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이후 한국의 최대 우방국은 단연 미국이었다. 미국은 6·25전쟁 때 수만명에 달하는 자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면서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줬다. 그 후 엄혹한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이 씌워준 안보우산의 보호 아래 한국은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미국은 1945년 광복 당시 구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가른 강대국이었고,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1980년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을 묵인한 존재로 비난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냉전체제는 종식됐다. 1990년대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었고, 그런 격변의 흐름은 새천년에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한반도의 운명에 미국이라는 변수의 비중은 여전히 클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새천년 한·미 관계의 미래상은 어때야 하는가. 한국은 미국에, 미국은 한국에, 어떤 존재로 다가서는 게 가장 바람직한가. 한·미 관계의 현안과 더불어 새천년 한미 관계의 비전을 양국 대사에게 들어봤다. 》
미국 워싱턴 DC의 메사추세츠 애비뉴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외교가(外交街)다. 한국 대사관도 물론 그 길가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여러 나라의 대사관 건물들 중에서 보일 듯 말듯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길 중간 쯤에 제법 상당한 규모의 건물로 번듯하게 서 있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에 매달리던 1997년 초겨울에 그 길을 오가던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은, IMF 환란(換亂)이 터지기 한참 전에 우리 정부가 욱일상승하는 국세(國勢)를 과시하듯 매입했다는 그 건물을 도대체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았을까? 혹시 “그것 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더니”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1월7일 오전,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가며 떠오른 단상(斷想)이었다.
기자를 안내한 대사관 직원은 “요즘은 오랜만에 대사관 주변이 참 조용하다”고 전했다. 경제위기도 이제 한숨 돌렸고, 작년 가을 이후로는 북한의 미사일위기 역시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을 말하는 듯했다. 오랜만에 대하는 이홍구(李洪九·66) 대사의 표정 역시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평온해보였다.
― 주미(駐美) 대사로 부임하신 지가 이제 거의 2년이 돼 가시지요?
“1998년 5월에 부임했으니까 21개월째가 됩니다.”
― 그동안 국가적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전반적으로 소감이랄까, 주미 대사로 재임하신 기간을 회고해주시지요.
“전반적으로 보면 비교적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 자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주미대사로 오게 됐습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취임 2주일 후에 저에게 주미대사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처음엔 두어 차례 고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워낙 급박했던 상황이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함께 국난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98년 3월이라면 우리 경제가 아직 국가부도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그런 상황 아니었어요? 그런 상황에 제가 워싱턴에 부임해서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은 절대로 부도를 내지 않는 나라다. 한국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다녔습니다.
사실 98년 당시 제가 미국사람들을 만나 우리 상황을 설명하면서 ‘99년에는 한국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플러스 1∼2%, 잘하면 3%까지 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 보면 제 말이 틀렸어요. 그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니까(웃음).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이 일치 단결했고, 우방들도 많이 도와준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이 곳에서 다뤄야 했던 또 한 가지 큰일은 98년 여름부터 시작된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과 미사일 위기였습니다. 이게 다시 또 1994년 위기 때처럼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뭐,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 지금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해결 가능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무난히 잘 되지 않았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농담 같은 얘기지만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인데,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대체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서울쪽에서는 ‘좀 더 있으라’고 그러더군요.”
“나 같은 사람은 정치에 안 맞아”
― 많은 분이 이른바 ‘정치인 출신 대사’의 성공 케이스로 이홍구 대사를 꼽는 것을 봤습니다. 지금 말씀처럼 그토록 중요한 시기에 이대사 같은 분이 주미 대사를 맡아서 대미(對美) 관계가 원만하게 처리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인 듯 합니다. 그런데 이대사의 친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야당 쪽에선 그동안 이대사와 관련해서 연령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고, 아무튼 썩 흔쾌했던 것 같지는 않더군요.
“특히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정치인 출신 대사가 유리하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국무총리와 당대표를 지낸 사람인지라 미국 정부나 의회 등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날 때 뭐랄까 대접을 해준다고 할까요, 일하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겠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방이나 외교에는 여당도 없고 야당도 없다는 점입니다. 대사직이란 국가이익을 위해서 국가 정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자리지 특정 정당의 이해에 좌우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연령 문제와 관련해서는 애초부터 혼선 여지가 있었고, 야당이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은 꽤 적절한 측면이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외교부에서도 그 일을 계기로 법적 정비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서울로 돌아가시면, 혹시 자의건 타의건 정치활동을 재개할 생각도 갖고 계십니까?
“전혀 없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97년 당시에 내가….”
― 당시 어느 자리에선가 “나같은 사람은 한국정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지요?
“그래요. 제가 97년 6월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스스로 물러난 겁니다. 당시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전까지 대학과 행정부, 정당에서 두루 일해봤지만 아무래도 제가 정치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이에요.”
― 99년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특별히 말할 것은 없어요. 대사는 정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웃음)”
DJ, 미·북 대화 길 터줘
―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 미국측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앞서 말씀처럼 작년 9월 이래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서 북한 문제를 조율하고 있지요. 북한 문제와 관련한 요즘 미국 내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잘 알려진대로 미국 조야에서는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종식된 상황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 지역인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하느냐는 게 과제로 남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는 철저하게 대응하면서도 평화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하고,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정책을 확고하게 견지해왔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두 번째로 김대통령께서 쉽지 않은 결정을 했는데, 미·북간 대화가 남북관계보다 다소 앞서 가더라도 이해하겠다, 이런 생각을 밝히신 겁니다. 미국으로선 이 부분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진전시킬 필요성을 느꼈을 때 한국측이 내세웠던 ‘미북대화가 남북대화보다 앞서가면 안된다’는 원칙을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작년에 북한 미사일 문제, 금창리 핵시설 문제가 제기됐어요.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미사일 및 핵무기를 줄이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이나 이라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 관심사일 수밖에 없던 터에 김대통령께서 미국에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길을 터주니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된 겁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응하는 한·미간 접촉이 대단히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페리 프로세스를 거부할 경우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사라지고 오히려 불이익만 커지기 때문에 북한도 이걸 쉽사리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은 사실상 외부 수혈로 체제를 연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외부원조가 끊어질 경우 그 타격은 심대할 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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