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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에서 대공세까지

밀월에서 대공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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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세계 언론의 각광을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국내 언론을 향해 세무조사라는 칼을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정지작업일까,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일까.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부터 세무조사에 이르기까지 언론과의 관계를 추적해보면….
밀월에서 대공세까지
내일 오후 2시에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한다고 합시다. 그걸 오늘 미리 말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언론사 세무조사가 연장된 채 진행중이던 5월14일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신동아’ 기자에게 한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데 무슨 특별한 대책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박수석이 “언론이 우리 입장을 설명할 기회를 줘야 말이지요”라고 반문하며 던진 말이다.

박수석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콰이강의 다리 폭파라고 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의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되돌아보면 폭파라는 뉘앙스는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에 더 걸맞은 표현이었다.

6월29일 세무조사 결과에 대한 국세청 발표는 한마디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중앙언론사 23곳의 법인과 대주주에 대한 추징액은 5056억원. 이중 언론사 및 언론사 출자 법인에 대한 추징액은 3229억원, 대주주에 대한 추징액은 1827억원이었다. 국세청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국민일보의 법인과 사주를 조세범 처벌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중앙일보 한국일보 대한매일의 법인과 당시 대표이사를 고발했다. 세금을 추징당하지 않은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언론사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만천하에 드러내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그동안 신문업계의 관행이었던 무가지(無價紙)에 대한 세금추징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여야는 즉각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국세청의 언론사 사주 및 법인에 대한 고발조치가 조세정의와 정당한 법집행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야당에 대해서는 ‘정치공세’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언론사와 사주에 대한 고발의 목표가 ‘언론자유 말살을 통한 정권재창출’에 있다고 보고 강력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고발당한 언론사들도 각각 사고(社告)를 통해 세무조사와 관련한 회사의 입장을 발표했다.



동아일보사는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반성과 다짐’이라는 제목으로 “고발대상이 됐다는 자체를 사과하고 고발 내용 중 합당한 것은 받아들이되 부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아일보사는 또 “사주가 취재비를 전용했다는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IMF 당시 퇴직자와 사원들의 격려금, 회사간부들의 판공비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조선일보사는 이번 세무조사가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진행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한 언론의 자세를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중앙일보사는 “조사 결과 일부 드러난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시정하고 내야 할 세금은 당연히 납부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정부의 비판적 언론에 대한 장악의도에 대해서는 당당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 조선 중앙 3사의 기자들도 입장을 밝혔다. 가장 먼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조선일보 기자들이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6월28일 기자총회를 연 지 15분만에 언론탄압에 맞서 싸운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채택해 발표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성명서는 발표하지 않았으나 노보를 통해 언론탄압에 맞서 싸울 것이며 경영진도 굴복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동아일보 기자들은 6월29일 부별대표자회의를 갖고 성명기초소위를 만든 뒤 7월2일에 기자총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편집국·출판국 기자 170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성과 투쟁의 필요성에 모두 동감하면서도 투쟁 방향과 선후문제로 논란이 계속되자 성명서 채택을 유보했다.

연두 기자회견이 신호탄

김대중 정부가 언론과의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올해 초인 1월11일 청와대 춘추관 대회견장에서 열린 내외신 연두기자회견에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 일반 언론인 사이에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언론계와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모두 합심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대통령은 “언론자유는 지금 사상 최대로 보장돼 있는 만큼 공정보도와 책임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언론개혁에 대해 언론자유에 따른 책임과 자율적인 개혁을 강조하는 정도의 발언만 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언론개혁의 주체를 언급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까지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미 언론개혁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공개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부터 여권의 핵심인사들은 “언론을 이대로 놔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강성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상당수 언론들은 비판적인 논조에 대한 ‘협박용’ 정도로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사 논설위원의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김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사에 손을 대겠다는 결심이 섰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사들이 김대통령의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통해 알아봤지만 그들은 입을 맞춘 듯 선언적인 의미 외에는 큰 뜻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사들도 그래서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겁을 주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발언은 단지 말에만 머물지 않았다. 2월1일 국세청은 신문 방송 통신사 등 중앙언론사 23곳에 대해 정기법인세 조사를 하겠다고 서면 통보를 한 뒤 2월8일부터 6월28일까지 서울 지방국세청 조사국 인력 400명을 투입해 장장 5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다. 단일업종으로는 최대 조사인력이 투입됐고 업종 전체에 대해 진행된 것도 처음이었다는 점 등에서 국세청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면 김대중 정부가 그동안 언론관련 시민단체들과 방송 및 일부 신문사의 언론개혁에 대한 끈질긴 요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야 강도높은 개혁프로그램을 작동시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일부 언론이 사상시비를 제기하고 대통령 선거기간에도 일부 편파적 보도를 하는 행태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언론 전반에 대한 개혁보다는 특정 언론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정권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언론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재벌언론의 문제는 소유제한 쪽보다는 공정거래위의 기능을 강화해 계열사에 대한 특혜와 부당거래를 줄여나가고 세무조사를 철저히 하는 등 제도적 개혁을 하는 한편,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8년 3월경 한국언론연구원에서는 ‘한국신문산업 위기와 개혁’이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신문개혁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신문시장에 대해서는 조정기능을 통해 사상의 자유시장 정상화를 꾀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집행해야 한다”며 조건부 정부개입을 주문했다.

이 보고서는 신문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법인세, 특소세 등을 불성실하게 신고하는 신문사에 대해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표할 것을 제시했다. 소유구조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재벌기업에 한해 신문사 지분 소유한도를 2분의 1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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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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