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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정착, 아직 안개 속

한반도 평화정착, 아직 안개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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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양측이 통일방안을 놓고서 서로 상대방이 자기 방안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왜냐하면 연방제에 대한 양측의 인식은 ‘1국가’라는 외형에서는 일치하지만 ‘체제’라는 본질의 면에서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2년10개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6개월이 지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사이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북 포용정책을 굽힘없이 실천함으로써 대결에서 대화의 장으로 한반도 정세의 물길을 바꾸는 데에 일단 성공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기여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 초에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 북·미 양국이 50년간의 적대관계를 종식할 기회도 마련했다. 북·미 관계개선에 대해 한국은 적극 지지한다는 의견을 이미 표명했고, 주변 열강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보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평가가 정파적·사상적, 심지어 지역적 기반에 따라서 극심한 편차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결코 건강하지 못한 모습일 뿐이다. 논리와 증거의 뒷받침이 없는 비판과 주장은 무모하고 공허하다.

김대통령이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에도 분명 장·단점이 있다. 이중 어느 한 쪽만 보면서 찬양 혹은 비판을 하기보다는, 장점은 더욱 부각시키고 단점은 보완해가면서 좀더 현실적이고 완전한 정책으로 발전하는데 협조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김대통령을 비롯한 정책담당자들도 국민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수정해가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얻은 것들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목적은 당면한 경제난 해결에 돌파구를 찾는 한편 남한 내부에 그들의 통일전선전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얻은 성과를 평가하려면 우선 가시적으로 나타난 경제적 실리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국가보안법 폐지와 안기부(국정원) 해체 및 친북인사의 자유 활동보장 등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남한 내에 얼마나 조성됐는지가 그들의 ‘실적 평가’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우선 남쪽으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식량 50만t과 투자보장, 경의선 철도 및 도로연결에 따른 지원, 현대의 개성공단 투자 합의 등 경제적 실리를 이미 확보했거나 앞으로 확보할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으로부터는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정권 및 체제에 대한 보장과 함께 상당량의 유·무상 지원을 약속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도 60만t의 식량지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북한을 옥죄어온 경제봉쇄를 상당 부분 완화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며,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성도 한결 높였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직접 지원이 없었지만, 양국간에 10·12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면서 당면 문제인 미사일에 관한 정치적 해결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것은 조명록 특사가 북한 선군정치(先軍政治)의 엔터키(enterkey)이자 김정일 다음 가는 권력 실세이며 동시에 미사일 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방미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외교관례상 ‘선물’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 제시한 선물이란 아마도 조건만 맞으면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중·단거리 미사일의 수출 등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이 과연 어떤 대가를 어떻게 지불해서 그 ‘선물’을 거둬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미사일 협상의 대가로는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기’여서 한 쪽의 일방적인 굴복으로 결말이 날 사안이 아니다.

힘 얻은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론

북한은 사상전(思想戰)에 강한 나라다. 그러므로 경제난 해결에 도움을 얻은 것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남조선 해방’을 위해서 남한 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한 환경이 어떻게 남한에서 조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현재 남한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 김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서울공항에서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것과 “김정일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양해했다”는 전언은 우리 사회에 주한미군에 대한 논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더욱 힘을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으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과거 보수정권이 집권했을 당시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미진(微震)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김대중정권 하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는 강진(强震)이 됐다. 김대통령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지만, 문제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한반도 평화유지군이든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한 것이든 그 어떤 것으로 바뀌어도 종국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과 맥락이 닿는다는 사실이다.

북·미간 공동코뮈니케에도 나와 있듯이 만약 한반도에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공고한 ‘평화보장체계’가 만들어진다면, 주한미군의 철수 및 지위변경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남·북·미의 상황과 동북아 정세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먼저 주한미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평화유지군 성격으로 주둔하고, 남·북은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모두 후방으로 뺀다는 것이다.

평화유지군으로 바뀐다면 주한미군은 남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그런데 국제법에 의하면 분쟁당사자인 남·북 양측 중 어느 일방이 평화유지군 철수를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경우 북한이 요구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이 주장해온 이른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이 실현된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 미국측에서 보면, 북한의 철수 요구가 없는 한 남북 양측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다음으로, 김대통령이 자주 언급했듯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안정자로 존재한다는 주장 역시 북한의 단계적 철수론과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동북아에서 중·일간 힘의 대결을 억제하기 위해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다. 물론 동북아에서 미군이 빠져나가면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일간에 쟁투가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 한반도는 그 틈바구니에서 곤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일간 균형자 역할을 위한 미군 병력이 왜 하필이면 통일 이후의 한반도에 주둔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우리가 주둔비용을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 이후에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더 큰 노림수가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통일 이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안하고는 통일한국의 정부와 국민이 선택할 문제지 김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물론 김대통령으로선 남한 내부의 보수세력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에서 한 발언일 수도 있고,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정일로서는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선전함으로써 남한 내에 반미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노릴 수가 있다. 바로 여기에 한·미관계의 이간과 남북 대단결을 통한 반미자주화라는 고도의 통일전선전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군 철수를 정말 포기했나

둘째,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이 주장해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리와 연결된다. 지금까지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므로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 주체도 당연히 북·미 양국이 돼야 한다고 고집했다. 반면 남한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북·미 평화협정에 반대했고, 미국 역시 북한의 주장을 일축해왔다. 그 대신 남한은 미국과 함께 1996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제의해서 관철시켰다.

이번 북·미 공동코뮈니케의 골자는 북·미 양국간 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며, 그 조치로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꾼다는 데 양국이 동의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공동코뮈니케에 평화보장체계의 예로 4자회담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미국이 남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문맥상으로 보면 북·미 평화협정, 남·북·미 3자회담,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그리고 남북+4강의 6자회담 등 여러 방식이 모두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과의 군사대화에 관한 한 북한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일례로 9월25∼26일 제주도에서 열렸던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공동보도문을 보면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제2항에서 남측 문안은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북측 보도문은 같은 대목을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북측이 굳이 ‘완전히’와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한반도에 관한 군사적 대화는 미국과 하겠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 한반도에서 전쟁요인이 사라질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전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증거로 본다는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미국을 상대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셋째, 국가보안법 철폐와 안기부(국정원) 해체 주장의 성과를 보자. 국가보안법 개폐는 이미 국회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에서 개정을 전제로 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대통령과 집권 민주당, 그리고 보수 정당을 자처하는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은 거의 기정사실이 돼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의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민주화됐고, 또 국보법을 만들 때와 비교해서 정치·안보적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저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바꿔버렸다. 그런 점에서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얻은 큰 성과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 폐지의 정당성을 남한 내부에, 심지어 국회에서도 확보하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남 통일전선전술에 유리한 환경 조성

다음으로 안기부(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던 북한은, 임동원 국가정보원 원장이 정상회담시 특보 자격으로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김용순의 남한 방문시 파트너로서 그를 안내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자기들이 비난해온 국정원의 ‘독소적 기능’이 사실상 제거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임동원 원장은 김대통령의 야당총재 시절에 포용정책의 이론화 작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정보분야의 수장이 되어 포용정책의 전도사이자 실천가 노릇을 충실히 함으로써 국가안보의 보루라 할 국정원의 고유 기능이 약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정원장과 국정원의 저간의 행보를 볼 때 북한은 굳이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대북 경각심을 스스로 불러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국정원의 존폐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이미 그들이 원하는 효과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넷째, 친북 인사 및 조직의 활동 보장에 관한 대목 역시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무력해져 친북인사의 활동 공간이 확연히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송환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에 혼란을 초래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점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정상회담으로 남쪽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북한은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아직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단 한 차례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적 이익과 남한의 대북 경계심 이완이라는 실익을 얻은 데에는 무엇보다도 김정일의 이미지 연출 덕이 크다. 김대통령은 그를 ‘식견있는 지도자’ ‘대화 가능한 합리적 지도자’로 평가함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는데 기여했다. 이런 평가는 김대통령이 김정일 연구를 통해 갖게 된 개인적 차원의 평가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회담이라는 초유의 이벤트를 성사시켜 북한을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김정일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 있는 사이 김정일은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를 세계가 믿도록 끊임없이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지는 본래 모습이 ‘스며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미지는 관전자의 몫이다. 김정일의 연출된 모습을 우리는 본모습으로 믿거나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이다.

또 김정일은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초청을 통해서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와 위상을 한껏 과시하고, 통일을 위해서 화합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남한 언론의 북한 비판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효과도 거뒀다. 그런 점에서 향후 상당 기간 우리 언론은 북한에 관해서, 그리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서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을 ‘반민족적’ ‘반통일적’ ‘냉전적’ 행위와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일정 부분 조성됨으로써 북한은 과거 50년간 성공하지 못했던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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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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