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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한 대통령’이 연출한 ‘무능한 정치’

‘유식한 대통령’이 연출한 ‘무능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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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치사에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정권이 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은 상태에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무능' 이다. 대통령과 정부 집권당이 제각각이고,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 사안들이 공식 시스템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신동아’는 ‘한국 지식인 이념지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마지막 문항에 김대중 정부의 국정 난맥 원인과 해결방안을 물었다. 거의 모든 응답자가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최근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국정난맥의 원인은 측근 중심의 인사정책과 비전(vision)부재였다. 따라서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인사개혁과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강조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실패한 인사(人事)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호남 편중인사 시비에 휘말렸다. 일부에서는 “수십년간 워낙 호남이 소외돼 있었기 때문에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균형론’보다는 호남의 권력독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커진 게 사실이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는 김대중 정부 인사정책의 문제점을 4가지로 규정했다. 나교수는 “호남편중 정책을 펴면서도 허구의 숫자를 갖다대면서 아니라고 강변하는 점, 대통령과 영부인 인척의 낙하산식 인사, 비개혁적 관료들의 중용, 개혁적 전문가의 발굴 실패” 등을 꼽았다.



숙명여대 박재창 교수(행정학)는 “기본적으로 DJ가 동원하는 인재풀이 제한돼 있어서 사회 각계의 참여와 지지를 얻기 어려웠으며, 그 때문에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도 실패했다. 이 점은 특히 호남 편향적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부정적 영향까지 낳았다. 이것은 현정권이 소수파 정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말했다.

김태우 국제 평화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인사문제를 국정난맥상의 주된 이유로 보았다. 김수석위원은 “기용대상 인물을 특정 스펙트럼(대북 전향적, 호남연고)에 한정시킴으로써 두 가지 문제점(총체적 국정능력 한계, 보수지식인 배제)을 낳았다”면서 “그 결과 비판적 지지자들을 적으로 만들었으며, 지역적 탕평책이 무산되면서 특정 지역의 비토(veto)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시절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까닭에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주장하는 지식인 그룹도 상당한 규모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을 폭넓게 활용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와 관련,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사회학)는 “김대통령의 지나친 ‘신중노선’이 개혁적 인사의 전진배치를 방해했다”고 분석했다.

대전대 노병일 교수(사회복지학)는 미국인 교수의 말을 인용해 현 정권의 인사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가톨릭이었는데, 대통령에 당선되자 각료 중에 가톨릭 신도를 가급적 임명하지 않으려고 했다. 케네디와는 상반된 접근을 취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는 인사때문에 망하고 있다.단적인 예로 국영기업체에 자기 고향 출신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서, 기업 구조조정 어쩌고 저쩌고 하니 누가 믿겠는가?

김대중 정부의 호남 인사 편중현상은 집권후기호 가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각계 인사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공기업 낙하산 인사와 주요기관 승진 인사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두고 소수 정권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주장도 있다. 한신대 김명섭 교수(국제학부)도 그런 견해다. ”김대중 정부는 기본적으로 인력풀이 부족하다. DJ 의 비전을 실무적 차원에서 뒷받침해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층이 빈곤하다. 그것은 영남 30년 집권의 부산물이면서 동시에 DJ의 개인적 퍼스낼리티가 빚어낸 부산물이다.”

거국내각 검토해야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2003년 2월까지다. 앞으로 2년 이상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벌써부터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노르웨이로 출국하자마자 터진 박금성 서울지방경찰청장 인사 파문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극도로 증폭시키면서 레임덕을 성큼 앞당겨버렸다. 정권의 체모(體貌)와 신뢰를 유지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기검증과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관료조직도, 이른바 측근실세 그룹도 이 점에서 무기력과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구효성가톨릭대 박승길 교수(사회학)는 이와 관련, 전문관료의 탈정치화와 가신화한 과두적 지배집단의 혁파를 주장했다. 서원대 김성건 교수(사회교육학)도 “오로지 애국의 일념으로 청와대 비서진과 행정부 각료들을 전면 개편하여 명실공히 ‘거국중립내각’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전대 유재일 교수(정치외교학)는 지역화합 정책을 강조했다. 유교수는 “지역편중 인사를 시정하고 국회 주관하에 ‘지역발전기금’을 신설하여 지역문제 연구 및 화합행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사개혁 차원을 넘어 정계개편을 주장한 의견도 많았다. 동국대 권오윤 교수(정치외교학), 서강대 박상태 교수(사회학),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 등은 거국내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대중 정권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지역감정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김대통령 스스로 정책의 목적과 현황,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지역감정을 뛰어넘었다는 이미지가 생길 정도로 거국적인 인물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권오윤 교수)

“소수 실세(가신, 측근, 연고자)에게 주었던 특혜를 박탈하고 그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범법자 처벌, 당 조직 개편, 거국내각의 구성이 필요하다.”(박상태 교수)

동아일보 김재홍 논설위원, 부산외대 강천 교수(경제학), 동의대 김동운 교수(경제학) 등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파를 떠나 유능한 인사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각 분야에서 국민적 신망을 받는 사람들을 골라 기용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가 존경하는 가치들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고 그런 가치들을 갖춘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발탁해야 한다.”(김재홍 논설위원)

“정파를 초월한 테크노크라트를 기용해 정책 수행 능력을 높이고 국정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강천 교수)

“DJ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각료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고 유능하고 깔끔한 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정치에서도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김동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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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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