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한창 무너져내리던 지난 8월경 차기 정권 창출에 필요한 정치자금 공급책으로 ‘신 5인방’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증권가 주변의 사설 정보팀 사이에서 은밀히 실명이 거론되는 정도였으나 이 문제가 국회에서 거론된 뒤로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서울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과 관련한 질의를 통해 이른바 ‘KKKP’ 배후설을 주장한 것. 일부 언론에 주인공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가 됐다.
정의원이 지목한 인사들은 평창정보통신에 4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는 민주당 K의원, K증권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실세 K씨, 명동 사채업자들의 배후인 또 다른 정치권 실세 등이었다. 이름이 오르내린 인사들은 관련 사실을 일체 부인하면서 한나라당 정형근 이부영 이주영 의원, 그리고 이를 보도한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들은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KK KP’니 ‘투갑스’니 하는 여권 핵심 인사들이 신 정경유착의 권력 측 주인공으로 지목됐다면 그 상대역으로는 코스닥의 스타 벤처기업들인 D사 S사 N사 L사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권력과 벤처를 잇는 파이프라인으로 유력 벤처캐피탈과 사설펀드, 명동의 사채업자들. 금융감독원 직원 등 일부 관료들도 부패 고리의 한 축으로 거론됐다.
마침내 갖은 ‘설(說)’은 청와대 담장마저 넘어섰다. 지난 12월2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대중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만난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권노갑 최고위원이 공기업 인사나 당정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비리 의혹까지 나돌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관련없이 김영삼 정권에서 국정을 농단했던 김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처럼 투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권 최고위원을 포함한 동교동계가 퇴진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중 가장 ‘어린’ 정동영 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그것도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린 사실은 당 안팎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다. 여기서 정동영 의원이 거론한 ‘각종 비리 의혹’ 가운데는 금융권과 벤처업계의 유착 혐의도 포함돼 있다.
여권 실세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금융권이나 벤처업계와 유착됐거나 비리에 연루돼 있는지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설사 관련됐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데다 관련 물증이 공개될 리 만무한 탓이다. 실제로 소문이 과장됐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음해일 수도 있다. 정가나 금융권에서는 벌써 정권이 바뀌면 “여권 실세들과 몇몇 잘 나가는 벤처업계 대표들이 청문회 대상이 될 것이다” “해외로 도피해야 할 정·재계 인사들도 여럿 된다”등의 얘기가 돌고 있다.
의혹의 초점이 된 두 실세
시중에서 정권·벤처 유착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 가운데는 김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 동교동계 ‘장형’ 권노갑 최고위원도 있다.
이중 김홍일 의원은 인터넷 벤처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골드뱅크와 관련, 처음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골드뱅크 사장 김진호씨와 동향에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점이 의심을 사게 했다. 골드뱅크가 코스닥 거품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성장가도를 달리자 이러한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정현준게이트가 터지자 김홍일 의원은 야당 의원들로부터 “한국디지탈라인 사건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측에서는 “김의원은 김진호라는 사람과는 일면식도 없으며 사설펀드와는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증권가 정보모임에선 정현준씨가 검찰 출두 전, 전 서울시장 C씨의 소개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을 만나 사건 전말을 털어놓고 보호를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러나 정현준 씨와 20일 남짓 도피 생활을 함께 했던 정씨의 어머니(전직 교사)는 이 소문을 부인했다.
“아들은 우리 부부와 함께 이곳, 저곳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 4시간 반 남짓 작은 여관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때 행적이 분명치 않아 그런 추측이 난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런 일은 없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이렇게 엄청난 일에 관여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안 좋아진 건 9월부터였다고 하더라. 이경자씨 쪽에서 하루에 어음을 60억~70억 원씩 돌렸다는 것이다. 현준이는 지금도 사채 쪽을 파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있다.
면회 가서 정치권 얘기 같은 걸 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다만 우리 가족들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가 오리라 생각하며 이 시련을 견디고 있다. 지금은 내 아들이 모든 죄를 다 덮어쓴다 해도 뭐라 말할 계제가 아니다. 국감 출석해서도 크게 당할 줄 알았더니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 것 없더라. 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앞에서도 언급됐지만 권노갑 최고위원은 사실여부와 관련없이 벤처업계에서 신 정경유착의 한 사례로 거론된다. 권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권 실세라는 영향력을 발휘해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들과 금융브로커들을 통해 거액의 선거자금을 마련했다는 것. 이런 의혹에 대해 권위원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 인사의 코스닥 개입 의혹
시세 조작과 관련해 시중에 가장 많이 떠도는 이야기가 정계 실세 K씨, 업계의 Q사와 대표적 코스닥 기업 F사 간의 커넥션이다.
지난해 2월, F사에 Q사 사장이 직접 찾아왔다. 액면가의 12배수로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외자 유치로 발전가능성은 인정받고 있었지만 아직 이름 없는 벤처에 불과하던 F사로서는 외국 회사와 똑같은 배수로 투자하겠다는 Q사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Q사는 F사에 거액을 투자했고, 코스닥 진출 후 F사 주가가 수직 상승하면서 투자액의 수십~100배에 달하는 금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D증권사 법인영업부 C부장은 “Q사가 F사에 투자하던 때는 F사가 속한 분야의 업종이 주목을 받기 전이었다. 당연히 Q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엄청난 ‘대박’이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정치권에서 F사 등을 중심으로 코스닥에 불을 붙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이를 Q사에 알려 투자토록 한 뒤 ▲코스닥 등록 후 Q사 주변 세력의 F사 주식 집중 매수로 가치를 높여 ▲고점 매도해 이익을 실현했다는 식의 시나리오가 사실인 양 회자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Q사 사장과 친분이 있는 한 펀드매니저는 “그 사람이 호남 출신이라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것 같다. 평소 룰을 매우 잘 지키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고 실력도 우수하다. 예를 들어 F사 거래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또 다른 거래들로는 엄청난 손해도 보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Q사 사장도 “모두 근거없는 루머”라며 “그런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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