
해가 비뚜름히 눕는다. 사무실이 싸늘하다. 발이 시리다. 홍진표는 1998년 시대정신을 꾸렸다. 하이에크, 프리드먼 책을 읽은 건 그즈음부터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시장 자율이 정부 개입보다 유리하죠. 하이에크, 프리드먼은 숫자로 이를 실증해냅니다. 정교하고, 잘 짜인 이론이에요.”
주류 경제학이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복지 제도가 2012년 대통령선거 이슈로 떠올랐다. 보편적 복지니, 차별적 복지니, 생애 맞춤형 복지니 하는 말이 회자한다. 무상급식으로 요란하더니 요즘엔 무상의료가 뜨거운 감자다.
그가 신뢰하는 자유주의 이념에 딴죽을 걸어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유주의가 공격받고 있죠. 카를 폴라니는 공산주의가 꿈꾼 세상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유토피아인 것처럼, 자유주의가 바라는 세상도 현실에선 나타날 수 없는 유토피아라고 했습니다.”
“모든 이념이 그렇듯 자유주의도 근본주의 경향을 가졌어요. 의료보험,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거든요. 자유주의가 이론으로서는 정확할지라도 우리의 현실, 한국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현실하곤 맞지 않는 부분도 없진 않죠. 유럽은 오랫동안 국가 주도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개인 자율성이라는 부분에서 소홀했죠. 자유주의 이념은 그러한 편향을 바로잡는 데 유용했습니다. 자유주의 처방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케인스주의 처방이 늘 맞는 것도 아니죠. 세상이 워낙 복잡해요. 주의라는 꼬리표 없이 토론할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국회가 인준하면 그는 이 사무실을 떠난다. 업무 인계를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인권위는 급여를 제대로 받는 첫 직장이다.
민주당 인사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박살 낼 겁니다. 시민운동하면서 치부를 했답니다. 아들을 조기유학 보냈고요. 싹 조사할 겁니다.” 이 인사는 1주일 뒤 이렇게 전했다. “이것저것 빼면 재산이 5000만원 좀 넘어요. 사글세 사는데다, 조기유학 보낸 곳도 필리핀이고.”
“전 재산이 5000만원이라면서요?”라고 물었다.
그는 뻣뻣한 털이 살에 닿아서 뜨끔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
“전처가 학교교사예요. 서클 동기였고. 아이는 그 친구가 책임지고, 용돈은 알아서 하고 이런 식이었죠. 8년 전 이혼하고 나선 혼자니까 경제적 부담을 느끼진 않았고, 그냥 살아왔지요. 이번에 신고하면서 보니까 재산이 월세 보증금이랑 보험 이런 거 다 털어서 1억원 조금 넘던데요. 아들 녀석이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해서 중학교 1학년 때 필리핀으로 유학 보냈고요. 전처가 양육권을 가졌어요. 캐나다나 미국으로는 못 보내는 거고, 대학도 거기서 다니고 있고요.”
“제대로 월급 받는 첫 직장, 아니 첫 공직이 차관급입니다. 만족하나요? 아니면 과분하다 여기나요?”
“그거는, 뭐…. 말이 차관급인 거지, 권력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자동차도 나오고, 기사도 딸리죠.”
“그렇다대요.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공직에서 물러나면 누리던 것을 잃어 금단현상 같은 것도 겪는답니다. 시민운동 하다 공직으로 가는 게 큰 변화라면 변화인데, 언제든지 시민운동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거고, 인권위가 권력기관은 아닌 거고, 옴부즈맨 같은 그런 역할이고, 그런 면에서, 잘 모르겠습니다. 시민운동 하던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게 먼저겠죠.”
철학이라곤 없는 이익집단
그가 속한 그룹은 뉴라이트라고 불린다. 그는 2004년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한 뒤 주사파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토로했으며 이명박 정권 창출에 앞장섰다. 그럼에도 안병직-홍진표 그룹은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소외됐다. 정부기관에 자리 잡은 한 뉴라이트 출신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념, 철학이라곤 없는 이익집단이 요직을 차지한 거 아닌가요. 영포라인, 선진국민연대가 핵심을 틀어쥐고, 서울시 인맥이 곁다리로 떡을 나누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상임위원에 만족해요? 국회의원쯤 생각했을 것 같은데…. 비례대표 공천 때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신청한 적이 없어요. 아예 신청을 안 했어요. 선거에 나가고 이러는 게 별로 성격에 안 맞는 것 같아서 애초에 생각을 안 했고, 비례대표 같으면 뭐 고려해볼 수도 있겠는데, 그것도 사실 먼저 제안이 와야 하는 거지, 저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그런 거는 아니니까.”
그에겐 한동안 관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6월 그를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에 내정했으나 좌파세력이 반대하고 나서자 돌연 인사를 철회했다. 일부 좌파는 그를 맹목적 극우라고 몰아붙였다. 일부 우파도 그를 마뜩찮게 여겼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낙마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 측근인 김진홍 목사도 임명에 반대했죠. 뉴라이트 하면서 두 사람 관계가 나빴다고 해요. 홍진표씨가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라더군요.”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 내정을 알려준 이는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연대 활동부터 대선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게 있어서 휴식을 취하려고 필리핀에 3개월가량 가 있을 생각이었어요. 영어도 배우고, 그러려고 했죠. 사글셋방도 빼고 짐은 이삿짐센터에 맡겨놓았고요. 이틀 후 출국 예정인데, 류 실장으로부터 제안이 왔어요. 선거캠프에 있었다거나 정권창출에 기여한 내부자가 아닌 처지라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안병직 선생께 의논드렸더니, 적극적으로 ‘해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아들 얼굴만 보고 1주일 남짓 만에 필리핀에서 돌아왔습니다.”
권부(權府)에 합류할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섭섭하지 않다고 말했으나 진실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뉴라이트 그룹은 지난 대선 때 바람을 일으키면서 주목받았다. 그가 공직을 맡은 건 뉴라이트 활동 덕이 적지 않다. 뉴라이트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부터 뉴라이트란 낱말이 탐탁지 않았어요. 좌, 우를 나누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 같았고. 아무튼 언론이 무섭더군요. 뉴라이트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결과적으론 덕을 봤죠. 우리가 믿는 이념을 널리 알렸거든요.”
“손해 본 것도 있나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집단은 성향이 제각각 달라요. 우리는 자유주의자 그룹인데, 다른 집단과 한 묶음으로 여겨지면서 일종의 세금을 톡톡히 낸 것 같아요. 유명세를 누렸지만, 꼴통 보수, 극우라는 공격도 받았죠. 우리는 뉴라이트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습니다.”
“진짜 극우는 전향한 좌파를 믿지 않죠.”
“한국에 극우가 있나요?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극’자는 붙일 수 있지만 그분들이 극우는 아니죠. 그분들을 규정하는 적확한 단어는 안보주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사파 활동도 민주화 운동인가”
이 대목에서 그를 공격한 글과 말을 몇 토막 읽어보자.
“홍진표가 가세하면 인권위는 무력화 단계에서 우경화 단계로 넘어갈 소지가 크다. 현병철 위원장으로 무력화한 인권위가 홍진표로 인해 우파 성향 국가기관으로 업그레이드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프레시안)
“인권위를 북한인권위로 축소하거나 아예 형해(形骸)화하는 임무를 맡은 X맨의 파견이다.”(조국 서울대 교수·전 인권위 비상임위원)
“홍진표가 강제 징집되고 투옥된 것은 주체사상 신봉자로서 종북주의 활동할 때 벌어진 일로서 이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전향한 것인 만큼, 이것을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경력이라고 강변한다면 주사파 활동이 정당화되는 모순에 빠진다.”(김형완 전 인권위 인권정책과장)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침묵과 인권위원·전문가 사퇴, 정치적 의도에 따른 상임위원 임명,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 제출 등으로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홍진표 추천은 야시장의 야바위꾼 같은 행태로, 사실상 북한 인권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
그의 처지에선 우군은 적고 적군은 널렸다. 그가 불쾌하게 여길 만한 질문을 던졌다.
“주사파 활동한 것도 민주화운동인가요?”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 실제론 사회주의혁명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래서 민주화운동은 가짜다? 그런 논리는 조금 그렇죠. 강제징집당한 건 주사파 되기 전 일이고. 주사파 활동은…, 그게 참, 친북한 것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했던 건 당연히 오류라고 생각하고…. 어쨌거나 시민운동을 해왔기에 인권위 상임위원이 적응하기 유리한 자리인 듯해요. 굉장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경제라든지, 군사라든지 하는 일은 능력 밖 일이죠. 기존 법 제도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보듬으면서 갈등을 치유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역할이어서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현병철 인권위는 사안마다 정권 눈치를 보는 느낌입니다. 인권위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조직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는 “정부로부터 독립할 필요는 있는데, 너무 앞서나가는 것도 문제는 있죠”라고 답했다.
한국의 인권 현주소를 주제로 오랫동안 문답이 오갔다. 일부를 소개한다.
“한국은 인권이 잘 보장돼 있는 사회라고 보나요? 아니면 아직도 인권 침해가 심하다고 여기는지요?”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에 비해선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굉장히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아울러 인권 보장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죠.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인권위가 존재하는 거죠.”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이런 건 어떻게 봅니까?”
“용인해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거죠. 그래서 이미 뭐 실형도 받았잖아요.”
“국익하고 인권이 부딪치면 어느 쪽 편에 설 건지요?”
“충돌할 일이 있을까 싶어요. 다만 인권문제도 국가이익, 그러니까 국가공동체라는 개념을 갖고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자유주의자로서,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국가보안법 개정 혹은 폐지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의견을 갖고 있지만, 지금 답하긴 곤란합니다. 인권위에서 그 사안이 다뤄지면 의견을 낼 겁니다.”
“북한 바꿔놓는 게 時代정신”
일부 인사는 그의 가세로 인권위가 북한인권위로 격하하리라고 주장한다. 인권을 다루면서 북한을 거론하지 말라는 건 난센스다. 인권 문외한이라고도 그를 공격한다.
“가정을 갖고 공격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인권위는 정교한 법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기구입니다. 그 틀 내에서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다져진 틀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어요. 구체적 사안을 비판하는 건 좋은데, 사람이 글렀다고 공격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정권이 지향하는 바에 가까운 사람을 선임하지 않을까요. 우파는 인권을 소홀히 다루지 않습니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진보세력이 논리를 왜 그렇게 펴는지 납득을 못하겠어요. 북한 인권을 다룬다고 국내 인권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는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하니 인권 상황을 직접 공격하긴 어려워요. 인권위가 정부가 못하는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기왕에 인권위가 북한 인권에 소홀했던 게 문제지,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란 건지 모르겠습니다. 인권위 설립 취지에도 부합하고요. 북한 인권을 다루는 걸 문제 삼는 게 오히려 정파적 접근 아닌가요. 오래전부터 주장한 게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 정권에 반대합니다. 종식해야 할 정권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반북은 아니죠.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게 북한 사회 발전을 이끄는 길 아닌가요. 자유와 인권 증진을 위해 북한 정권을 반대하는 겁니다.”
“인권위가 북한 정권 타도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죠. 김정일 정권 종식이 북한에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봐요. 한국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요.”
일부에선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자유권 문제를 개선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한다. 북한 현실을 고려해 인권을 잣대로 윽박지르진 말자는 거다.
“북한 체제를 잘 몰라서 그럽니다. 이해가 부족한 거예요. 북한이 굶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해요. 북한 주민이 굶는 것엔 동정심을 가져야겠지만, 여태껏 지원했는데도 해결된 게 없습니다. 방법론을 바꿔야 해요. 도둑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상생(相生)을 위해 노력해왔다면서도 종북주의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소통이 희망이다’(경향신문), ‘진보와 보수 미래를 말하다’(한겨레)에 패널로 참여했으며 한겨레 ‘훅(hooK)’엔 보수 쪽 고정필진으로 칼럼을 써왔다.
“한겨레 고정 필진 중 명확하게 보수라고 불릴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걸요. 보수 언론에 글 쓸 때보다 두세 배 더 신경 써요. 한국 사회엔 논쟁은 없고, 삿대질만 있습니다. 소통을 안 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아요. 소통, 상생하려고 노력합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긴 하죠.”
그는 일할 때 까칠하다고 한다.
“합리적이지만 인간미가 없다고 하던데요. 성격이 까칠한 쪽인가요?”
“일에 관해서는, 운동할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철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군더더기를 못 본다고 하던데요.”
“예. 그런 쪽이죠. 그건 인간미하곤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어쨌든 일에 관한 한 철두철미하려고 합니다. 사소한 실수가 문제를 일으키거든요.”
“인생의 항로표지(航路標識)로 삼은 게 있습니까?”
“특별히, 뭐, 그런 건 없습니다.”
“이념가로서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봅니까?”
“자유주의를 만능으로 여기는 근본주의자는 아닙니다만,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민간부분이 더욱 활성화해야 해요. 북한을 정상국가로 바꿔놓는 것도 시대정신이고요.” “출근 저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겁니까?”
“못 들어가게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